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촛불항쟁과 사회개혁의 과제

 
10월29일 첫 번째 촛불집회가 점화한 지 벌써 50일을 넘어서고 있다. 2만명에서 시작된 촛불집회는 전국 방방곡곡 200만명의 촛불항쟁으로 확산되었고 그 힘은 대통령을 탄핵하였다. 독일의 유력주간지 ‘디 자이트(Die Zeit)’는 대통령 탄핵 심판은 국회가 의결했지만, 진정한 주인공은 ‘용감하고 열정적인 민주적 시민들’이라고 보도했다. 촛불집회는 시간이 갈수록 진화하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주도하는 맥 빠진 결의대회가 아닌 집단지성의 광장이 되었다. 광장의 진화 중에서 두드러진 점은 광장을 토론과 개혁의 장으로 만드는 여러 시도들이다. 참가자 모두 광장에서 백만분의 일이 되려 했기에 광장은 곧 수백만이 되어갔다.
 
촛불의 위대함은 국민 통합과 국민 주권의 자각으로 집약된다. 촛불시위는 영호남도, 남녀노소의 차이도 없는 국민 통합의 새로운 역사를 만들었다. 또한 ‘바꿀 수 있겠다’는 승리의 믿음을 확인하였다.  이명박근혜정부 9년을 유지했던 강력한 억압 기제는 패배주의였다. ‘부당해도 참자’, ‘찍히면 죽는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다’, ‘그러다 너만 다친다’는 굴종의 언어는 희망의 언어로 바뀌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조문은 국민의 무기가 되었다. 국민들은 자신 있게 새로운 사회와 희망을 노래한다. 촛불시위의 끝이 어떻게 될지 예단할 수 없지만, 촛불은 계속 성장 진화하는 생물체이다.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내고 전진하던 한국 민주주의는 보수 기득권 세력의 저항과 반격에 직면해 있다. 권한대행인 황교안 국무총리는 대통령 탄핵에 대한 최소한의 반성도 없이 대통령 코스프레에 분주하다. 대통령이 국민 탄핵을 당한 국면은 집행부에 대한 주권 회수 상태여서  주권자와 의회가 협력해 헌법 권한을 행사해야 하는 상황을 뜻한다. 그런데 권한대행의 행태는 국민과 국회의 목소리는 아랑곳 않고 기존 정책 추진에만 열성이다. 국정교과서 강행이 그러하고, 노동개혁 밀어붙이기가 그 예이다. 새누리당도 도긴개긴이다. 박근혜정부 주역들의 반성은 없고,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친박과 비박의 구태는 보기에도 역겹다. 보수정당의 혁신 과제는 간데없고, 친박은 2선 후퇴도 거부하고 국민이 뭐라 하든 당권만은 절대로 놓을 수 없다며 이전투구다. 보수언론들은 ‘질서 있는 퇴진’, ‘이제 국민은 일터로 돌아가라’며 명령한다. 조선일보는 “모두 다 뒤집자는 것은 곤란하다. 대중의 분노에 올라탄 선무당 개혁 굿판은 안 된다”며 국민들의 변화 열망에 찬물을 끼얹는다. 한국경제신문은 한 발 더 나아간다. 정국 혼란을 틈 타 국회에 ‘반기업 입법’이 폭주한다며 경제민주화에 반대하는 자신의 속내를 드러낸다. 정점은 역시 김진태 의원이다. “촛불은 촛불일 뿐이지, 바람이 불면 다 꺼진다”고 촛불시위를 폄하했던 그는 “우리도 백만 모일 수 있다”며 맞불 집회를 선동한다.
 
보수의 반격이 시작된 것이다. 옛 구조와 가치는 국민들의 퇴장 명령을 받았으나 새 희망과 질서는 아직 희미하다. 대통령 한명 바뀐다고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탄핵을 넘어서는 사회개혁의 새로운 판을 만들어 나갈 때이다. 한국 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지배 카르텔은 탄핵이후의 새로운 지배체제를 도모한다. 6월 시민항쟁 이후 30년이 지났지만 재벌·관료·금융·법조의 상층이익동맹은 요지부동이다. 이 담합구조를 해체하지 않는 한 특권 지배구조도, 정경유착의 고리도 해소할 수 없다.
 
촛불시위는 탄핵을 넘어서 사회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 절망과 분노의 대한민국을 희망의 국가로 만들 대안과 방법을 함께 고민해야 한다. 청년, 비정규직, 화이트칼라, 영세자영업자 등 광장으로 나온 국민들의 고달픈 삶을 바꿀 민생 개혁 의제를 이야기해야 한다. 불평등·불균형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담대한 비전을 제시하고 그 실행에 나서야 한다. 비정규직 노동자의 수준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그들의 임금을 대폭 올릴 최저임금 인상에 머뭇거릴 이유가 없다. 재벌의 독점적 경제구조와 다단계 하청구조의 혁신을 강제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고 시행해야 한다. 희망의 대한민국은 승자독식도, 경제 양극화도 아닌 함께 사는 공정사회이다. 1987년 정치적 민주화의 열린 공간에서 거세게 터져 나온 노동자들의 생존권 투쟁은 기존 사회 시스템을 한 순간에 무너뜨렸다. 시간이 그리 넉넉하지 않다. 제도 정치권이 응답하지 않으면 제2의 촛불은 기존 질서를 쓰나미처럼 무너뜨릴 것이다. 노동자와 서민들의 분노가 임계점에 다다랐다.
 
* 이 칼럼은 12월 19일자 뉴스토마토 시론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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