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똑> ‘노동의 새로운 정의를 꿈꾸며’ [2편] -코로나19와 장애인노동-

※ <똑똑똑>은 사회적 이슈를 제기하는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 활동가를 만나는 공간입니다.

 

e노동사회 <똑똑똑>
‘노동의 새로운 정의를 꿈꾸며’
-코로나19와 장애인노동-

 

작성: 이상원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교육차장

왼쪽부터 정창조 활동가(정책기획실) / 최진영 부위원장 / 정명호 위원장 / 사진: 이혜정 활동가

[수치로만 다뤄지는 노동의 가치]

: 코로나 이야기를 잠깐 했는데요. 장애인 일자리 이야기로 돌아가서, 노동시장에서 장애인 의무고용률1)은 얼마나 지켜지고 있습니까?

-1) 장애인 의무고용제도: 국가, 지방자치단체와 50명 이상 공공기관, 민간기업 사업주에게 장애인을 일정 비율 이상 고용하도록 의무를 부과하고, 미준수 시 부담금(100명 이상) 부과[장애인고용촉진 및 직업재활법(제28조, 제1항)]

: 의무고용률을 지키는 기업이 거의 없다고 보시면 돼요. 장애인 고용부담금을 납부하는 게 장애인 1명을 고용하는 것보다 훨씬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이죠. 그래서 고용부담금은 많이 쌓여가고 있는데 장애인 고용을 위해서는 쓰이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 의무고용률을 지키지 않아서 낸 벌금은 어떻게 축적되고 있습니까?

: 대략적으로 말씀드리면 장애인고용공단이라고 있어요. 장애인의 고용 촉진을 위해 설립된 공공기관인데요. 축적된 고용부담금을 ‘권리중심형 일자리’를 만드는데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하는 부분이 장애계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 권리중심형 일자리란 무엇입니까?

: 서울시에서 이번에 260개의 ‘권리중심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생산성 기준에 따라 노동자를 고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중증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권리라는 점에 방점을 두고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죠. 구체적으로 중증장애인 문화예술활동, 권익옹호활동, 인권강사(또는 인식개선강사) 등의 직무가 있습니다.

: 중증장애인 공공일자리에서 드러나는 문제점은 없었습니까?

: 고용부와 장애계가 논의를 통해 2019년부터 ‘중증장애인 지역맞춤형 취업지원’ 사업으로 동료지원가랑 인권강사 일자리를 만들었습니다. 동료지원가에 대해 먼저 말씀드리면 중증장애인을 발굴하여 취업시장에 진입할 수 있게 안내하는 직무입니다. 그런데 권리중심이라는 당초 취지와는 다르게 실적 위주의 일자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업무에 평가 항목이 정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 달에 5명을 만나서 발굴하고 일자리 연계를 해야 하는데 장애인이 취업할 데가 없으니 잘 안 돼요. 업무량도 상당히 많고요.

임금에 있어서는 고용노동부에서 바로 동료지원가에게 주는 방식이 아니라 사업을 위탁하는 기관들을 통해서 지급합니다. 주로 장애인자립생활센터들인데요. 센터는 이를 토대로 동료지원가를 고용합니다. 그런데 실적을 채우지 못하는 경우 다시 고용노동부에 받은 돈을 반납해야 합니다. 올해 공공일자리사업 추진 과정에서 고(故) 설요한 동료지원가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고 설요한 동지의 경우 근로시간은 1달에 60시간이지만, 실제로는 하루 종일, 몇 달간 일을 했지만 실적을 채우지 못했어요. 결국 센터가 임금을 반환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고, 그런 상황에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 말씀을 들으니 동료지원가 평가 시스템이 과해 보입니다.

: 올해는 기준이 좀 축소되긴 했는데, 핵심은 동료지원이라는 것을 과연 수치화할 수 있는 지 많은 고려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이어서 인권강사의 경우 장애인인권인식개선 위탁기관들이 있는데요. 여기도 임금을 기관에 위탁합니다. 장애인인권개선교육 시 일반 기업체의 경우 중증장애인 강사가 aac2) 기기로 하는 강의를 선호하지 않습니다.

-2) 보완·대체 의사소통(Augmentative and Alterative Communication). 말과 언어 표현 및 이해에 크고 작은 장애를 보이는 사람들에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의사소통 능력을 향상시키도록 말을 보완하거나(augment) 대체적인(alternative) 방법을 사용하는 것.

따라서 주로 기업체 강의를 하는 사람들은 비장애인이고, 말을 잘하는 사람이 대부분입니다. 반면에 중증장애인 인권강사들은 기업체가 찾지 않으니 강의할 곳이 없습니다. 결국 실적과 연결 지으면 인권강사 사업을 위탁받은 기관들도 보조금을 반납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는 거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것]

: 앞서 재활의 개념이 자본주의의 기준 아래 장애인에게 비정상이라는 낙인을 부여한다고 하셨는데요. 그렇다면 장애인 당사자의 재활을 돕는 집단거주시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고 계십니까?

: 장애계에서도 최대 이슈 중 하나인데요. 저희는 폐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역사적 배경을 잠시 소개하고자 합니다. 장애를 영어로 하면 ‘disabiliy’인데, 풀어보면 ‘부정+능력’의 의미잖아요. 근대 이전에는 없었던 말입니다.

자본주의의 시초인 19세기 초 영국에서 인클로저운동이 일어난 후 시골에서 도시로 많은 사람들이 상경했고, 그 중 자본주의적 생산성에 기반한 노동을 모르는 사람들이 생겨났습니다. 이들을 구빈원에 수용하였는데요. 구빈원의 목적 중 하나가 자본주의적 노동을 체화하게 하여 시장에 적합한 노동자를 생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육해도 여전히 시장에 적합하지 않은 노동자들을 가둬놨던 것이 장애인거주시설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이에요.

이후 전 세계적으로 장애인이 이제 노동할 수 없는 존재로 규정되는 흐름을 지나 현재, 자본주의 아래에서는 자립할 수 없는 존재로 각인되어 이들을 시설에 가둬놓는 거죠. 또 다른 이유를 말씀드리자면…….

: 돈이 많이 들죠.

: 맞습니다. 설명을 드리면 장애인이 지역사회에 살기 위해서는 이동권을 위한 교통제반시설, 생활복지서비스가 지원되어야 하죠. 그런데 시설에 여럿을 가둬두면 비용이 절감됩니다.

주거복지시설은 중증장애인 1인에 지원인 1명을 매칭하는 시스템이 아닙니다. 5~6명을 한 곳에 몰아놓고 한 명의 사회복지사가 관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문제점들이 발생하는데요. 과다한 업무량에 따른 사회복지사 개인적인 스트레스, 장애인 당사자는 욕구 반영이 되지 않는 정해진 일과 소화, 자유로운 외출 불가 등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탈시설 운동이 본격화되는 추세입니다. 장애인 노동권과도 맞닿아있는데요. 장애인이 노동할 수 없고 시장성이 없는 존재가 아니라 어떤 다른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노동자로서 살아갈 수 있고, 이게 지역사회에 기반이 되고 이를 통해 자기 생활을 할 수 있다면. 충분히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장애인 인권 차원에서도, 나아가 사회 전반의 공공의 이익 차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은가 싶습니다.

 

[노동의 새로운 정의를 꿈꾸며]

: 본인이 생각하는 노동의 가치에 대해 들어보고자 합니다.

: 최근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들도 실업률이 높은 상황 등 운동을 하면서 고민이 많아요. 여러 가지 생각 속에서 저는 장애인들도 밖에 나가서 평범하게 하루를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서 운동을 하고 있어요.

: 저는 장애인노조 준비위원회부터 같이 활동하고 있는데요. 위원장님이 말씀하셨던 활동 중 저희가 가장 고민인 부분이 노동에 대한 새로운 개념의 정의였어요. 저희가 기존에 가지고 있던 노동의 개념을 장애인에게, 그리고 장애인 노동에 적용시킬 수 있는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는 누구나 노동을 해야 먹고 사는데, 최중증장애인의 경우는 계속해서 복지의 시혜 대상으로밖에 머물 수밖에 없는가라는 고민들 때문에 노조를 준비할 때부터 담론모임을 계속 해오고 있습니다.

노동의 개념이 정의되어온 역사부터 더듬어가면서 최대한의 저희의 상상력을 발휘해 노동의 개념을 재정리하는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저희가 앞으로 진행할 활동들도 그러한 방향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저는 장애인운동에서 노동이란 이슈는 정말 중요하고 특히 자본주의적인 노동 개념을 어떻게 전환할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습니다. 시작점은 장애인이 노동시장에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필요한 노동시간만큼 가치를 생산할 수 있는 사람만 해당됩니다.

장애인들은 자조하며 스스로를 ‘기생적 소비계층’이라고 규정합니다. 자기들은 생산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 생산한 것에 기생하여 소비만 하는 사람이라는 건데요. 사실 장애인들이 정말로 기생적인 소비계층이라기보다는 사회가 그렇게 남겨두는 것은 아닌가 합니다. 결국 장애인 노동이 새로 정의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시작이 장애인노조가 아닐까합니다.

: 마지막으로 저는 ‘장애인이니까 할 수 없어’라는 소리를 싫어합니다. ‘하면 된다’는 것이 제 가치이고 원동력입니다.

: 많은 것을 배우는 자리였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