귀족노동자와 노예노동자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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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투쟁 현장에서 노동자연대의 길을 보다

글쓴이 :

klsi@klsi.org

2004년, 궤도연대와 LG칼텍스 정유 노동자들은 언론들에 의해서 고임금을 받고도 만족 못하는 ‘귀족노동자’의 멍에를 뒤집어 쓴 채 무참히 밟혀야 했다. 그러나 언론은 다른 한편에서 절박한 투쟁을 벌이고 있던 건설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들을 애써 무시하였다. 그들은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노예노동자’였기 때문일까?


[ 서울시는 교묘하게 사실을 왜곡하고 월급명세서를 공개하는 광고를 내보내, 인력충원이라는 당초 파업의 논점을 흐리고 궤도연대에게 '귀족노조'라는 오명을 뒤집어씌웠다. ]

그들이 귀족이면 비정규직은 노예인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공장과 중소영세 사업장의 임금 격차가 매우 크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러한 차별과 격차는 정부와 자본에 의하여 조장되고 만들어져 왔다. 그리고, 이런 조건에서 올해 궤도노동자는 시민의 안전을 위한 인원 충원을, LG칼텍스 노동자들의 사회발전 기금과 비정규 차별철폐를 요구하였다. 그러나 진실은 사라지고 언론은 이들의 투쟁을 ‘귀족노동자의 이기적인 임금투쟁’으로 매도하였다.

정부와 언론에게 이들이 문제가 된 것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많은 것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투쟁을 하였기 때문이었다. 군사정부의 통제 아래 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과 병영적 관리체계에 의하여 유지되었던 천민자본주의가 ‘1987년 노동자대투쟁’으로 아성을 위협받자 자본은 새로운 통제방식을 개발해 왔다. 그런데 자본의 축적방식의 변화에 따른 이러한 분할지배 전략의 ‘수혜자(?)’들까지 들고일어나자, 정부와 자본이 위기의식을 느꼈던 것이다.

‘자신의 노동조건이 아닌 것’에 관한 모든 요구와 투쟁을 불법으로 몰아왔던 정부정책과 당장 자신의 몫을 챙기기 바쁠 수밖에 없던 현장 노동자들의 조급함은 한국 노동운동을 기업별의 울타리 안으로 가두었다. 좀더 여유가 있는 사업장과 그렇지 못한 사업장의 노동조건은 갈수록 격차가 벌어졌고, 그 격차는 하층 노동자의 희생을 동반하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특히 희생당한 비정규노동자들의 투쟁이 시작되고 있는 지금, 정규직노동자들도 더 이상 그들에게 무관심 할 수 없음을 느끼고 있다. 자신들의 눈앞에 있는 문제뿐만 아니라, 비정규 문제와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책임을 자각하고 이를 위하여 조금씩 전진하고 있다. 그런데 LG칼텍스와 궤도 노동자들이 그 행진에 들어서자마자 정부와 자본은 탄압의 칼날을 휘둘렀다. 그들은 귀족이 아닌 배부른 노예를 거부하고 진정한 노동자가 되고자 했던 것이다.

2만 달러 시대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꿈꾸는 정부와 언론은 노동자에게 시민이 아닌 ‘노예’이기를 강요하고 있으며, 이를 거부하고 투쟁하는 노동자는 ‘귀족’이 되었다. 그러나 신자유주의의 광풍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 중에는 귀족은 없다 단지 배부른 노예를 거부하는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우리는 아직도 더욱 절박하고 힘든 조건에서 노동하고 투쟁하는 형제들을 추스르고 있지 못하다. 중소영세 사업장, 비정규, 그리고 이주 노동자 등 이미 소외된 노동이 다수가 되어버린 한국사회에서 여유 있는 소수인 대공장 정규직노동자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것은 한가로운 것일까? 투쟁에 패배한 노동자들의 한계를 얘기하기 전에 그들과 함께 하지 못한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한 듯하다.

코오롱 노동자들의 희망을 향한 몸부림, 그리고 동지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나는 구미의 코오롱 사업장에서 파업투쟁을 전개하는 노동자들과 함께 있다. 이 공장 노동자들은 스스로가 제조업 공동화로 인한 한국 경제의 위기를 현장에서 가장 뼈저리게 느끼고 있다. 10여년의 청춘을 다 바쳤던 노동자들에게 남은 것은 이미 절반 이상 불이 꺼진 공장과 동료가 떠난 빈자리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뿐이다. 이 과정에서 한때 3,600여명에 달하던 조합원이 수년만에 1,400여명으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자본은 다시 208명의 구조조정을 선언하였고 이에 맞서 노동조합은 신규투자를 통한 고용창출과 비정규직 처우개선, 근로조건 저하 없는 주40시간 등을 핵심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사측의 교섭해태로 파업이 장기화되면서 정부와 자본은 노골적으로 공권력 투입을 협박하며 압력을 가하고 있으나 조합원들은 대오의 이탈 없이 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그리고 파업 수십일이 지나도록 보수언론이 전혀 주목하지 않고 있던 이 투쟁에 연대하기 위하여 이랜드, 한국통신 비정규직, 효성 해고자, 금호타이어, 구미 지역의 노동자들 등 다양한 동지들이 묵묵히 찾아왔다.


[ 두달이 넘는 파업 끝에 최근 잠정합의한 구미 코오롱 사업장에는 다양한 노동자들이 연대하기 위해 다녀갔다.  - 출처: 코오롱노동조합 ]

기꺼이 짐을 지는 모습을 보여준 이랜드 노동자들

이틀 전 이랜드 동지들이 찾아왔다. 이들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함께 한 263일의 파업투쟁 과정에서 파업참여 조합원의 대부분이 입건되고 구속자가 10여명이 넘는 혹독한 탄압을 견뎌내면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한 동지들이다. 2000년 늦봄, 연맹 활동의 틀 속에서 관성화되는 내 자신의 지친 심신을 추스르고 쉬고 싶은 생각이 들 즈음, 이랜드 동지들이 비정규 투쟁계획을 이야기하며 같이 할 것을 제안하였다.

처음에는 ‘기대 반 우려 반’이었다. 소수노조라는 불리한 조건 속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걸고 비정규직과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투쟁을 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려가 기우였음을 깨닫게 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랜드 동지들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를 위하여 구속과 생존권의 위협을 피하지 않았다. 같이 투쟁하던 동지의 해고를 막기 위하여 다수가 생계마저 희생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집을 잡혀 투쟁기금을 마련할 정도로 자본의 탄압을 뚫기 위하여 먼저 스스로를 희생하였다. 그리고 먼저 투쟁하였고 투쟁에 나선 동지를 잊지 않으며 서로에게 헌신하였다. 그리고 기다리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본에 맞서 연대를 할 줄 알았다. 연대, 희생, 동지애, 용기 그리고 이윤을 위한 희생이 아니라 삶을 위한 연대를 통한 새로운 삶의 가능성에 대한 의지, 이러한 진정성을 그들은 피해가지 않고 기꺼이 받아 안고서 투쟁하였다. 나 자신도 이랜드 동지들과 함께 하면서 잊고 있던 운동의 진정성을 다시 고민하게 되었다.

이랜드 동지들은 투쟁이 끝난 뒤에도 연대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장기투쟁으로 인하여 많은 빚이 있었음에도 투쟁하는 동지들을 도와주는 것에 인색하지 않았고 조직이 채 추슬러지지 않은 가운데서도 연대를 마다하지 않았다. 이랜드 노동조합은 아직도 소수이고, 투쟁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투쟁에 연대하기 위해 이 먼 길을 기꺼이 달려와 준 것이다. 그 날 이랜드 동지들의 돌아가는 듬직한 어깨 위에서 함께 하는 세상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기꺼이 감내하여야 할 짐이 담담하게 내려앉아 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패배했지만 좌절하지 않은 한국통신 비정규직

이랜드와 함께 싸웠던 조직 중에 한국통신 비정규 노조가 있다. 이들도 연대하기 위해 구미를 방문했다. 공기업 구조조정의 희생양이었던 한국통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1년이 넘도록 투쟁하였다. 그러나 정규직 노조의 외면으로 버거운 투쟁을 할 수밖에 없었다.

목동 전화국 점거투쟁을 함께 한 것은 노동형제들이 아닌 수많은 경찰 병력뿐이었다. 추운 겨울바람을 맞으며 본사 앞에서 계속된 노숙 투쟁, 한강 다리 위의 고공 농성, 국회 투쟁으로 많은 동지들이 구속되고 쓰러졌다. 거대한 한국통신 자본이라는 장벽을 넘기 위하여 그들은 최선을 다하여 투쟁을 하였으나 정규직 노조의 외면과 지원의 부족으로 미래를 기약하고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들은 최선을 다하였지만 패배하였다.

하지만 한국통신 비정규 동지들의 패배에는 좌절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지금도 그들은 투쟁의 현장에서 생활의 현장에서 다시 한번 연대로서 희망이 살아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날개 짓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수백억 손배와 실형선고, 그러나 자기길 가는 효성 해고자들

효성의 해고자들도 연대투쟁을 위해 코오롱 사업장을 방문했다. 2001년 여름 울산, IMF 이후 더욱 강도를 높여온 화학섬유산업 구조조정은 노동에게 굴종을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이에 맞선 효성과 태광 그리고 고합 등 울산 화섬3사 노동자들의 투쟁이 전개되었다. 노동자들은 한치의 물러섬 없이 투쟁을 하였지만 자본과 정부는 결국 물리력으로 투쟁을 제압하였다. 그리고 이윤을 향한 자본의 질주에 맞서 ‘더 이상 나의 삶을 위하여 주위의 동료 노동자를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는 노동의 원칙을 지키려던 투쟁은 철저히 짓밟혔다.

이미 수십명이 구속되었고 수백명이 해고되어 길거리로 내몰렸건만 최근 수백억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이미 본안 소송에 들어갔으며 고소 고발에 따라 뒤늦게 속개된 재판에서는 해고자들에게 감당할 수 없는 벌금 함께 또 다시 실형선고를 내림으로써 해고자들을 절망의 벼랑으로 몰고 있다. 뒤늦게 이 투쟁에 합류하였던 나는 운동의 미래를 고민하는 것도 절실하지만 있는 것조차 지키지 못하는 우리운동의 현실을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가슴 시리게 확인하면서 연맹에 복귀하였다.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투쟁의 후과를 등에 지고 있는 효성 동지들은 자신들이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언제라도 연락해달라는 말을 남기며 열리지 않는 자신들의 현장을 향해 나섰다. 투쟁과 패배의 고통을 지고 버거운 현실을 살아가는 효성 동지들은 우리에게 여전히 묻고 있다. 자신의 일자리를 위하여 동료들과 비정규직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을 요구하고 있는 자본에 맞서 더 이상 ‘내가 살기 위하여 다른 노동자를 죽일 수는 없다’는 노동의 희망을 위하여 당신은 지금 투쟁하고 있는가 ?

캐리어 아픔 넘어, 연대투쟁의 희망 보여준 금호타이어

2001년 한국의 111주년 노동절은 희비가 엇갈렸다. 많은 노동자들이 대학로에 모여 노동절을 기념하고 투쟁의 결의를 다지는 시간, 광주에서는 같은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참여하여 비정규 노동자들의 투쟁을 짓밟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캐리어 투쟁이다. 금호타이어 노동조합은 2004년 올해, 이러한 캐리어의 아픔을 넘어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연대투쟁을 통하여 불법파견 하청노동자들을 정규직화시키는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냈다. 그 금호타이어 동지들도 구미로 찾아왔다. 

금호타이어 정규직 노동조합은 비정규 노동자들이 스스로를 조직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리고 정규직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은 사전에 충분한 토론을 거쳐 서로에 대한 이해와 상황 공유 그리고 투쟁 방향에 대하여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정규직 노동조합은 조합원들에게 비정규직 투쟁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위한 투쟁만이 아니라 정규직 일자리를 늘리는 투쟁이라는 점을 설명하였고 조합원들은 동의하였다. 금호타이어 노동자들은 하청으로 위장되어 있는 제조업의 불법파견 실태를 꿰뚫어 보았고 이를 놓치지 않았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준비하고 조직하고 투쟁한 결과 대다수 하청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더욱 의미 있는 것은 이미 정규직화된 비정규 노동자들이 ‘동지회’를 만들어 비정규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이다. 금호타이어 동지들을 보면서 자본이 주도하고 있는 세상에 맞선 노동자의 자부심을 느낀다. 우리도 올곧게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면 단절과 질곡으로 얼룩진 노동 현장을 바꾸어 낼 수 있다는 희망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연대로 낙관의 미래 여는 구미지역 노동자들

코오롱 파업투쟁이 장기화되면서 구미의 다른 사업장 노동자들이 일상적으로 결합하여 투쟁에 지친 간부들과 조합원들의 힘을 북돋고 있다. 정문 앞에 길게 늘어선 지원 연대 농성텐트는 공권력에 위협을 받고 있는 이 사업장 조합원들에게 든든한 힘이 되고 있다. 그 중에 한국합섬과 금강화섬 조합원들이 있다. 한국합섬 노동조합은 금년의 임단협의 핵심목표를 비정규 문제로 잡았다.

화학섬유 산업의 경기악화로 인한 불안심리가 조합원들을 주춤거리게 하였지만 노동조합 간부들은 일관되게 비정규 투쟁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한국합섬 노동조합은 일주일의 파업투쟁을 통하여 사업장 내에서 비정규직을 일소했을 뿐 아니라 하도급과 하청 노동자를 정규직화시키기 위한 전 단계로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을 쟁취하였다.

그리고 금강화섬 노동조합은 회사가 가동 중단된 지 5개월이 넘었음에도 연대투쟁의 최선봉에 서 있다. 그들은 파미힐스 경기보조원 노동자들의 투쟁을 끝까지 지키고자 하였고 다급한 상경투쟁의 와중에서도 최저임금개선 투쟁과 중소 영세사업장 투쟁에 적극적으로 연대하였다. 스스로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자신의 문제에 매몰되지 않고 곤란에 처한 주위의 형제들을 돌아보는 것은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여유를 만들어 왔기 때문이다.

투쟁의 현장에서 환하게 웃으며 농담으로 투쟁하는 동지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그들의 모습에는 아무리 어려워도 해나갈 수 있다는 노동자의 낙관이 담겨있다. 투박하고 어설프기도 하지만 세상을 읽기보다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는 그들의 끈기에는 사회의 진보를 향한 노동의 의지가 있다.


[ "길이 멀다고 하지 말자. 비록 내 자신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아들딸들일 지라도 언젠가는 다다를 것이다. "   출처: 코오롱노동조합 ]

희망의 미래를 여는 것은 결국 투쟁하는 노동자의 연대

우리에게는 더 힘든 일을 하면서도 차별을 받아야 하는 비정규 노동자와 애써 이를 외면하는 정규직 노동자가 한 공장의 울타리에 공존하는 현장의 질곡이 있다. 대기업인가 그렇지 않은가, 어떤 회사에 들어갔는가에 따라서 전혀 다른 생활을 감내하여야 하는 왜곡된 노동현실이 있다. 국적이 다르다는 이유하나 만으로 실컷 이용당하고 내쫓겨야 하는 이주 노동자들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차별을 통하여 노동을 통제하고 이윤을 극대화시키고자 했던 자본과 정부가 만들어 낸 부정되어야 할 우리의 현실이다. 자본의 신자유주의 공세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노동의 현실은 자신만을 위한, 만인을 향한 투쟁이 아닌 자신을 위한 그러나 서로를 위한, 소수의 독점 권력과 자본을 향한 투쟁을 요구하고 있다. 숨이 막힐 정도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미 깊어져 버린 우리 안의 단절. 그렇기에 연대만이 희망이다.

가지 않아야 할 길은 가지 말자. 오늘 내가 형제의 고통에 눈을 감는다면, 내일에는 그 고통을 고스란히 내가 지고 있을 것이다. 소외와 고통의 굴레를 벗어 던지고 희망을 향하여 나아가야 한다. 비록 우리가 처해진 조건은 다를 지라도 진보와 희망을 향하여 투쟁하는 노동자의 미래는 한곳으로 닿아 있다. 그리고 진보와 희망을 위하여 투쟁을 포기하지 않는 ‘투쟁하는 노동자’가 대안이다. 길이 멀다고 하지 말자. 비록 내 자신은 아닐지라도 우리의 아들딸들일 지라도 언젠가는 다다를 것이다. 길이 없다고 하지 말자. 단지 가본 적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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