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정규직 대책 좋은 예 보여준 서울시(경향신문 2012.4.17)

[칼럼] 비정규직 대책 좋은 예 보여준 서울시(2012.4.17 경향신문)

필자가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때는 정규직이니 비정규직이니 하는 말 자체가 없었다. 일자리 하면 요즘 말로 으레 정규직이었고, 큰 잘못을 범하지 않는 한 갑자기 직장을 그만두는 일은 없었다. 그때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가 채 안됐다.

한데 1인당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넘어선 요즘, 직장생활은 30년 전보다 훨씬 못한 것 같다. 학교를 마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젊은이들에게 주어지는 일자리는 대부분 기간제니, 파견이니, 인턴이니, ‘알바’니 하는 비정규직 일자리뿐이다. 비정규직이라도 경험을 쌓으면 더 나은 일자리를 얻는 데 도움이 된다고들 하지만, 한번 비정규직은 영원한 비정규직으로 헤어나기 힘든 덫으로 작용하는 경우가 더 많다.

열심히 일해도 비정규직 월급으론 살아가기 힘겹고, 익숙해질 만하면 기간제니 뭐니 해서 하던 일 그만두고 새로운 일자리를 찾아나서야 한다. 옛날 같으면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한 살림 차릴 나이도 훌쩍 지났건만, 당장 내 앞가림 하기도 힘드니 결혼이나 자녀출산은 먼 나라 얘기가 되기 십상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국민소득이 높아지면 우리들의 삶이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

지난 1월 정부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대책을 내놓았다. 상시 지속적인 업무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겠단다. 그동안 비정규직 대책은 나 몰라라 하던 새누리당도 공공부문에서 상시 지속적인 업무는 비정규직을 전면 폐지하고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단다. 좋은 일이다. 적어도 공공부문만큼은 ‘상시 지속적 업무는 정규직 채용’이 원칙으로 자리잡혀 나가는 것 같다.

하지만 정부대책을 들여다보면 의문이 꼬리를 문다. 지금까지 기간제로 일해 온 사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면 될텐데, 굳이 계약기간 2년을 기다려, 별도의 평가절차를 거쳐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할까? 60세 정년을 얘기하는 터에 55세가 넘는 비정규직은 고령자라며 정규직 전환대상에서 제외하는 건 뭔가? 임금 등 노동조건은 같으면서 고용만 안정되는 이른바 ‘중규직’이 아닐까?

이런 의문은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비정규직 대책에서 대부분 해소됐다. 그동안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지적해 오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서울시 대책에 대해서는 이례적으로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서울시 대책이 그동안 지적되어 온 정부 대책의 문제점을 대부분 해소했기 때문이다.

서울시는 상시 지속적 업무에 종사해 온 기간제 근로자 1054명을 5월1일자로 정규직으로 전환한단다. 중앙정부 대책처럼 계약기간 2년을 기다리지 않고, 근무성적이나 태도 등이 극히 불량한 사람을 제외한 전원을 정규직으로 전환한다. 만 55세가 넘더라도 60세가 안된 사람은 전환대상에 포함한다.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사람들은 기존의 상용직과 동일한 호봉표를 적용받고, 근속연수와 군복무 경력도 반영된다. 기간제로 일할 때는 연봉이 1500만원이었는데 이제는 초임이 2100만원으로 600만원 인상된다.

물론 이것만으로 서울시 비정규직 문제가 모두 해소되지는 않을 게다. 요즘은 기간제보다 민간위탁, 파견, 용역 등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더 심각하다. 서울시는 이에 대해 8월까지 연구용역 결과를 토대로 하반기에 종합대책을 마련할 것이며, 민간부문의 고용구조 개선을 유도하는 방안도 함께 강구하겠단다.

흔히 정부는 ‘모범 사용자’로서 고용관계에서 민간의 모범이 돼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그동안 정부는 모범 사용자는커녕 비정규직 남용을 선도하는 등 해서는 안될 일을 많이 해 왔다. 이번 서울시 비정규직 대책이 보여준 모범이 서울에 그치지 않고 중앙정부와 각 시·도 지방자치단체, 민간부문으로 확산돼 나가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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