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시론)재난은 평등하지 않다

#. 이글은 2020-03-16 06:00 『뉴스토마토』 '(시론)재난은 평등하지 않다'에 실렸던 글 입니다. [기사링크]
 
작성자: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코로나19의 파장이 심상치 않다. 방역 당국의 헌신적인 노력에도 확진자 수가 8천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75명에 이른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국내 환자 발생 53일 만에 완치가 확진자 수를 처음 앞섰다는 점이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구로 콜센터 집단감염처럼 어느 곳에서 지역 확산이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일상 활동을 멈추고 사회적 거리두기(social distancing)의 실천이 필요한 때이다.
 
코로나19의 확산 억제와 함께 사회경제적 피해를 줄이기 위한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너진 골목 상권과 소상공인을 일으켜 세우고, 내수 경제의 활성화를 위한 재난 특별대책이 필요하다. 정부도 추경을 편성하는 등 후속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그런데 정부의 추경안은 대통령의 지시에도 과거 추경과 엇비슷한 규모이고 내용도 판박이다. 대통령은 현 상황이 “통상적이지 않은 비상 상황이라며 정책적 상상력에 어떤 제한도 두지 말고, 과감하게 결단하고 신속하게 추진해야 한다”고 지시했다. 기획재정부가 마련한 추경은 11조7000억 원으로, 그 규모가 2015년 메르스 추경(11조8000억원) 때와 비슷하다. 2008년 금융위기 직후 편성했던 28조4000억원과 비교하면 턱 없이 부족하다. 추경 규모가 예상보다 적다보니 여야 모두 정부의 탁상행정을 탓하며 규모 확대와 직접 지원을 요구한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추가경정예산의 규모를 40조원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말한다.
 
추경 규모도 문제지만 세부 내역은 더 심각하다. 돈과 물자가 필요한 사람에게 직접 전달되는 돈보다 간접 지원이 태반이다. 11.7조원을 뜯어보면 세입경정(세입감소) 3조2000억원과 세출경정(세출확대) 8조5000억원 둘로 이루어져 있다. 세부 항목은 저소득층 대상 2조원 규모 상품권 지급, 긴급경영안정자금 대출 확대와 일자리안정자금 지원 등 소상공인·중소기업 대책에 2조4000억원 투입, 음압병실·구급차 확충 등 방역체계 보강에 2조3000억원, 지역경제·상권 피해 회복에 8000억원이다. 재난 피해를 당한 자영업자, 노동자 등 시민들에게는 하나마나한 추경이다. 재난 상황에서 어찌할 방도가 없는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혜택이 너무 없기 때문이다. 이번 추경에는 소상공인지원 및 의료기관 융자사업 1조7000억원이 포함돼 있다. 융자사업은 말 그대로 소상공인이 누리는 혜택이 아니라, 이자 깎아주기에 불과하다.
 
금리 차를 따져보면 실제 돌아가는 경제적 혜택은 약 340억원에 불과하다. 물론 추경에는 국민 약 580만명에게 2조6000억원 가량을 지역사랑상품권과 현금으로 지원하는 방안이 포함돼 있지만 턱없이 부족하다. 4인 가족 기준으로 폭등한 마스크 비용만 20∽30만원을 초과해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다. 임대료 지원도 정책 목표와 방향이 엉뚱하다. 정부는 올 상반기 6개월 동안 소상공인에 해당하는 임차인의 임대료를 내리는 임대인에게 임대료 인하분의 50%를 소득세·법인세에서 감면하겠다고 했다.
 
박수 받을 정책처럼 보이지만 주객이 전도된 하책이다. 최소 4개월 이상 매출감소가 불가피한 자영업자들에게 직접 지원금을 주는 것이 좋지, 임대업자들에게 혜택을 줄 이유가 무엇인가. 착한임대인 찾다가 쓰러지는 골목상권이 현장의 모습이다. 소상공인연합회가 3월4일부터 9일까지 전국 소상공인 1080명을 대상으로 실태조사를 한 결과, 응답자의 90.3%는 “착한 임대인 운동의 효과가 없다”고 답했다. 또한 착한 임대인 운동이 소상공인의 부담을 어느 정도 덜어 주리라는 데는 소상공인의 49.8%가 동의했으나, 34.1%는 일시적으로 소수만 혜택을 볼 것이라고 응답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가 전 세계로 확산된 팬데믹(대유행)이라는 점을 고려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전 국민을 대상으로 지급하는 재난구호수당 지급이다. 이재웅 쏘카대표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재난기본소득 50만원을 어려운 국민에게 지급해달라는 제안에서 시작된 이 논의는 자치단체장들의 요구로 확산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중위소득 이하 796만 가구에 두 달간 60만원씩 지급하는 재난긴급생활비를 도입하자”고 건의했고, 김경수 경남도지사는 모든 국민들에게 1인당 100만원을 일시적으로 지급하고, 고소득층에겐 내년에 세금으로 다시 거둬들이자”고 제안했다. 김승수 전주시장은 ‘전주시 저소득 주민의 생활안정 지원조례’에 근거해 실업자와 비정규직 등 5만명에게 50만원씩 총 250억원을 투입한다고 발표했다.
 
개념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목표는 동일하다. 국가가 재난 상황에 빠진 국민들에게 직접 지원을 통해 생계를 보전하고 재난 위험에서 탈출할 수 있는 징검다리가 되자는 것이다. 재난수당은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수당을 지급하는 기본소득과는 달라야 한다. 재난은 모든 사람에게 평등하지 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동자, 대리운전 기사, 문화예술인, 아르바이트생, 프리랜서, 돌봄교사, 시간강사 등 재난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지원을 집중해야 한다. 외부의 위협에 맞서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는 방어막은 사회적 약자일수록 더 취약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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