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진자의 덫'에 갇힌 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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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 초기에는 늘 그렇듯이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법개혁을 위한 기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러나 개혁을 반대할 가능성이 높은 법원이 주요 멤버로 참가하는 현재의 구조에서는 많은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몇몇 단체들을 제외하고는 관심도 저조하여 개혁을 관철하기가 쉽지 않아 보인다. 

노동기본권을 보장하지 못하는 법원 
   
법을 만드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곳은 정부다. 정부부처에서 소관사항에 대한 법률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하는 방식으로 대부분의 법률이 만들어지고 있다. 일부 국회의원들이 직접 발의하는 것도 있긴 하다. 어느 경우이든 마지막으로 법률을 제정하는 기관은 국회이고 국회의원들이 그 일을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법률은 집행기관인 노동부나 검찰을 통해 해석되고 적용되며, 이러한 해석에 대한 최종판단은 법원이 한다. 그리고 언론은 이른바 여론이라는 명분을 생산하고 조작하여 법률 제정과 법원의 해석에 영향을 미친다.  

이러한 입법과 해석의 과정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어디에도 노동자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곳도 사람도 없는 것이 현주소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있다. 여론은 쉽게 조작되고 오도된다. 그런데 이를 명분으로 자본과 국가는 법률이라고 하는 강제장치를 만들고 그 법률을 근거로 집행을 하고 있다. 국회에는 노동자들이 뽑은 국회의원이 한 명도 없다. 노동부나 검찰이 어떠한지에 대하여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가 피부로 충분히 느끼고 있다. 

법원의 해석은 법령의 문구에 구속될 수밖에 없지만, 법률이나 명령(시행령)은 대부분이 추상적인 규정으로 이뤄져있기 때문에 해석기능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사실 법이란 ‘제정’이 반이고 ‘해석’이 반이라고 해도 무방할 만큼 법원의 영향을 크게 받는 것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이 노동자의 사정을 잘 이해하고 노동기본권을 제대로 보장하고 있다는데 동의하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자본가의 주장과 별 다를 바 없어 

다음 글은 대법원 재판연구관을 지낸 김형진이 기간제에 관한 “1년을 초과하는 근로계약의 효력도 유효하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례에 대한 풀이다. 그는 판결의 의의를 아래와 같이 밝히고 있는데 법원 판사들, 특히 대법관들의 머리 속이 무슨 생각으로 가득 차 있는지를 추측해 볼 수 있는 좋은 자료이다.

 “1년을 초과하는 유기 근로계약의 효력을 인정함으로써 기업이 경직된 노동인력수급으로부터 벗어나 노동인력수급의 신축성을 도모……무한경쟁의 세계경제질서 체제가 도래함으로 말미암아 국민 경제의 근간인 기업의 국제경쟁력은 곧바로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고 따라서 기업의 국제경쟁력 상실은 국민 경제에 심각할 정도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 되고 있는 지금에 이르러 그와 같은 근로자 보호를 위한 법적 패러다임이 ‘근로자는 무엇보다도 우선하여 보호되어야 한다’는 고착적 양상을 지니게 됨으로 인하여 도리어 국민 경제의 발전에 심각한 질곡이 되는 상황으로까지 변질되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다 할 수 없다.……기업의 국제경쟁력 확보와 유지는 더 이상 방관하거나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대외무역이 심각할 정도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우리 경제구조 하에서는 더욱 그러하다.……종래 다수설과 판례는……기업활동을 극대화하고 나아가 새로운 고용창출을 도모하여야 하는 현실적 당위성을 외면하고 있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다.”

그는 여기서 더 나아가, 

“이와 같은 고비용(임금) 구조 등은 현행 근로기준법으로 대표되는 개별 근로관계법이 단순히 사회적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한다는 취지에서 시장경제원리를 크게 벗어나 근로관계의 형성, 내용 및 종료 등 근로관계 전반에 관하여 법적 규제를 지나치게 강화함으로 기인하는 저능률, 고비용 및 경직성과 상승하여 기업의 국제경쟁력 증대에 역시너지 효과를 유발하고 있다.”

고 주장한다. 여기까지 이르면 근로기준법이 최저 근로기준을 정하고 있는 법(근로기준법 제2조)이라는 점을 망각하고 아예 근로기준법을 부정하는 데까지 나아가고 있는 셈이다. 게다가 종국에는, 

 “이 전원합의체 판결로 인하여 국내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완화하여 유연성을 갖게 하였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결코 낮게 평가할 수 없다.”

고 결론짓고 있다. 가히 자본가들이 늘 말하는 것과 다른 점을 거의 찾을 수 없다. 다른 것이 있다면 자신들은 “결코 한쪽에 치우치지 않았고 공정한 태도를 잃지 않고 있으며 혼란스러운 현실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임을 과도하게 믿고 있다는 점뿐이다. 

비정규직문제, 법원이 ‘해석’만 제대로 해도 풀린다

민주노총은 올 하반기 주요한 요구로서 비정규 문제를 내걸고 있다. 그리고 대정부, 대국회 요구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기본권을 보장하기 위한 법제도적 개선을 제기하고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 양산과 남용의 법적 뒷받침을 해준 곳이 바로 법원이다. 사실 법원이 현행법을 제대로 해석이라도 하였더라면 아마 상황이 이 정도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계약직 노동자들은 어떤가. 합리적인 사유가 없는 한, 정말 일시적인 고용이 필요한 경우가 아닌 한, 계약직(기간제) 사용을 금지하는 방향으로 현행법을 해석하였다면 어땠을까. 그러나 법원은 계약 갱신을 거부하는 것은 해고가 아니라며 사용자의 자유에 맡겨두고 있다.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어떤 상태에 있는가. 노동부에서도 노동조합 설립신고증을 내어주고 노사가 단체협약까지 체결하고 활동하고 있는데, 느닷없이 법원은 특수고용 노동자들을 “노동자가 아니”라고 한다. 사용자가 법원 판결을 근거로 노조를 부정하고 단체협약을 부정하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사법부의 노조파괴가 따로 없다. 이 역시 판결로 특수고용 노동자들의 노동자성을 인정하면 문제가 간단히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불법파견 노동자들은 어떤가. 불법파견 시점부터 사용사업주의 직접고용으로 간주함으로써 불법파견을 엄격히 규제할 수 있음에도 법원은 입법이 없음을 핑계로 이를 외면하고 있다. 현재 법원의 태도대로라면 합법적인 경우보다 불법파견을 행한 사용자들이 법적으로 더 보호를 받게 되는 웃기는 결론이 되는데도 말이다.

간접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문제 역시 실질적인 지배력과 권한을 가진 원청회사(사용사업주)로 하여금 노동법상 사용자 책임을 지도록 하면 간단히 해결될 수 있다. 사용자들이 도급계약을 해지하여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봉쇄하거나, 그 외 편법으로 사실상 단체교섭권이나 단체행동권이 박탈하는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있는 것이다.  

또 근로기준법 제5조 등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제를 해결하고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을 규제할 수 있음에도 법원은 이를 외면하고 있다.

단순하고 보수적인 대법관

진지하게 고민하는 판사들도 많이 접해 보았다. 그러나 모든 판사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불행히도 판결의 경향을 좌우하는 대법원 대법관들의 의식은 매우 보수화 되어 있다. 등수 경쟁과 승진 경쟁에서 살아 남은 사람들이 다수를 구성하게 됨으로써, 결국 법원의 해석 기능은 움츠러들어 그들만의 성역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최근 발생한 가스공사노조의 노동쟁의와 관련해서, 대법원은 “기업의 구조조정 실시 여부는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이어서 이를 반대하기 위한 쟁의행위는 위법하다”고 판결했다. 이는 “빵을 더 키워서 나눠 먹자”는 국정홍보처나 자본가들의 선전 만화를 연상시킨다. 

대법원은, “경영권과 노동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쇠퇴하고 투자가 줄어들면 근로의 기회가 감소하고 실업이 증가하게 되는 반면, 기업이 잘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의 단순함은 우리를 섬뜩하게 한다. 그리고 그런 수준의 대법관을 가진 우리의 현실은 정말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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