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우리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새빨간 거짓말(2019.5.5)

[칼럼] 우리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는 새빨간 거짓말(오마이뉴스 똑경제, 전경련의 주장이 말도 안되는 까닭,  2019.5.5, 김유선) 
 
10년 전에는 정부와 재계에서는 입만 열면 '한국의 고용보호수준이 높고,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고 얘기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그런 얘기 잘 안 한다. 사실이 아님이 분명해졌고, 자칫하면 망신당하기 딱 알맞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전체 노동시장은 유연하지만, 대기업 정규직은 경직적'이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요 며칠 사이 철지난 레퍼토리가 고장 난 레코드에서 흘러나오고 있다. 전경련 부설 한국경제연구원이 진원지다. 밑도 끝도 없이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경직성이 높고 이직률이 낮고 실업기간이 길다는 특성을 지니고 있어, 최저임금 인상으로 한번 해고되면 다른 직장을 얻을 기회가 낮다'고 협박한다.
 
과연 그럴까? 한국의 장기 실업자 비중이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이 과연 경직적인지, 이직률이 낮은지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경제연구원의 철지난 레퍼토리
  
우리는 고용이 불안정하다고 하는데, 정부나 재계에서는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라고 얘기한다. 노동시장이 경직적이다, 유연하다 얘기할 때 근거로 가장 많이 드는 것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고용보호지수다.
 
아래 <그림1>은 2013년 고용보호지수다. 고용보호지수는 5년마다 갱신하기 때문에 최근 자료다. 고용보호지수는 어렵지 않은 개념이다. 각국의 노동법 해고 조항에 0점부터 6점까지 점수를 매긴다. 0점은 보호 수준이 가장 낮고 6점은 보호 수준이 가장 높다. 지수는 각 조항별 점수를 합산한다.
 
상식대로라면 6점에 가까울수록 고용보호 수준이 높아 좋은 나라고, 0점에 가까울수록 고용보호 수준이 낮아 안 좋은 나라다. 과거에는 그랬다. 그런데 요즘에는 세상이 거꾸로 됐다. 고용보호 수준이 높으면 노동시장이 경직됐다며 부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고용보호 수준이 낮으면 노동시장이 유연하다며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림1>에서 그래프 중간의 가로선이 OECD 평균이다. OECD 국가 중 고용보호 수준이 가장 높은 나라가 독일이고, 가장 유연한 나라가 뉴질랜드다. 한국은 OECD 34개 국 가운데 22위(2.17점)로, OECD 평균보다 조금 낮다. 따라서 한국의 노동시장이 경직됐다고 얘기할 수 없다. 평균보다 조금 유연하다고 얘기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본 OECD 고용보호지수는 법률 조항을 평가한 것이다. 흔히 법과 현실은 다르다고 얘기한다. 그럼 현실은 어떨까?
 
국제비교에서는 고용안정지표로 근속년수 통계를 많이 쓴다. 고용사정이 좋아 새로운 직장이 계속 생기면 노동자들이 이곳저곳 많이 옮겨 다닐 수 있다. 이때는 근속년수가 짧은 것이 고용사정이 좋다는 의미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두세 번 직장을 옮기다가 이 직장 다닐만하다고 생각하면 더 좋은 직장이 생겨도 잘 옮기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근속년수 통계를 고용안정성을 말해주는 대리 지표로 사용한다. 
 
근속년수를 국제비교한 위 <그림2>를 보면 우리나라는 근속년수가 1년이 안 되는 단기 근속자가 31.9%로 매우 높다. 노동자 3명 중 한 명 꼴로 근속년수가 1년이 안 된다. 이는 매년 노동시장에 새로 들어오거나 직장을 옮긴 사람이 3분의 1 이라는 얘기다. 우리보다 높거나 비슷한 곳은 칠레, 터키 두 나라다. 멕시코도 우리보다 낮은 26%고, 노동이동이 활발하다는 덴마크도 22.1%다. 독일은 14.2%고, OECD 평균은 18.7%다.
 
이번엔 근속년수가 10년 이상인 장기근속 노동자 비율을 보자. 유럽 국가들은 장기근속자가 40%가 넘고, OECD 평균은 34.1%다. 한국은 장기근속자가 20.6%로 칠레 다음으로 낮다. 한국은 단기근속자 비율은 가장 높고, 장기근속자 비율은 가장 낮은 나라다.
 
과거 서구 연구자들이 글을 쓸 때 한국이 일본 옆에 있다 보니 '한국도 장기근속의 나라'라고 덩달아 불러줬다. 그러나 뚜껑을 열고 보니 실상은 전혀 달랐다. 한국은 초단기 근속의 나라로, 고용이 매우 불안정한 나라다.
 
진실은, 우리는 너무 유연하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의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사실은 다른 통계로도 확인할 수 있다. 아래 <표1>은 고용정보원이 매년 발표하는 고용보험통계연보(2016년)에 실린 이직률이다. 표에서 2016년 고용보험 가입자는 1,266만명이다. 공무원과 교사는 고용보험 가입대상자가 아니다.
 
민간부문 노동자들은 고용보험에 가입해야 하는데, 비정규직은 가입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따라서 이 수치는 민간부문 정규직 대부분과 비정규직 일부, 그러니까 민간부문에서 괜찮다는 일자리는 대부분 망라한 것으로 보면 된다.
 
피보험자 1,266만명 가운데 한 해 고용보험 상실자가 641만명이고, 이직률은 50.7%다. 조금 전 OECD 통계에서 1년 미만 단기근속자는 3분의 1 이었다. 그런데 고용보험통계에서는 절반이다. 이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 고용보험통계에는 고용이 가장 안정된 공무원과 교원이 빠져 있고, 한 사람이 직장을 여러 번 옮기면 각각 이직 회수로 계산되기 때문이다.
 
보통 우리는 대기업은 형편이 좋고 중소영세업체는 형편이 나쁘다고 생각한다. 5인 미만 회사는 이직률이 1년에 61.1%로 60%를 넘어선다. 반면 1000명 이상 대기업은 33.7%다. 대기업이 중소영세업체보다 형편이 나은 것은 사실이지만, 대기업 이직률 33.7%도 만만한 수치가 아니다. 비자발적 이직자 비율은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나 별 차이가 없다. 특히 대기업은 기간 만료로 그만둔 사람들이 많다. 이는 대기업일수록 기간제 등 비정규직을 많이 사용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선 비정규직은 말할 것도 없고, 정규직도 고용이 매우 불안정하다. 노동자들이 느끼는 고용불안은 단순히 심리적 불안감을 넘어서서 객관적으로 뚜렷한 근거가 있다. 그런데도 밑도 끝도 없이 노동시장이 경직적이고 이직률이 낮다니? 주장할 게 있으면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해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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