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 것마저 빼앗기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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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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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라』는 온갖 불평등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반면, 여기에서 소개하는 지그문트 바우만의『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은 왜 사람들이 불평등에 저항하지 않는지를 묻는다.『분노하라』는 불평등에 분노하고 저항할 것을 뜨겁게 호소하는 반면,『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불평등에 저항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상식’이 왜 현실에서 무기력한지를 차갑게 분석한다. ‘가진 것마저 빼앗기는 나에게 던지는 질문’에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온갖 장치들에 갇혀있기 때문’이라는 어쩌면 당연하고, 그래서 힘 빠지게 하는 대답이 이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는 저항의 가능성과 당위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분노하라』의 빈자리를 충분히 채워준다.
 
10%의 소수 부자와 나머지의 대비로는 더 이상 불평등의 현실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게 된, 그래서 1% 아니 0.1%의 극소수 부자와 그 나머지의 대비여야만 불평등의 실체를 제대로 포착할 수 있게 되어버린 21세기. 극소수의 가진 자들을 경호하는 경제이론이 실패했을 뿐만 아니라 가짜였음을 현대사회가 명명백백하게 보여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기저에 깔린 경쟁의 논리에 약자들이 갇혀있는 한 불평등한 현실에 대한 체념과 실패자 낙인에 대한 순응은 계속될 것이라고, 또 이런 현실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는 한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제성장의 떡고물 좇는 한 불평등은 계속된다
‘낙수이론’의 거짓말을 폭로하고 경제성장의 신화를 발가벗기는 한편, 저자는 공생공락(共生共樂)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살아가기보다 소위 경제성장의 떡고물을 좇아 헤매는 시장의 소비자로 살아가는 한 사람들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조차 계속 빼앗길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개인화된 성공 신화를 꿈꾸고, 그 결과 성공과 실패를 개인의 몫으로 돌리는 대신 공동의 풍요로운 문화적 삶을 추구하는 ‘개종’을 요구하는 셈이다. 어쩌면 독자들은 거의 모든 대다수의 약자들이 불평등을 감수하는 이유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에 동의하면서도 그 처방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낼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 저자는 반문한다. 이러한 현실이 부조리하다고 생각하고 또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느냐고. 그렇다면 이제 ‘말과 행위의 간극’을 좁히자고. 독자들은 이 늙은 사회학자의 말에서 지행합일(知行合一)의 경구를 읽어내고 당황할지도 모르지만, 동서양을 막론하고 요구되는 덕목에 수긍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짐작한다.
 
분량이 적고 번역도 매끄러운 것이 미덕인 『왜 우리는 불평등을 감수하는가?』 이외에도 경쟁에 사로잡힌 개인들, 경제성장의 신화에 눈먼 세상에 대한 성찰을 요구하는 책들이 다수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경쟁에 반대한다-왜 우리는 이기기 위한 경주에 삶을 낭비하는가?』와『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그리고『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함께 읽어보길 권한다.『경쟁에 반대한다』는 경쟁이 인간의 삶을 어떻게 피폐하게 만드는지에 대한 엄청난 분량의 과학적 연구들을 근거로 협동의 삶이 인간 행복의 초석임을 보여준다.『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는 경제성장의 신화가 아니라 민주주의와 생태주의의 삶이 인간사회를 풍요롭게 한다는 것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한 세기 전에 출간된『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생존경쟁과 자연선택(적자생존)을 공동체적 삶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함으로써 극소수 부자의 존재와 극심한 불평등의 확산을 옹호하던 당시의 사회진화론을 논박하고 협동의 진화론을 제시한 고전이다.
 
* 저자가 같이 읽을 것을 권하는 책들이다. 『분노하라』(스테판 에셀, 임희근, 돌베게, 2011),『경쟁에 반대한다』(알피 콘 지음, 이영노 옮김, 산눈, 2009),『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C. 더글러스 러미스 지음, 김종철 옮김, 녹색평론, 2011),『만물은 서로 돕는다』(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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