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유철도를 지켜낸 남아프리카공화국

부 제목: 
대안을 향한 투쟁(3)

글쓴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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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

기초정보
● 수도: 프리토리아(행정수도), 케이프타운(입법수도), 블룸폰테인(사법수도)  
● 정부형태: 공화국, 연방국가
● 인구: 4천690만명
● 국가빈곤선 이하 인구: 30%
● 기대수명: 47세
● 문자해득률: 86%

경제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중간소득국가지만 분배는 상당히 불평등하다. 남아공은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분리정책) 시대를 거치며 세계에서 가장 불평등한 국가에 속하게 됐으며, 만성적인 고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풍부한 자연자원, 세계 최상위 규모의 주식거래소, 잘 발달된 금융·법·통신·에너지·운수기반 등을 통해서 이윤을 창출하고 있는 반면, 굉장히 큰 규모의 비공식 분야를 갖고 있기도 하다. 1994년 이래 투자자에게 우호적인 경제정책을 실시해 긍정적인 투자평가를 획득했으나 실업률과 불평등을 감소시키는 데는 실패했다. 정부는 이러한 불평등에 대응하기 위해 2004년의 흑인경제 활력강화프로그램 등 차별받는 인종그룹의 고용과 기술훈련을 활성화하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했다.            
    
● GDP*: 5,320억 달러
● 1인당 GDP*: 11,345달러, 평균 GDP 성장률(2000~2005): 4% 
● 실업률: 27.8%
● 외채: 278억 달러
● 외채상환부담률: 9.4%

노동 이슈
남아프리카공화국 공공분야 노조는 매우 강력하며, 최대 노동조합총연맹인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는 여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당(ANC Party)과 공식적인 연합관계를 맺고 있다. 그러나 국제자유노련(ICFTU)의 2005년 노동기본권 연간조사는 “노동기본권이 실제 항상 존중받는 것은 아니며, 노동조합 결성 또는 참여를 시도하는 노동자들은 협박, 폭력, 해고에 직면했다”고 보고하고 있다.   

● ILO 핵심협약 비준: 29-87-98-100-105-111-138-182
● 주요 전국단위 노동조합단체: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 남아프리카노동조합총연맹(FedUSA), 노동조합전국평의회(NACTU) 

국제금융기구와의 관계
세계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2005년 2월 현재, 세계은행은 여태껏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대상으로 전체 약 3억280만 달러, 13개 차관을 승인했다. 약 1,500만 달러를 약속한 8개의 차관이 진행 중이며, 이중 1,330만 달러가 더 지급될 것이다.” 남아공은 국제통화기금(IMF)에게는 미결제액이 없다.  

- 특별한 표시가 없는 경우 2005년 11월1일 업데이트된 The Economist Intelligence Unit Country Profile and Country Report on South Africa에서 인용한 자료임. 

- ‘*’표시가 된 것은 IMF World Economic Outlook database 2005에서 인용한 수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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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남아프리카공화국의 3개 노조는 자국 정부와 기념비적인 협정을 맺었다. 국가 철도운송체계인 스푸르넷(spoornet)을 분할해서 민영화하려 했던 정부계획을 중지시킨 것이다. 이른바 사회계획협정(Social Plan Agreement)이라 불리는 이러한 합의는 남아공운수연합노조(SATAWU), 그리고 이보다는 규모가 작은 통합운수연합노조(UTATU)와 남아공병참·용역·운수연합노조(SALSTAFF) 등이 정부와 8개월의 교섭 끝에 도달한 것이었다. 이로써 4,500개의 일자리 손실을 막아냈고, 스푸르넷을 남아공의 국영운수회사인 트랜스넷(Transnet)의 실질적이고 명백한 구성단위로서 유지할 수 있었다.

세계은행 등 국제금융기구들이 스푸르넷 민영화방안에 직접 관여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1994년 이래 아파르트헤이트(흑·백인종 분리정책) 이후의 정부들은 시장근본주의를 수용했고, 이러한 상황이 철도민영화와 관련된 최초계획 속에 반영돼 있었다. 즉 남아공 정부의 계획은 수익성이 낮은 부문들로부터 높은 부문의 분리라는, 세계은행이 다른 아프리카 국가와 개발도상국들에게 강요해온 철도민영화 모델을 거의 그대로 좇았다. 

“세계은행은 (하나의 회사집단에 소속된) 개별 기업들을 완벽하게 고립된 섬처럼 본다.” 협상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SATAWU의 정책담당자 제인 배럿(Jane Barrett)의 설명이다. “수익을 낼 수 없다면,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는 소리다. 세계은행의 관심은 개별 기업이 어떻게 하면 상업적으로 생존할 수 있는가에만 쏠려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남아공 정부와 그 경제고문들이 스푸르넷에 부과하고자 노력했던 경제모델 자체가, “세계은행이 라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에서 채택한 것과 거의 일치했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비롯한 남아공 민중들의 연대투쟁 결과 철도체계 민영화라는 세계은행 모델은 거부됐고 정부는 태도를 뒤바꿨다. 2004년 의회에서는 공기업부 장관 알렉 어윈(Alec Erwin)이 공공소유 이념까지 포괄하는 발언을 해 주목받기도 했다. 

“민간부문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그래서 국가가 민간부분에게 모든 것을 넘겨야 한다는 관념은 이론적, 정책적, 시민복지의 측면에서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다. 공공부문이 효율성과 역동성의 측면에서 갖는 명백한 문제점들은 거시경제의 틀을 조정하는 것에 의해서, 그리고 (국유기업 안에) 사기업의 구조와 경영방식을 도입하는 것을 통해서 통제될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민간부분의 효율성을 통합적으로 관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교훈이다.”

스푸르넷의 경험은 노조활동가들에게 “구조조정 모델이 결정되는 과정에 노동조합이 개입해야 한다는 사실을 가르쳐줬다.” 이는 2005년 5월 배럿이 워싱턴 세계은행 사무국에 제출한 보고서에 있는 문장이다. 그 보고서는 또한 “비록 노동조합이 활용할 수 있는 재정자원은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노동조합이 노동자들의 생생한 경험과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무한한 자원이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이제 이 국가의 강력한 노동운동이 선택한 과정들에 주의하면서, 남아공의 경험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정치적 배경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아파르트헤이트에 저항하는 기나긴 투쟁 속에서 힘을 비축해 왔고, 마침내 1994년 남아공 최초의 비인종적 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진보적이고 친노동적인 정부가 이끌고 있다. 오랫동안 ANC의 지도자였던 넬슨 만델라(Nelson Mandela)가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대통령을 지냈고, 이는 ANC의 부의장 타보 음베키(Thabo Mbeki)에게 계승됐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ANC가 비록 좌파로 남아 있을지라도, 그 지도자들은 1994년 권력을 쥐었을 때부터 “이미 경제근본주의로 기울고 있었다.” 이는 남아프리카노동조합회의(COSATU)가 설립한 정책연구기관, 전국노동·경제발전연구소(NALEDI)의 선임연구원 칼 폰 홀트(Karl von Holdt)가 스푸르넷에 관한 연구에서 언급한 주장이다. 그리고 이러한 방향 전환은 정부가 일명 기어(GEAR)라 불리는, 성장, 고용 그리고 재분배에 관한 거시경제프로그램을 채택했을 때에 더욱 분명해졌다.   
GEAR 프로그램은 공공지출을 줄였고 “자산구조조정 프로그램”을 공공부문에서 이행할 것을 제안했다. 공공부문 자산구조조정 프로그램이란 “비전략자산의 매각 그리고 운수 및 통신부문의 민·관협조 창출”을 실시하겠다는 것이었다. 폰 홀트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GEAR는 정부를 사유화프로그램으로 이끌었고, 공기업부는 이러한 사유화프로그램을 이끄는 선도적인 정부기관이 됐다. 2000년 발표된 공기업부의 정책틀은 공기업의 경쟁력과 효율성을 되살리는 데 있어서 민간기업 및 자본, 시장경쟁의 중요성을, 그리고 이를 통한 역동적이고 내적으로 경쟁력 있는 경제구조의 창출을 지극히 강조하고 격찬했다. 

이와 비슷한 정책적 맥락에서 1999년 트랜스넷의 경영진은 재조직화 계획의 작성을 다국적 컨설팅기업에 의뢰했고, 마침내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을 청산하고 1만7천여명에 이르는 노동자를 해고할 것을 건의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그 후 트랜스넷은 영국의 금융거물이자 민영화 전문집단인 로스차일드(Rothchild)을 고용했고, 이를 통해 스푸르넷을 6개의 기업으로 분할해 그 대부분을 민간투자자에게 매각하자는 계획을 제출했다.         

트랜스넷의 핵심영역을 민영화려는 정부의 계획은 노동운동의 거센 저항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1995년 음베키 당시 부통령이 트랜스넷 부속 항공기업인 남아프리카항공을 매각할 것이라 발표했을 때도 SATAWU는 전국적인 들고양이파업(wildcat strike, 지도부 승인 없이 진행되는 파업)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SATAWU가 소속된 노동조합총연맹 COSATU는 국유기업 구조조정에 대응하기 위한 교섭에 참여했고, 그 결과물이 국유기업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데 있어서 정부가 노조와 개별적인 “협의과정”을 거치도록 약정한 국가하부구조협정(National Framework Agreement)이었다. SATAWU와 그들의 동료 철도노조들은 이러한 역사적인 토대를 기반으로 스푸르넷을 국유자산으로 보존하기 위해 자신들의 독자적인 협정을 다듬었다.         

경제적 배경

스푸르넷은 트랜스넷에서 철도를 통한 화물 및 장거리여행객의 운송을 담당하는 부위였다. 스푸르넷이 국내 운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산적화물(bulk cargo, 포장을 하지 않은 상태로 운송하는 화물로서 주로 원자재)을 포함하면 59%, 산적화물운송을 제외하면 22%에 달했으며, 약 2만여 킬로미터의 궤도를 운영했고 34,344명의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었다.

스푸르넷의 노동자들은 거의 대부분이 관리직이 아니며, 국제운수노련(ITF) 산하조직인 SATAWU를 통해 대표되었다. 즉, SATAWU는 스푸르넷에서 전체 노동력의 70%를 차지하는 흑인노동자들의 대다수를 대표했으며, 스푸르넷의 다른 두 개 노조, UTATU와 SALSTAFF는 대부분이 백인인 “숙련직, 관리직, 행정직” 노동자들에 근거했다. 이러한 분할은 아파르트헤이트라는 남아공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배럿이 세계은행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작업장에 뿌리박은 아파르트헤이트의 역사적 유산 때문에 세 노조 사이에는 노동자로서의 신뢰가 구축돼 있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러나 모든 노조들은 전체 노동자의 이익과 스푸르넷의 이익을 전진시키는 것을 최우선과제로 두었다는 점에서 일치했다.”

한편 2000년 공기업부가 제출한 재조직화계획은 스푸르넷을 5개 사업체로 분리해서 그 중 4개를 민간기업과 양도협정을 맺어 민영화한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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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적화물노선, 즉 내륙 광산에서 연안 항구로 석탄과 철광석을 수송하며 이익률이 매우 높은 콜링크(CoalLink)와 오렉스라인즈(Orex Lines)는 장기간에 걸쳐 중간 수준에서 민간운영자에게 양도한다.                         
● 고급승객노선이며 “잠재 수익성이 있는” 블루라인(Blue Line)은 즉시 민영화한다. 
● 산적화물노선의 이익으로 손실을 벌충해왔던 일반화물운송(general freight) 사업은 스푸르넷에 남겨두되, 그 망상조직을 10,500킬로미터까지 축소하고 노동력을 15,000명으로 쳐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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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홀트는 “수익성이 높은 조직이 낮은 조직을 벌충하는 것은 중단되어야 한다는 대원칙”이 이러한 정부계획을 관통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정부계획은 발표 이후 약간 수정이 가해졌다. 일반화물운송 사업을 3년의 흑자전환 기간 이후 양도하는 대신, “전략적 동반자”에게 주식지분을 매각하겠다는 것이었다. 어쨌든 이러한 내용들이 정부정책이 되었고, 언론과 의회에서 발표됐다. 노동조합은 즉각적으로 대응했다. 배럿은 당시를 다음과 같이 회고한다.    

정부의 의도가 알려지자마자 SATAWU는 스푸르넷의 현장위원회의를 소집해 “스푸르넷 재건설(Reconstructing Spoornet)”이라는 의견서를 만들었다. 이 문서는 정부와 스푸르넷 경영진에 대응하여 SATAWU와 다른 두 노조들이 연대하는 기반이 되었다. “스푸르넷 재건설”은 곧 다듬어져서 세 노조 모두에 의해 채택됐으며, 이를 통해 노동조합들은 정부 구조조정에 맞서 연대하고 통일전선을 펴갔다.    
   
철도민영화에 대한 노동의 대응

노동조합들은 처음에 세 가지를 핵심근거로 정부계획에 반대했다. 구체적으로 첫째, “그 계획은 노동과 협의 없이 제출되었으며 투명성이 없다”는 점. 둘째, “체계의 강탈적 분할”이라는 점, 노조활동가들은 일반화물운송 사업의 독립이 장기적으로 재정안정성을 위협하고, 새로운 비효율성을 창출하며, 안전기준을 저하시킬 것이라고 확신했다. 셋째, 그 제안이 막대한 일자리 감축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 등이다. 노동조합은 또한 자신들의 계획안을 제출했는데, 여기에는 “관리체제의 변화, 교육훈련 및 작업장 인종갈등문제 해소를 위한 투자확대, 효율성을 높이는 노동자 참여계획의 활용” 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를 폰 홀트는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 

노동조합이 스푸르넷의 민영화를 반대하면서 제기했던 핵심적인 쟁점은 민간부문의 운영자들이 수익성 높은 사업에만 매달려 적자 노선을 폐쇄하고 돈벌이가 안 되는 소비자들은 저버릴 것이라는 우려였다. 그렇게 되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지역에서 가장 심각한 타격을 받게 되리라는 것이다. 또한 이는 결과적으로 철도 기반시설의 파괴로 이어질 것이며 곧 도로교통의 운송량을 증가시켜, 도로시설의 보수관리라는 측면에서 그리고 교통 혼잡과 사고, 공해, 기름소비와 그 비용의 증가 등 예기치 못한 측면들을 통해서, 국가와 도로이용자들에게 막대한 추가부담을 지우게 될 것이었다. …… 노동조합은 도로교통망이 받는 압박을 줄이기 위해서, 철도 시설 및 자산을 최적화해 활용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역경제의 발전을 촉진하기 위해서, 스푸르넷의 기간사업화 전략을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익이 나는 노선이 다른 노선에서 생기는 손실을 벌충하는 방식이 유지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노동조합은 콜링크와 오렉스 등이 지금 누리고 있는 조직적, 기술적 시너지효과를 지속적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라도 일반화물운송 체계와의 결합을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철도 분할은 각 조직들이 감당해야 할 지속적인 추가부담뿐 아니라, 분리에 따르는 끔찍한 희생을 초래할 수 있음을 우려했다. 이미 영국철도의 재앙적인 붕괴 사례가 철도조직을 조각내는 게 얼마나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는지 넘치도록 경고했다는 것이다.

 배럿 역시 “우리는 정부가 일반화물운송 부문에 세금을 투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의 서비스가 더욱 나빠질 수밖에 없음을 주장했다”고 회고한다. 문제는 노동조합이 “이를 운수부에게 어떻게 납득시킬까”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부가 이러한 문제들을 협의하겠다고 약속했음에도 그 계획의 주무장관은 회의를 갖자는 노동조합의 요구에 미적미적 대응했다. 결국 노동조합들이 정부에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었다. 2000년 말과 2001년 초 사이, SATAWU는 대량매각계획에 대한 자신들의 반대의견을 의회에서 발표했고, 또 이를 공격적으로 공론화하는 매체를 출범시켰다. COSATU는 이틀에 걸친 “반 사유화” 파업을 조직했고, 철도노조 조합원들은 항의행진을 진행했다. 그리고 2000년 3월 세계 철도노동자의 날에는 운수부 장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기도 했다. 

결국 정부가 물러섰다. 그리고 2001년 3월, 복수의 스푸르넷 구조조정 방안을 놓고 다양한 각도에서 검토하기 위해 만들어진 노동-정부 대책팀에 노동조합들이 참여하는 과정에서, 앞에서 언급했던 세 노조의 연대가 시작됐다. “그들은 공기업부가 공식 성명으로 주장한 것과는 달리 자신들은 구조조정 방안으로 어떤 것이 가장 적당한가에 대한 입장을 열어두고 있다고 선언했다.” 두 달에 걸친 격렬한 토론이 진행된 후 양측은 3개 철도노선에 관해서 합의에 도달했다. 우선 노동조합 측은 블루라인 객차가 민간기업에 양도될 수 있음을 수용했고, 반면 정부는 일반화물운송과 장거리승객서비스노선을 “전략적 운수자산”으로서 국가소유를 유지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러나 산적화물노선인 콜링크와 오렉스를 두고는 첨예하게 입장이 갈렸다. 정부는 스푸르넷이 일반화물노선과 산적화물노선을 통합해서 소유한 상태에서는 일반화물운송의 흑자전환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을 만큼 충분한 현금흐름을 유도하지 못할 것이라 주장하며, 콜링크와 오렉스의 민영화를 요구했다. 이것이 이 협상에서 합의가 가장 어려운 지점이었다. 배럿과 폰 홀트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했는데, 그 하나가 스푸르넷 경영자들이 협상에 미치는 영향력이었다. 경영자들은 협상에서는 배제됐지만, “정부 구조조정 모델을 아주 격렬하게 반대했다.” 그렇다고 이들이 노조와 같은 입장인 것은 아니었다. 경영자들은 “독립된 일반화물운송 사업은 필연적으로 경영유지가 불가능하므로, 고부가가치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오렉스, 콜링크와의 결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지만, 그렇게 “통합된 우량운수회사를 주식시장에서의 대량매각을 통해 민영화해야 한다”는 게 이들 주장의 핵심이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장애물은 폰 홀트가 “정책 행군(policy juggernaut)”이라 이름 붙인 것이었다. 

조직적, 개인적, 경제적 이해관계가 응축되어 결합한 특정한 정책덩어리들은 막대한 자기추진력을 가지며, 선택 가능한 다른 정책대안들에 대한 이성적인 논의와 논쟁에 상대적으로 둔감해지게 만든다. 이번 경우를 놓고 보자면, 컨설턴트를 감독하고 공기업부의 입장을 공식화하고 장관에게 이를 권고한 공직자들은 개인적인 이해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공기업부와 그 장관은 민영화의 성공에 조직적인 이해관계를 가졌다. 그리고 컨설턴트들과 정부사업을 양도받을 가능성이 있는 민간자본가들은 그 결과에 대해 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졌다. 이러한 특정한 개인적, 조직적 이해관계들이 뭉쳐서 민영화를 찬성하는 더 큰 이해관계를 구성했던 것이다. 
               
이러한 정체상태를 돌파할 수 있었던 데는 있는 그대로의 경제적 사실에 초점을 맞춘 노동조합의 끈질긴 노력이 큰 영향을 미쳤다. 예를 들어, 폰 홀트는 노동조합과 경영진 사이의 정보교환이 “양측에게 새삼스레 상호존중을 싹틔웠다”고 넌지시 지적한다. 이를 통해서 노동조합은, 스푸르넷은 굳이 콜링크와 오렉스를 분리하지 않더라도 투자요구를 충족시키고도 남을 만큼 충분히 현금흐름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게 경영진들의 판단임을 짚으며 정부에게 따져 물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은 더 나아가 정부의 계획은 결과적으로 “외국회사에게 세계유산을 넘겨주는 꼴이며, 유지가 불가능한 일반화물운송사업의 찌꺼기부분에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운영을 맡기는 꼴”이라 주장했다. 

또 하나 노동조합에게 유리했던 요소는 정부와 공기업부 내부의 갈등이다. 폰 홀트는 이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스푸르넷 민영화계획에 직접 책임이 있는 관리들은 그들의 정책 행군 속에서 계속해서 확신에 찬 행위자로서 행동했던 반면, 공기업부의 영향력 있는 관리들 중에서도 일부는 그 정책 행군에 점점 더 회의적으로 되어 갔다. 이 회의자들은 주로 흑인 경영자들과 친밀했고, 실용적인 ‘애국 자본가’의 형성에 관심이 깊은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공기업부가 계획을 착실히 진척시키는 것을 방해했다.” 

어쨌든 마침내 양측은 마지막 합의에 도달했다. 일반화물운송 사업과 콜링크는 정부소유로 스푸르넷 안에 통합하여 남겨두되, 오렉스에 대해서는 “그 전망을 나머지 운수조직들의 생존가능성과 결부 짓지말고” 논의를 계속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그러나 2005년 정부는 노동조합 측에게 다른 조직들로부터 오렉스를 분리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을 알렸다. 남아공 철도운송망의 민영화는 자신의 궤도 위에서 그대로 멈춰 섰다.  

일자리 지키기     
       
노동조합은 일자리를 지키기에서도 중요한 양보를 쟁취했다. 2003년 구조조정 협정이 맺어졌을 때 스푸르넷은 34,700명을 고용하고 있었다. 정부의 원안이 이들을 12,000만명까지 줄이는 것이었던 반면 합의결과는 2년 동안 약 24,000명으로 줄일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구조조정이 진행됨에 따라 양측은 “일자리 손실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이 동원돼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그리고 “대체일자리와 소득창출활동을 보장하기 위해” 노동조합과 경영진, 정부가 연합하여 단체를 구성한다는 데 합의했다.  
           
2003년 이러한 협의과정이 완료된 후 550명의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다. 이만큼도 고통스러운 일이었지만 최초로 계획됐던 5,000명에 비하면 이는 훨씬 적은 숫자였다. 배럿은 “강제로 정리될 노동자들의 숫자를 약 5,000명에서 550명으로 줄이는 게 가능했다는 사실은 공동으로 관리된 인원삭감이 그나마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는 증거였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녀는 덧붙인다. 자신이 속한 노조, SATAWU는 트랜스넷과 합의한 사회계획협정을 자랑스러워했지만, “그 사회계획이 감축된 노동자 대다수에게 현실적인 대안을 제공할 것이라 착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특히 노동자들의 채무상태와 30%에 이르는 실업률을 고려한다면 말이다.

배럿은 자신의 보고서 결론을 통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환경, 즉 활력 있는 노동운동과 정부의 협상의지가 스푸르넷의 경험을 다소 독특한 경우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환경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배럿이 지적하는 것처럼, “많은 저소득 및 중간소득국가들, 새롭게 민주화되고 세계경제에 급속하게 통합되고 있으며 국유기업 구조조정의 도전에 직면한 다양한 곳들에서, 이와 비슷한 사례들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음은 배럿이 보고서 결론에서 강조하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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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푸르넷 경험은 우리에게 노동조합이 구조조정 모델이 결정되는 과정에 개입해야함을 가르쳐준다.           
● 스푸르넷 사례연구는 공식적인 협정 맺기를 목적으로 하는 협의의 중요성을 환기한다. 
● 스푸르넷 경험은 비록 노동조합이 활용할 수 있는 재정자원이 제한되어 있을지라도 노동자들의 생생한 경험과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이는 무한한 자원이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한다.
● 스푸르넷 경험은 정부가 진지한 협의과정의 결과를 신뢰할 필요가 있음을 지적한다.  
● 스푸르넷 경험은 확실한 증거에 기초해 숙고하려는 노력이 현명한 정치적 의사결정에 결정적임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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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럿은 또한 폰 홀트가 규정한 정책 행군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스푸르넷의 경험은 컨설턴트와 경제고문들이 구조조정 과정에서 지나치게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험이 상존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쳐줬다. 이러한 조언자들의 권력은 아마도 그들이 뭔가를 결정하거나 경제적 이익을 내는 데 필요한, 혹은 두 경우 모두를 충족시키는 지식을 전부 갖고 있을 거라는 잘못된 가정에 근거했을 것이다.” 배럿은 이렇게 “민주적으로 선출된 의사결정자들보다 컨설턴트와 경제고문들이 권력과 영향력을 더 많이 갖는 것을 막기 위하여” 적절한 법제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한편 인터뷰 과정에서 배럿은 로스차일드 자문그룹이 협상에서 했던 역할을 특히 강조해서 비판했다. 로스차일드그룹은 남아공 정부와 계약하여 구조조정계획안을 만들었고 거래자문을 담당했다. 노동조합에게 거부당했던 그 제안서는 로스차일드그룹이 전체 매각액의 5%를 집어삼키도록 약정하고 있었다. 배럿은 “계약서는 조언자들에게 엄청난 보수를 약속하고 있었고, 정부는 이미 계약서에 서명을 한 상태였으며 판을 깨면서까지 망신당하길 원치 않아 했다”고 회고한다. “그래서 그 조언자들은 노동조합에게 유리하게 협상이 타결됐을 때 아주 당황했다.”

배럿은 노조활동가들이 스푸르넷 같은 국유기업들은 국민경제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생각을 수용해야 한다고 권장한다. “국유기업들은 모두의 자산이며 효율적인 경제성장을 돕는다.” 그것이야말로 이번 경험을 통해 마침내 남아프리카공화국 정부가 움켜쥔, 그러나 국제금융기구들은 대부분 받아들이기를 거부하는 경제적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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