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시론)코로나19 이후의 세상

#. 이글은 2020-05-08 06:00 『뉴스토마토』 '(시론)코로나19 이후의 세상'에 실렸던 글 입니다. [기사링크]

작성자: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세계적인 팬데믹 상황이 계속되고 있지만, 한국은 안정세를 보이면서 ‘생활 속 거리두기’에 들어갔다. ‘일상과 방역의 조화’라는 새로운 길에 들어선 것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섣부른 전환이라 비판하지만 정부도 ‘비정상적’ 삶을 무한정 끌어갈 재간은 없어 보인다. 학교가 문을 열고 도서관과 박물관 등 공공시설들이 운영을 재개했다. 지난 5월 연휴의 풍경은 코로나19가 유행하기 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지금은 무거운 봇짐을 지고 외나무다리를 건너는 위태로운 형국이다.

석 달 이상 지속된 코로나 공습은 우리네 삶을 뿌리째 흔들어 놓았다. 예상치 못한 전염병 확산에 의료시스템은 마비되고 경제활동은 사실상 중단됐다. 자영업자들은 장사를 접어야 했고 노동자들은 저항 한번 못한 채 길거리로 내몰렸다. 3월말 사업체 노동력 조사 결과에 따르면 국내 사업체의 종사자 수는 22만5000명 감소했다. 미국은 연일 신기록 경신이다. 경제가 셧다운에 들어간 4월 한 달간 약 200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감소폭인 약 83만5000개와 비교하면 24배 큰 규모다.

향후 전망은 더 암울하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분기에 전 세계 정규직 일자리가 2억3000만개 없어질 것으로 예상했다. 특히 취약한 인구집단으로 이미 높은 실업에 직면하고 있는 청년, 서비스업에 상대적으로 많이 종사하는 여성 노동자, 자영업자, 긱 노동자, 이주 노동자 등을 꼽았다. ILO는 ‘코로나와 세계 노동’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의 약자인 비공식 경제 취업자들의 소득이 급감했다면서 이를 방치하면 경제적 타격뿐 아니라 사회 불안이 심각해질 수 있음을 경고했다.

역설적으로 경제활동이 정지 상태에 빠지자 자연은 되돌아왔다. 인간 활동이 멈추자 대기 질이 확실히 좋아졌고, 야생 동물들이 도심에 출현하는 사례도 늘어났다. 경제활동 위축은 지구 온난화에는 긍정적이다. 세계에너지기구(IEA)의 ‘2020 세계에너지 검토’ 보고서는 올해 에너지 소비가 6% 감소하면서 이산화탄소 배출도 8%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눈을 의심했다. 눈 덮인 히말라야산맥이 선명하게 보인 것이다.” 국가 봉쇄령이 발동된 뒤 인도 북부 펀잡주 주민들은 160㎞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을 볼 수 있게 됐다. 코로나는 자연과 환경 파괴의 주범이 누구였는가를 일깨워줬다.

국민들은 혼란에 빠져있다. 코로나 사태는 왜 발생했는가. 반복되는 위기인가 아니면 지나가는 일시적 전염병인가. 누구도 명확한 원인과 대책을 내놓지 못한다. 코로나19에 대한 각종 억측만 난무하지 정확한 원인과 발원지가 특정되지 않고 있다. 시나브로 문제 진단과 해결을 위한 기본 방향에 합의가 모아지고 있다. 신종바이러스의 확산이 기후변화와 생태계 훼손과 연관되어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힘주어 말한다. 자연에 대한 인간 탐욕의 결과이며, 자본주의의 폭주, 과잉 산업발전과 소비주의의 소산이다. 인간의 탐욕, 야만과 이기가 고쳐지지 않는 한 세균과 바이러스의 진화 또한 계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이러한 인식에 동의한다면 위기 극복의 길은 명확하다. 전염병 확산의 방어막을 튼튼히 구축하되 이에 그치지 말고 사회경제 패러다임을 바꿔나가야 한다. 이는 과거와의 단절, 경제성장 만능주의와의 이별을 의미한다. 코로나 위기는 신자유주의와 세계화에 기초한 성장 전략이 더 이상 지속가능하지 않음을 여과 없이 보여줬다.

위기는 새로운 대안을 요구하지만 대안은 자연스럽게 마련되지 않는다. 거꾸로 다시 과거로 되돌아가려는 관성이 크고 그 가능성이 더 높다. 위험을 사회적 약자에게 덮어씌우려는 기득권은 공고하며, 정치권은 그 카르텔의 지배하에 놓여 있다. 우리는 메르스에서 교훈을 얻어 코로나를 막아내고 있지만, 반복적인 산업재해에는 속수무책이다. 노동절을 이틀 앞둔 4월의 마지막 날에 우리는 38명의 노동자들의 목숨을 빼앗았다. 명백한 사회적 타살이다.

포스트 코로나의 대응은 미래 전략이 아닌 현실의 문제이다. 공공성을 확충하고 강화하자. 의료진의 헌신적인 노력과 국민의 동참으로 코로나 위기를 극복하고 있지만 한국 공공의료의 속살은 처참하다. 우리나라 보건의료체계는 민간의료기관에 90% 이상 의존해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건의료정책을 실행할 직접적인 수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공의료를 확충하고 지역별 공공의료원을 설립해야 한다.

그린 뉴딜 전략의 과감한 추진이다. 그린 뉴딜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해 저탄소 친환경 경제로 전환하며 일자리와 경기부양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방안이다. 한국은 에너지 소비량 세계 9위 국가이면서도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5%에 달하고,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OECD 꼴찌 국가이다. 반기문 전 유엔총장의 쓴 소리다. “우리나라는 ‘기후악당’이다. 국제 트렌드는 2050년까지 온실가스 총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네트 제로(net zero)실현이다. 유럽연합은 이미 법제화했다. 영국도 2020년까지 모든 화력발전소를 없앤다. 그러나 한국은 G20에 속하는 나라임에도 화력발전소를 없애지 못한다.” 에너지 전환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오래된 숙제이다.

연구소의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