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코로나19 위기 극복, 보편적 사회보호제도 시급

* 이 글을 경향신문 <세상읽기>에 매월 1회 연재 칼럼 중 2020년 6월 12일 게제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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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코로나19 위기 극복, 보편적 사회보호제도 시급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

엊그제 발표된 5월 고용동향은 ‘코로나 고용충격’을 다시 확인케 했다. 통계발표 이후 실업자와 실업률 모두 최악의 상황이다. 지난 1주일 사이에 특수고용·프리랜서 대상 긴급생활안정지원금에 33만명이 몰렸다고 한다. 코로나19 발병 이후 일을 중단한 사람은 대부분 청년과 여성 그리고 임시일용직 등 취약층이다. 이들 모두 적절한 사회적 보호를 받지 못할 때 일자리와 생계를 잃었다.

이미 우리는 콜센터, 쿠팡과 같은 사례에서 민낯을 보았다. 바이러스는 우리 사회에서 가장 약한 고리만을 찾아간 것을 확인했다. 이들 모두 작업장 공간은 밀폐되고, 작업 비품은 제대로 지급조차 되지 못한 곳이다. 건강과 안전이 보호되지 않는 일터에 속한 사람들은 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하고 있었다. 게다가 올해 상반기 내내 제대로 된 일자리도 소득도 없이 하루를 버티고 있다. 아프면 쉬라고 하지만, 그날 벌어 그날 생활하는 사람들에게는 무의미한 정책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라는 유령 같은 녀석 때문에 주위 모든 일상이 바뀌었다. 만약 현재의 상황이 장기화될 경우 1998년 ‘IMF 세대’ 이후, ‘코로나19’ 세대로 불릴 것 같다. 학업도, 일자리도, 삶도 모두 통째로 잃어버린 세대들이다. ‘코로나 블루’라고 하던가. 물리적 거리 두기 등이 장기화되면서 나타난 신조어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집에 갇혀 지내면서 사회적 고립감이 증대돼 우울감이나 무기력증으로 이어지는 현상을 일컫는 말이다. 특히 고용과 실업 그리고 경기 위축 심화와 맞물려 그 상처는 더 클 것 같다. 코로나19로 일을 잠시 멈추고, 아프면 며칠 집에서 쉬어야 하는 상황은 맞다.

이미 코로나19로 우리 주위 많은 사람들이 치명적인 상처를 받았다. 임시·일용직이나 특수고용 노동자들은 본인이나 가족이 병원에 가야 하거나 돌봐야 할 때 일을 포기해야 한다. 그때 소득 상실은 당연히 자신의 몫이다. 그래서 몸이 아파도 직장에 나가야 하는 일상이 되었다. 학교에서 받는 ‘개근상’, 직장에서 주는 ‘정근상’을 다른 무엇보다 표준으로 여기던 시절이 있었다. 비정상이 정상으로 여겨지던 전근대적인 국가의 모습이었다. 집단감염이 발생한 곳 대부분은 임금이 낮고 노동조건이 열악한 반면, 유급휴가나 병가 등이 없는 곳이다.

그 첫 시작은 고용보험 확대부터 시작하여, 유급병가 및 가족·부모돌봄휴가와 같은 보편적인 사회적 보호를 수립하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와 경제적 취약층에게는 더 절실한 제도들이다. 서울시가 취약층을 대상으로 하는 유급병가나 청년수당은 그래서 더 의미가 있다. 지난 3월 코로나19로 ‘알바 잃은 청년 긴급수당’ 신청자 사연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수개월 준비한 공연이 취소되어 소득이 없어진 배우와 스태프부터, 아르바이트와 일감이 끊긴 프리랜서 청년까지. 모두들 긴급 청년수당(월 50만원, 2회) 신청 사유로, “월세와 통신비를 내야 하기 때문”이거나, “교통비나 생활비 부족” 등을 적었다. “아껴 쓰겠으니, 꼭 선정해주세요!”라는 글귀를 읽을 때 가슴 한쪽이 아리고 막막했다.

코로나19는 이들에게 세 번의 충격을 가했다. 고용을 파괴하여 소득 손실을 가중시켰고, 학업과 교육훈련과 같은 학습도 중단시켰다. 노동시장에 진입하거나 일자리를 이동하려는 사람까지 방해했다. 위기는 기존의 불평등을 더욱 심화시킨다. 코로나19로부터 신속한 회복은 그리 밝지 않지만, 우리들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최근 국제노동기구(ILO)는 위기 극복의 과제로 사회적 보호와 불평등 해소를 꼽고 있다. 만약 그 해법에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당신들의 견해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0061203000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