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 버르장머리 깍아드립니다."

부 제목: 
민주노동당 국회보좌관이 말하는 국회 현실

글쓴이 :

hwangji@assembly.go.kr

이라크에서 인질로 잡혀 있는 김선일씨가 결국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되었다. 이렇게 끔찍한 일이 발생하고 나서야 국회 본관 1층에서는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의원총회를 열고 ‘테러응징’을 결의하겠다고 난리다. 6월5일 제17대 국회가 개원한 이후, 엄연히 존재하고 있는 국회법까지 어기며 원구성조차 하지 않고 공전을 거듭하던 두 마리 거대정당은 국민이 먼 타국 땅에서 희생당하자, 이제서야 본회의를 열고 긴급현안질문을 한단다. 형식적으로 보면 ‘지나간 버스보고 손드는 격’이며 내용적으로는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꼴’이다. 이런 모습을 국회 들어가기 전부터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니 정말 가관이다.   

보수정당 관행은 ‘법 위의 법’

반면 민주노동당은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만큼의 의원 수를 확보 못한 것이 한이 된다.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하는 두 거대정당의 ‘무시하기’ 횡포에 10명의 의원들은 연일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역시 ‘숫자 싸움’이다. 그리고 아직은 당과 의원단이 톱니바퀴처럼 체계적으로 굴러가지 못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지난 6월22일부터 ‘이라크파병 철회’를 요구하며 국회에 결의안 제출을 주도하는 등 외로운 싸움을 벌이고 있다. 보좌관으로서 옆에서 지켜보기에 안타까울 정도로 소수정당의 한계를 고스란히 경험하고 있지만, 그래도 민주노동당 의원들은 그들을 국회로 보낸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려 발버둥을 치고 있다. 국회 안에서든, 밖에서든 처음부터 제대로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어쩌면 그들을 아무도 오지 않는 국회본관 1층에 가둬두고 있는 지도 모른다.

국민에게 익숙한 국회의 모습은 ‘멱살잡이 싸움판’과 ‘공전’이다. 어떤 모습이건 국회를 통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건 교섭단체를 구성한 당과 그렇지 못한 당 사이에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다. 교섭단체인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은 회기 중에도 ‘밥그릇싸움’에 여념이 없다. 국회 회기는 진행형인데, 하는 일은 없다. ‘국회공전’은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비교섭단체라는 이유로 두 거대 정당의 밀실거래를 두 눈 뻔히 뜨고 보고 있어야 하는 경우도 많다. 그리고 “살아있는 국회법대로 하자”는 정당한 요구도 “그동안의 관행”이라는 그들의 성의 없는 말에 막히고 만다. 어이가 없고 답답함에 열불이 날 정도다. 사사건건 관행 들먹이며, 길들이려드는 보수정당의 행태는 갖은 자의 오만과 횡포 그대로였다. 

변화는 국회시설 사용에서부터

나는 과거 민주노총에서 국정감사대응투쟁 담당자로 활동할 때, 환경노동위원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제사법위원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16대 국회의원들이 사용하고 있는 방을 여러 번 출입한 적이 있다. 당시나 지금이나 국회의원회관 내 의원실의 구조는 똑같다. 의원 개인이 사용하는 방과 보좌관이 사용하는 방이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의원이 사용하는 방은 11.6평, 보좌진 6명이 사용하는 방은 11.1평으로 의원 혼자 쓰는 방의 크기가 보좌진 6명이 쓰는 방의 크기보다 더 넓었다. 

이 때문에 6명의 보좌진을 그야말로 비좁은 방에서, 그것도 각종 책과 서류더미, 사무용품 속에서 지내야 하며, 외부에서 손님이라도 올라치면 1평 남짓한 탁상 앞에 앉아 손님과 얼굴을 ‘아주 가까이서’ 대면해야 했다. 물론 의원은 거의 방을 비우고 있었고, 어김없이 맞이하는 사람은 보좌진이었다.  

민주노동당이 원내 진출한 후 의원회관 내 22.7평 의원실에서부터 조그마한 변화가 시작되었다. 민주노동당 10명의 의원실을 둘러보았다. 다른 당의 경우는 의원 혼자 사용하고 있을 넓은 방에 보좌관 책상 2개가 진을 치고 있었다. 그리고 고급스런 소파는 어디론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회의용 탁자가 들어와 있다. 외부에서 손님이 찾아오면 비좁은 보좌진이 쓰는 방이 아니라, 곧바로 의원 개인이 쓰는 방으로 들어가야 한다. 

과거의 의원실, 다른 정당의 의원실에 들어갔을 때 받았던 대접에 익숙한 사람들은 오히려 의원 개인방으로 곧바로 직행하는 것에 대해 매우 부담스러워 한다. 별 것 아닌 것이 ‘별 것’이 되어 버리는 이런 상황을 보면서 참으로 국회가, 국회의원이 그동안 특별대우를 얼마만큼 받아왔고, ‘신성스러운’ 대상으로 치부되어왔는지를 쉽게 짐작고도 남을 것이다. 

또, 국회의 공용 공간 사용 문제에 있어서도 변화가 있었다. 과거에는 공청회 같은 것을 국회에서 하려고 하면, 개인적 인맥을 통해 국회헌정기념관, 국회도서관, 의원회관 내 대회의실 등 장소섭외를 부탁해야 했고, 섭외가 되면 매우 고마워해야 했다.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한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했던 일일 것이다. 이제는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이 당당하게 민주노동당 의원실을 통해 장소섭외를 하고, 또 겨우 그런 일로 대단히 고마워해 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적어도 의원회관 안으로 들어오기 위해, 본관에서 방청을 하기 위해 굳이 과거처럼 국회경비원과 피 터지게 싸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되었다. 이제는 색안경을 두른 경비원들의 눈흘김과 저지를 받지 않고,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된 것이다. 


[ 회의가 예정돼 있던 6월7일 오후 4시, 본회장에는 민주노동당 의원들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 출처: 판갈이 ]

시민사회단체와 함께 듣는 업무보고 

제17대 국회가 개원하자마자, 민주노동당 최순영 의원실에서는 교육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은 바 있다. 정확히 표현하면 상임위를 맡고 있는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1명에게 관련 정부부처에서 업무보고를 하는 것이다. 열린우리당이나 한나라당에게 하는 업무보고 같으면 국회의원 수십명들이 앉아서 정부부처의 보고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에게 하는 업무보고는 의원 1명에 보좌진들, 그리고 시민사회단체 정책담당자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는 것이었다. 

전교조 등 시민사회단체가 들어오면 업무보고를 할 수 없다고 하면서, ‘업무보고 취소’까지 검토하던 교육부도 결국은 민주노동당 의원 및 보좌진과 시민사회단체 담당자들에게 업무보고를 할 수밖에 없었다. 2001년 한일민중단체 교류의 일환으로 일본을 방문했을 때의 광경이 떠올랐다. 당시 우연히 일본 민중단체의 활동가들이 국회에서 정부관계자를 불러 업무보고와 질의응답을 받는 장면을 함께 참관했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도 이렇게 국회 공간에서 현안문제에 대해 시민사회단체에게 설명하고 서로 의견을 교환할 수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 까 하는 생각을 했는데, 지금 대한민국 국회에서 실제 그런 광경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거대한 소수정당’이라는 역설적 표현은 이처럼 시민사회단체를 ‘국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함께 ‘국회 밖에서’ 투쟁할 때 비로소 모순 없이 성립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새삼 느꼈다. 

그런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었다. 국회 본관에 위치한 상임위원회 회의실은 ‘상석’과 ‘하석’이란 게 있다는 것이다. 국회에서 오래 근무한 관계자에 따르면 동쪽이 상석이고 서쪽이 하석이라고 한다. 교육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날, 국회공무원이 동쪽이 상석이기 때문에 의원이 반드시 동쪽에 앉아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받았지만, 민주노동당 의원은 기어코 하석을 선택했다. 사실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그저 업무보고를 받는 인원이 많았고 우리 쪽 인원이 앉을 자리가 충분히 있는 서쪽을 선택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정말 어쩔 줄 몰라하는 국회공무원을 보면서,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안되었다. 그게 그렇게도 중요한 건가 싶었다. 그렇다면 우리 쪽 사람들이 교육부 공무원 뒤통수를 보면서 업무보고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상석, 하석을 구분해서 앉아야 하는 걸까? 국민을 근본으로 생각하기보다는 국회의원이라는 상전을 모시고 있는, 그래서 회의실마다 상석이 따로 존재하는 국회. 그동안 국민의 지탄을 받아왔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 6월22일 민주노동당 의원단은 정부가 추가파병 결정을 철회할 것을 축구하며 국회 본관 1층 민주노동당 의원단실에서 무기한 농성에 돌입했다.   - 출처: 판갈이 ]

권위만 선다면… 빨간 카펫, 전용 엘리베이터, 바가지 이발비    

본회의가 잠시 열리던 날이었다. 제17대 국회가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국회본관 앞에서 100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까만 엔터프라이즈 3500cc 승용차를 타고 의원회관으로 이동하는 의원들이 한 두명이 아니었다. 그들은 위풍당당하게도, 걷지 않는다. 반드시 까만 방탄차 같은 승용차에 타서 이동해야 할 정도로 국회 곳곳에 저격수가 깔려 있기라도 한 것일까. 다 권위다. 썩어빠진 그 권위를 유지하고픈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회의원이 들어가는 빨간 카펫이 깔린 출입문과 보좌진이 출입하는 회전문은 구분되어 있고, 엘리베이터도 의원용과 일반용이 구분되어 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보좌진들은 의원용인지, 일반용인지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마구 타고 다닌다. 

구내 이발실 입구에 재미있는 광고문구가 붙어있다. 하나는 “버르장머리를 깎아드립니다. 국회의원 12,000원, 직원 8,000원” 이고 또 다른 하나는 “웰빙머리로 깎아드립니다. 요금도 상쾌하게 깎았습니다. 국회의원 12,000원, 직원 8,000원”이다. 사실 재미는 있지만 어이가 없다. 국회의원 식당과 보좌진 및 일반인 식당의 밥값이 차이가 나는 섞은 쌀도 다르고, 반찬도 다르다니까 이해한다지만, 똑같은 머리털 똑같이 깎아주는데 왜 가격 차이가 나야 하는지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그렇지만 특권과 부정부패로 얼룩진 국회의원 버르장머리를 반드시 깎아주겠다는 이발사의 결연한 의지만큼은 빛났다.

거대한 소수정당, 민주노동당의 힘!

민주노동당 권영길 의원은 ‘우리의 꿈은 모두가 함께 꾸는 꿈’에서 “민주노동당의 첫 번째 역할은 낙후하고 전근대적인 한국의 정당들을 근대화하고 정화하는 것”리며 “두 눈 부릅뜨고 그들 가진 자들만의 동맹을 감시”하는 것이라고 했다. 또 권 의원은 “강자의 대결에 맞서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고 그들을 단결시키라고 민주노동당이 국회에 진출했다”고 강조한다.

그렇다. 강자의 문화가 판치는 국회를 이제는 약자의 문화가 한줄기 빗방울처럼 국회를 적셔나가야 한다. 민주노동당은 소수지만, 전근대적일뿐 아니라 특권과 권위 그리고 힘있는 그들만의 논리를 일컫는 키워드인 “관행”이 난무하는 국회와 정당을 새롭게 바꿀 수 있는 촉매제가 되어야 한다. 이를 통해 비정상을 정상으로 바꿔내고, 비상식을 상식으로 교체하는 것, 그것이 민주노동당이 해야 할 국회개혁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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