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주류경제학 뒤에 숨겨진 ‘위선’- 미국식 아닌 ‘한국식 경제모델’을 추구해야

2004년 말지(211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펌]주류경제학 뒤에 숨겨진 ‘위선’- 미국식 아닌 ‘한국식 경제모델’을 추구해야
인터뷰/ ‘뮈르달 상’ 수상한 장하준 캠브리지대 교수

이종태 jtlee@digitalmal.com

미국은 철저한 보호무역국가였다

-『사다리 걷어차기』는 그동안 경제학자들이 주장해 온 것, 즉 세계경제는 자유로운 시장 덕분에 발전해 왔다는 주장을 뒤집어 놓은 책인 것 같다. 세계경제사에 대한 재해석이랄까.
“현재의 세계화론을 보면 이상으로 삼는 게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까지의 고전적 자유경제시대다.그러나 사실 당시의 자유란 것은 결국 선진국의, 그것도 가진 자의 자유였을 뿐이다. 전반적으로 엄청나게 폭압적인 시대였다. 이 책에서 나는 이 같은 시대를 미화하는 부분을 지적하려고 했다. 주류 경제학에서는 절대 그 시대가 잘못된 역사라는 것을 얘기하지 않는다. 선진국이 발전한 이유가 자유무역 때문이라는 이데올로기를 깨보려는 것이 집필의도였다.”
-책을 보면 공식적 역사 속에 숨겨진 역사, 또는 숨겨진 학자들이 많이 등장한다. 그런 부분을 재발굴한 이유는 무엇인가.
“미국 초대 재무장관인 알렉산더 해밀턴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우리가 흔히 독일에서 발명한 것으로 아는 ‘유치산업 이론’(후진국 정부는 관세?보조금?쿼터 등으로 선진국에 비해 ‘유캄한 자국의 신흥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것)을 처음 학문적으로 정형화했다. 그런데 그 사실을 미국인들도 잘 모른다. 10달러 지폐에서 매일 보는 사람인데 말이다. 해밀턴은 미국의 발전기에 당시 선진국인 영국 경제를 추격하는 시스템을 고안한 사람이다. 이밖에도 미국의 경우 19세기 유명한 경제학자들은 거의 다 보호무역주의자이고 제도경제학자였다. 그러나 현재 주류경제학계에서 이들의 역사는 언급도 되지 않는다.”
-나온 김에 미국 얘기를 좀더 해보자. 책 내용을 보면 남북전쟁부터 2차세계대전 까지는 미국이 가장 강한 보호무역주의국가였다고 나와있다.
“미국은 당시 공산품 관세율이 세계에서 제일 높았다. 그때 아담 스미스, 장 바티스트 세이 등 유럽의 주류 경제학자들이 전부 ‘땅 넓고 농업자원 풍부하니까 미국은 농업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요즘 선진국들이 후진국들한테 하는 소리와 흡사하다. 그런데 해밀턴이 등장해서 ‘미국은 자유무역해서는 절대 안 된다’고 강변했다. 해밀턴은 생전에 자신의 주장이 완전히 관철되는 것을 못 봤지만, 결국 미국은 1830년대부터 완전히 그의 정책기조로 나갔다. 링컨도 당시에 가장 열렬하게 유치산업 보호론을 주장한 정치인 중 하나였다. 그가 대통령이 되면서 관세를 종전의 두 배로 올려버렸다. 링컨의 경제보좌관 중 하나인 헨리 캐리는 당시 미국에서 제일 유명한 경제학자였지만 지금 헨리 캐리를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주류경제학자들이 미국 보호무역의 역사를 ‘어두운 과거’라고 묻어버렸기 때문에 해밀턴과 더불어 캐리 역시 잊혀져버린 것이다. 미국 시민전쟁(남북전쟁)은 두 가지 문제, 즉 노예와 관세 때문에 터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관세문제가 더 직접적인 원인이다.”

발전기에 자유무역 거부한 국가만 성공

-영국은 어땠나. 처음부터 자유무역으로 발전한 나라였나.
“전혀 그렇지 않다. 어찌보면 미국보다 더한 역사왜곡이 거기 숨어 있다. 영국이야말로 보호무역의 원조격이다. 14, 15세기 무렵 유럽의 산업중심지는 네덜란드, 벨기에, 플랑드르 지방이었고, 영국은 유럽의 변두리였다. 그 당시 소위 ‘하이테크산업’은 모직공업이었다. 영국은 양 키워서 양털을 수출하는 원료수출국이었다. 에드워드 3세, 헨리 7세 등 영국 왕들은 원료공급국의 위치를 벗어나야 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모직물 분야를 장려하기 위해 보호관세를 매기고 외국에서 기술자를 정부 돈 주고 초빙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특히 1721년엔 영국 최초의 수상이라는 로버트 월폴이 무역정책을 개혁했는데 그것은 1960~1970년대의 한국이나 일본이 썼던 정책과 상당히 비슷하다. 우리나라가 수출장려를 위해서 많이 쓰던 제도 중 하나가 수출원료관세환급이라는 제도였다. 원료를 수입하면 관세가 붙는데, 그 원료로 제품을 만들어 다시 수출하면 처음에 냈던 관세를 돌려주는 거다. 물론 국내시장에 제품을 팔면 그 돈을 돌려주지 않는다. 이렇게 수출을 장려한 것이다. 나는 처음에 이 제도를 일본이 만든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라 이미 17, 18세기에 영국에서 월폴이 그 제도를 본격적으로 시행했던 것이다.”
-결국 지금 말씀하신 게 책의 내용이라면 이른바 자유시장이 경제질서의 시금석처럼 된 ‘지금, 여기’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그렇다. 말하자면 자유시장이라는 게 선진국들의 이데올로기다. 그것을 아무 생각 없이 받아들인 나라는 발전을 못하고, 미국이나 독일처럼 무조건적인 자유무역을 강력히 거부한 나라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