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요된 ‘사회적 타살’

 
온 나라의 관심이 19대 대통령 선거에 쏠려있는 이 순간, 대선 후보들은 한국 사회 개혁을 위한 온갖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일반 국민들의 고달픈 삶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함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탄핵 후 구속되었지만 경쟁과 효율을 으뜸 정신으로 하는 박정희 체제의 유산은 아직도 온 사회에 굳게 뿌리내려 있다.
 
지난 1월22일 전주 LG유플러스 고객센터인 LB휴넷에서 일하던 특성화고등학교 현장실습생이 저수지에 몸을 던졌다. 숨진 홍양은 부친과 나눈 문자에서 “나 콜(call) 수 못 채웠어”라고 푸념했다. 이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건 아무런 보호 장치 없이 무한경쟁의 콜센터 감정노동에 시달렸단 사실이다. 하지만 회사 측은 모르쇠로 일관하며 책임 벗기에 급급하다. “여고생의 죽음은 안타깝게 생각한다. 하지만 6시 이후 연장근무, 그리고 부당한 지시(TV 판매 등)나 콜 수 목표 할당은 강요하지 않았다.” LG유플러스 협력회사가 내 놓은 공식 해명이다.
 
무엇이 꽃다운 여고생을 죽음으로 내몰았는가. 3년 전 같은 부서에서 근무했던 노동자가 같은 이유로 자살했던 기록을 보면 죽음의 원인을 개인 탓으로 돌리는 파렴치한 행위는 반복되고 있다. 숨진 그녀는 특성화고교에서 ‘애완동물과’를 다녔지만, 실습은 전공과 전혀 다른 콜센터에서 했다. 고객들의 해지를 막고 상품을 판매하는 부서로 건강한 성인도 감당하기 힘든 감정노동이 극심한 업무였다. 전공과 연관성을 찾기 힘든 생뚱맞은 현장실습이 한 학생을 궁지에 내몬 결과다. 현장실습이란 이름 아래 매년 반복되는 노동 착취이고 우리 모두가 방조한 ‘사회적 타살’이다.
 
현장실습제도는 박정희 정권 때인 1963년 일선학교의 실습용 교육기자재 부족을 메우기 위해 처음 도입됐다가 1993년 김영삼 정부 땐 신경제 5개년 계획에 따라 3D업종에 노동력 공급을 위한 도구로 전락했다. 물론 산업체 파견형 현장실습은 특성화고등학교 교육 과정의 일부로서 꼭 필요한 제도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장실습 제도의 도입 명분과 실제 운영은 하늘과 땅 사이의 차이만큼 크다. 교육부가 발간한 ‘특성화고 현장실습 매뉴얼’은 현장실습의 목표를 ‘학교에서 배운 지식과 기술을 산업현장에서 적용하고 다양한 직업체험을 통해 현장적응력을 기르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파견형 현장실습에는 ‘실습’이라고 이름 붙일만한 교육 프로그램이 전혀 없다. 사업주들은 현장실습생을 선발하고 일을 시키는 과정이 신입사원을 뽑아 교육하는 과정과 전혀 다르지 않다고 말한다. 현장실습은 젊은 노동자를 억지로 인기 없는 일자리로 공급하는 파견업체 역할을 맡고 있을 뿐이다.
 
특성화 고등학교의 현장실습제도로 인한 비극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4년 CJ제일제당, 2015년 경기도 성남의 외식업체 조리부, 2017년 대림산업 협력업체 등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11년 기아자동차 광주공장, 2012년 석정건설, 2014년 현대자동차 협력업체, 2016년 은성 PSD에서 현장실습을 하던 학생들은 사고를 당하거나 쓰러졌다.
 
교육부와 노동부가 우리 부처의 책임이 아니라고 핑퐁 게임을 하다가 여론이 악화하자 부랴부랴 대책 마련에 나섰다. 교육부가 실태조사에 나섰고, 고용노동부는 특별근로감독을 하겠다고 했지만 그 행태가 뜨뜻미지근하다. 교육부는 2017년 3월16일 ‘현장실습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했다. 이 결과에 따르면 전국 593개 특성화고 중 표준협약서를 사용하지 않은 산업체 238곳과 현장실습생에 위험한 업무를 지시한 업체 43곳, 임금을 지급하지 않은 업체 27곳, 성희롱 등 인권을 침해한 업체 17곳, 부당하게 대우한 업체 45곳 등이 확인되었다. 교육부의 점검 결과를 보면, 표준협약서를 아예 맺지 않거나 노동시간을 어긴 사례가 적발됐는데, 이는 직업교육훈련촉진법이 강화된 2016년까지도 교육부가 현장실습을 제대로 관리·감독하지 않았음을 실토한 것이다.
 
매년 약 10만명의 청소년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현장실습이라는 이름으로 노동현장에 내몰린다. 오늘날의 현장실습제도는 본연의 취지를 잃은 채, 학교를 통해 손쉽게 저임금 노동력을 공급받는 제도로 전락해버렸고 청소년 노동은 착취당하고 있다. 감사원도 2015년 “산업인력 양성 교육시책 추진실태” 감사를 통해 학생 중 20.5%가 전공과 무관한 산업체에서 실습했고, 현장실습협약과 배치되는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등 제도도입 취지에 맞지 않게 운영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홍양의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한 사회적 논의와 제도 개편이 절실하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이라도 제대로 고쳐야 하지 않겠는가.
 
* 이 칼럼은 뉴스토마토에 기고한 것으로, 4월 17일자 신문에 게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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