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여성혐오와 노동권이 만났을 때

작성: 윤자호 연구원
 
 
지난 26일 게임 제작 회사 IMC게임즈는 게임 유저들로부터 소속 직원(원화가*) A씨가 민우회 계정 등을 팔로우 하고, ‘한남’**이란 단어가 들어간 글을 리트윗 했다는 항의를 받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업무와 관련성 없는 개인의 SNS 활동은 감시 대상도, 항의 대상도 될 수 없다. 따라서 IMC게임즈는 “본사는 직원 개인의 정치적 입장 및 SNS 활동에 관여할 권한이 없다.” 정도로 응답했어야 했다. 지금까지 수많은 남성 노동자들의 여성혐오적 SNS 활동이 크게 문제 된 적 없듯이 말이다. 
 
하지만 상식과 크게 어긋나는 일이 일어났다. 김학규 IMC게임즈 대표가 “논란이 된 메갈*** 트위터건에 대해 사내에서 진행된 담당 원화가와의 면담과 이후 상황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A씨의 실명을 비롯한 사내 면담 내용을 게시한 것이다. “그런 생각을 바닥에 깔고 작업하는 사람이라면 동료로서 같이 일하는 것이 곤란할 수 있겠다.”는 판단 하에서였다. 공개된 면담 내용은 소위 ‘반사회적인’ 페미니즘 활동에 대한 사상 검증이었다.  
 
“비상식의 상식화”: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만드는 기형적인 게임 업계 
왜 이런 놀라운 일이 일어났을까? 답을 찾기 위해선 한국 게임 산업 전반에 만연한 여성혐오 문화와 성차별적인 노동환경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게임 업계에서는 이미 2016년 프리랜서 성우 B씨가 페이스북 페미니즘 페이지인 <메갈리아4>를 후원하는 “Girls Do Not Need A PRINCE” 티셔츠를 입었다는 이유로 유저들의 항의를 받은 바 있다. 결국 B씨는 녹음 비용만 받고 녹음 작업에서 하차했다. 
 
이 사건은 개인의 정치․사회적 입장 표현이 소비자의 항의를 거쳐 불이익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남겼다. 이후 게임 제작에 참여한 프리랜서 노동자가 자신의 SNS에 페미니즘 이슈를 올리면, 게임 유저들이 적극적으로 항의하거나 불매 의사를 밝히며 해당 노동자의 해고를 요구했다. 기업은 유저의 요구를 수용해 이미 서비스 되고 있던 노동자의 작업물을 내렸다.
 
<게임개발자연대>가 지적하듯, 성우‧원화가 등 여성 프리랜서 노동자를 대상으로 일어났던 반 페미니즘적인 사상검증이 이제는 여성 직접고용 노동자로 향했다. 노동자성을 인정받기 힘든 프리랜서의 작업물을 사용하지 않고, ‘계약 해지’를 하던 것이 직접고용 노동자에 대한 인사상 불이익 협박과 인권 침해로 번졌다. 고용형태, 소속 기업, 직무 등의 차이를 빼고 나면 여성 노동자가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 했다는 공통점만이 남는다. 
 
‘일부’ 게임 유저들의 불매, 소비자 운동 아닌 폭력  
여성 노동자의 페미니즘적인 의사표현과 활동에 대한 일부 게임 유저들의 항의와 불매운동, 그리고 일련의 성과는 얼핏 보면 성공적인 소비자 운동을 연상케 한다. 불매운동의 효과와 의의는 크게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항의 대상의 상품을 구매하지 않음으로써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에게 직접적인 타격을 주는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왜 불매하는가?”를 이야기함으로써 스스로가 지향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다. 
 
삼성, 남양유업, 위메프, 한샘 등 불매운동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는 기업들은 모두 노동자의 인권을 침해하는 폭력을 자행했다. 따라서 이러한 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은 대부분 노동조합 결성 및 활동에 대한 권리‧안전하게 일 할 권리‧산재 보상을 받을 권리‧대기업의 갑질에 대한 항의‧기업 내에서 구조적으로 발생한 성폭력에 대한 항의 등 기본적인 인권과 노동권 보장이라는 가치를 이야기한다. 
 
그에 비해 ‘일부’ 게임 유저들의 반 페미니즘적인 불매운동은 어떤 가치를 이야기 하는가? 이 불매운동은 “반사회적이고 혐오를 조장하는 잘못된 페미니즘에 반대한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남성중심적인 가부장적 사회에서 오랫동안 자행되어 온 여성에 대한 폭력과 차별에 문제제기하는 모든 의견(페미니즘)을 척결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는 헌법상 명시된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고, 사회 구성원과 공유해서는 안 되는 폭력이다. 
 
동료 시민으로서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소위 ‘잘못된 페미니즘’은 척결해야 한다는 비상식이 게임 산업에서 상식처럼 통용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우려된다. 젠더 감수성이 없는 소비자와, 헌법상 명시된 기본권보다 기업의 이윤을 추구하는 경영인이 공모하여 성차별적인 노동환경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오직 여성혐오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기적이다. 상식 없는 소비자와 상식 없는 기업의 공모가 기형적인 산업구조를 공고히 하고 있다. 
 
일부 게임 유저들의 불매운동은 페미니즘 이슈를 이야기하거나, 반 페미니즘 불매운동에 문제제기한 게임 제작자 및 제작자의 지인을 대상으로 한 블랙리스트 작성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오른 소규모 게임 제작사는 도저히 가늠할 수 없는 손해를 감수하거나, 잘못하지 않은 일에 사과하거나,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노동권을 침해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 
 
촛불 혁명으로 정권이 교체된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2018년 현재 더 평등하고 더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헌법 개헌 논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게임 산업이 이 흐름에서 예외가 되어야 할 이유는 없다. 
 
지난 해 유명 게임회사 노동자가 과로사 하여 산재를 인정받았다. <게임산업 종사자의 노동환경 실태에 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게임 산업 노동자들은 불안정 고용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야근 수당 역시 제대로 지급되지 않고 있다. 남성 중심의 개발자 및 사무직 직접고용 노동자/여성 중심의 아티스트 프리랜서 노동자라는 성별화된 고용 구조 흐름 역시 진지하게 고민 되어야 할 대상이다. 지속적으로 문제제기 되고 있는 게임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와 소아성애적 코드에 대한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 게임 산업의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 ‘상식적인’ 토양을 만드는 데 동참해야 할 것이다. 게임 밖의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    게임 원화가란 게임 기획 후 게임과 관련된 이미지(캐릭터, 배경 등)를 창작하는 직업이다. 게임 원화가의 작업물을 토대로 게임 그래픽이 만들어진다. 
**  한국남성의 줄임말로, 한국 인터넷에서 오랫동안 이어져 온 여성에 대한 비하어인 ‘된장녀’, ‘김치녀’ 등에 대한 미러링이다(출처: 페미위키). 주로 가부장적이고 젠더 감수성이 없는 남성을 이를 때 사용한다. 
*** 2015년 메르스 사태 때 있었던 여성 혐오 담론에 분노한 네티즌들이 개설한 ‘메갈리아 갤러리’에서 파생된 말이다. 메갈리아 사이트는 사라졌으나, ‘메갈’은 여성 혐오에 대한 미러링 활동을 하는 여성을 이르는 말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페미니스트 일반을 가리키거나, 과거 페미니스트를 비하하던 ‘꼴페미’를 대체하는 말로 확장되어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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