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88만원 이하 저임금은 없애자!(한겨레신문 2008.6.26)

1998년 외환위기 직후 갑자기 실업자가 되었다. 몇 달을 보내다가 ‘공부나 해야겠다’며 늦깎이로 학교를 다녔다. 20년 만에 대학의 젊은 벗들과 어울리다 보니,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하는 공부가 대부분 취직시험 준비’라는 사실에 놀랐다.

내가 대학에 다니던 70년대는 캠퍼스에 경찰병력이 상주하고, 군사정권을 비판하는 유인물 몇 장 뿌렸다는 이유로 5년, 7년 실형을 선고받던 시절이다. 그때와 비교하면 요즘 학생들은 훨씬 행복한 세대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세상 사는 데 그다지 도움이 안 될 취직시험 준비나 하며 대학생활을 보내는 것을 보면, 70~80년대 학생들이 더 행복했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러한 세대간 차이에 대한 공감대가 넓어져서인지 <88만원 세대>가 널리 읽히고 있다 한다. 386세대는 학점이 나빠도 직장을 골라가며 취직했지만, 요즘 20대는 대부분 비정규직 신세다. 이러한 세대간 불균형은 세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의 폐해가 정치적 자기보호 능력이 없는 20대에 집중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세대간 불균형을 너무 강조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면서도 한번쯤 읽어볼 책으로 권할 만하다.

세계화와 노동시장 유연화에 따른 폐해가 반드시 20대에 한정되는 것은 아니다. 올해 3월 통계청 자료를 보면, 우리나라 노동자 1600만명 가운데 한 달 월급이 88만원 이하인 사람은 309만명이다. 20대 이하는 71만명이고, 30대 이상은 219만명이다. 미혼 남자는 39만명, 미혼 여자는 43만명인데, 기혼 남자는 53만명이고 기혼 여자가 174만명이다. 따라서 20대 미혼 남녀뿐만 아니라 30대 이상 기혼 남녀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이처럼 한 달 월급이 88만원도 안 되는 저임금 계층이 5명 중 1명꼴로 폭넓게 존재하는 것은 최저임금이 비현실적으로 낮은 수준에서 책정될 뿐 아니라 그나마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저임금은 노동자들에게 공정임금을 보장하여 형평성을 제고하는 데 효과적이고, 연령간·남녀간 임금격차를 축소한다.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높은 나라일수록 임금 불평등이 낮고 저임금 계층 비율도 낮다’고 한 데서도 최저임금의 중요성을 확인할 수 있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3770원이고, 월급으로 환산하면 79만원이다.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막바지 협상이 진행되고 있다. 지난번 회의에서 노동계는 올해보다 20% 오른 95만원을 제시한 데 비해, 재계는 2% 오른 80만원을 수정안으로 제시했다. 70년대에 노동자들이 즐겨 부른 “요즈음 지식인은 머리가 나빠요. 물가가 올랐으면 임금도 올라야죠”라는 가사가 생각나는 대목이다.

몇 해 전 서거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 노동칙령에서 다음과 같은 어록을 남겼다. “인간을 위한 노동이지, 노동을 위한 인간이 아니다. 사람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종류가 얼마간 객관적 가치를 달리하더라도, 노동의 주체인 인간의 존엄성을 최우선 척도로 판단해야 한다. 사람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종류가 무엇이든, 그것이 아무리 단조롭고 단순한 서비스일지라도, 노동을 수행하는 목적은 항상 인간이다.”

고위 관료와 공공기업 임원에게는 억대 연봉을 지급하면서도, 노동자 5명 중 1명꼴로 한 달 월급 88만원, 연봉 1천만원조차 지급하지 않는 우리 현실에서 귀담아들어야 할 말씀이다. 내년에는 88만원 이하 저임금이 사라지도록 최저임금위원회가 88만원을 웃도는 수준에서 최저임금을 정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