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부조’의 원리로 다시 보는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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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물은 서로 돕는다』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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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론’ 하면 떠오르는 가장 유명한 인물은 아무래도『종의 기원』의 저자인 찰스 다윈입니다만, 동시대 인물로 다윈의 진화론과 동일한 내용의 이론을 발표하려고 준비하던 또 한 명의 진화론자가 있었다고 합니다. 알프레드 왈라스라는 학자입니다. 만약 다윈이 왈라스를 알지 못했다면,『종의 기원』의 발간이 더 늦어질 수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만약 다윈이 왈라스뿐만 아니라 자기보다 후대 사람인 표트르 크로포트킨을 미리 알았더라면『종의 기원』의 내용이 조금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화론의 핵심, ‘경쟁’과 ‘도태’
다윈과 왈라스 두 인물이 주장한 진화론을 관통하는 핵심 개념은 ‘생존 경쟁’과 ‘자연 도태’입니다. 경쟁과 도태. 현대사회의 일면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말이죠. 근대사회로 넘어오면서 발전한 진화론은 당시의 생존 경쟁과 자연 도태의 사회상을 설득력 있게 담아낸 것으로 평가되었습니다. 서구문명의 우월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할 뿐만 아니라 지배층의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사용되었던 것이죠. 
백번 양보해서 이러한 논리를 일단 인정한다고 해도, 우리가 잊지 않아야 할 것은 다윈이 말한 ‘진화’라는 개념은 ‘진보’라는 개념과 거의 관계가 없다는 점입니다. 생존 경쟁과 자연 선택은 세상 만물이 어떤 특정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 않습니다. 다만 현실 자체가 생존 경쟁과 자연 선택의 결과라는 점을 말해주고 있을 뿐이지요. 그래서 다윈과 왈라스의 진화론이 미래에 대한 전망을 미리 보여주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생존 경쟁과 자연 선택의 결과인 현 상태를 정당화하는 논리로 ‘잘못’ 이용될 수는 있었던 것입니다. 
 
진화론의 또 다른 핵심, ‘협동’과 ‘연대’
그런데 다윈의『종의 기원』을 잘 살펴보면 그 안에서 ‘경쟁’과 ‘도태’라는 개념뿐만 아니라 ‘협동’과 ‘연대’라는 개념도 찾아낼 수 있습니다. 협동과 연대. 경쟁과 도태가 진화의 결과 그 자체만을 이야기하는 반면, 협동과 연대는 진보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겁니다. 경쟁과 도태를 당연한 것으로 바라보곤 하는, 그래서 너무 많은 끔찍한 문제들이 발생하곤 하는 현대 사회에서 꼭 필요한 말이기도 합니다. 만약 다윈과 왈라스가 경쟁과 도태보다 협동과 연대를 더 중요한 개념으로 생각했다면, 그들의 진화론이 갖는 사회적 의미가 많이 달라지지 않았을까요? 협동과 연대를 중요한 진화의 동력으로 바라보는 진화론이 있고 또 그것이 힘을 받았다면, 우리가 사는 사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은 사회가 되지 않았을까요?
제가 소개하려는 책이 바로 협동과 연대라는 말을 중심으로 만물의 진화를 설명하는 진화론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책 제목은『만물은 서로 돕는다 – 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P. A. 크로포트킨 지음, 김영범 옮김, 르네상스, 2005)입니다.『상호부조론』이라고도 일컫는 이 책의 저자가 바로 크로포트킨입니다. 크로포트킨은 러시아의 위대한 혁명가이자 뛰어난 과학자입니다. 크로포트킨은 경쟁의 법칙뿐만 아니라 협동의 법칙도 존재하며, 오히려 협동이 더 중요한 진화의 원인이자 자연법칙이라고 주장합니다. 동물의 협동에서부터 인간의 협동까지 만물의 상호부조의 모습과 역사를 자세히, 그러나 전혀 지루하지 않게, 오히려 매우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간『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경쟁의 사회적 결과보다 협동의 사회적 결과가 훨씬 더 바람직할 것이라는 점을 매우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만물은 서로 돕고, 삶은 오늘도 이어진다
『만물은 서로 돕는다』는 흔히 접하는 진화론 관련 서적과는 조금 다릅니다. 인간의 지나간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고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을 함께 모색하자고 주장하는 역사책이기도 합니다. 소개드렸듯이 크로포트킨은 혁명가입니다. 모든 사회적 권위로부터 해방된 인간들이 서로 도우면서 사는 사회를 꿈꿨던 혁명가이죠. 그렇다고 자신의 논리에 부합하지 않는 사실을 외면하고 곡해한 사이비 과학자는 아니었습니다. 철저한 과학적 지식으로 무장하여 그것을 혁명적 사회운동과 결합하고자 하였던 실천가였던 셈입니다. 
승자독식과 패자절망의 사회분위기가 팽배한 시대라고는 하지만, 우리는 곳곳에서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승자독식과 패자절망만 존재했다면 세상은 이미 사라져버렸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도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세상이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크로포트킨은 바로 그런 이야기를『만물은 서로 돕는다』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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