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비주간논평] 박근혜정부의 분수에 맞지 않는 노사정대타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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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은 허핑턴포스트에도 게재됩니다.

창비주간논평 링크
http://weekly.changbi.com/?p=6800&cat=5
허핑턴포스트 링크
http://www.huffingtonpost.kr/joohwan-lee/story_b_9095140.html

2016년 1월 19일 한국노총이 노동시장 구조개혁 관련 '노사정대타협'의 파기를 선언하고, 향후 노사정위원회에도 불참하겠다고 통보했다. 직접적인 계기는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하기로 약속했던 '일반해고 행정지침'과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행정지침'을 강행 확정했기 때문이다. 그외에도 새누리당의 이른바 '5대 노동개혁 법안' 중 내용상 합의에 이르지 못한 '기간제법 개정안'과 '파견법 개정안'에 대한 일방적 입법 발의,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선 '민생구하기 입법 1000만 서명운동' 등의 월권적 압박 등이 영향을 줬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노총이 보기에 "정부·여당이 역사적인 9·15 합의를 멋대로 위반하고 깔아뭉개면서 사태를 파국으로 치닫"게 했다는 것이다.

노동시장 구조개혁, 무엇을 위함인가

복잡한 세부 쟁점들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정부가 확정한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의 골자는, 기존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저성과자' 분류 및 상시적인 해고를 사용자가 할 수 있도록 하고, 임금피크제와 성과연봉제 도입 등 임금체계의 변경을 일방적으로 시행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또한 여당이 발의한 기간제법 및 파견법 개정안은 기존 2년이었던 기간제근로의 사용시한을 35세 이상에 대해서는 4년까지로 연장하고, 노동자파견의 허용범위를 제조업 중 기초공정산업인 "뿌리산업" 6개 업종과 55세 이상 고령자까지로 확대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요컨대 기업이 정규직노동자에 대한 해고 및 근로조건 변경을 보다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하고, 기간제 및 파견제 등 비정규직노동자의 사용을 보다 용이하게 하는 게, 박근혜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자신의 구체적인 일자리 경험을 통해 노동시장 관행을 익힌 일반적인 한국 노동자들은 이러한 법제도적 규칙이 확립될 경우 전반적으로 고용불안 심화와 노동조건 후퇴가 야기될 것이라 예측하기 쉽다. 그러나 정부와 여당은 이러한 '근시안적인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장기적으로 대한민국 경제가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번 비상할 수 있도록 하는 디딤돌"이고, 나아가 청년과 장년 등의 "일자리 비상상황에 대한 타개책"이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보기에 기간제법 개정안은 "비정규직 고용안정법"이고 파견법 개정안은 "중장년 일자리법"이다.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지침은 "공정인사 확립"과 "청년고용 확대"를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선의의 목적을 가진 정책을 노동계가 반대하는 이유는 아마도 노조임원과 정규직으로서의 "기득권" 때문일 것이다. 기득권은 아래로부터의 저항, 예컨대 '1000만 서명운동'과 같은 방식으로 극복되어야 한다.

정부가 제기하는 이러한 논리 전개를 뒷받침하는 실증적인 근거는 아마도 없다. 2009년 정부는 기간제 사용시한을 4년으로 연장하는 법개정안을 제출하면서 '100만 해고대란설(說)'을 주장했다가 망신을 당했다. 당시 이명박정부는 2007년 시행된 기간제법에 따른 사용시한 2년이 2009년에 만료되면 대량의 계약해지가 발생할 테고, 이를 막기 위해서 사용시한을 4년으로 연장해야 한다며 핏대를 세우고 주장했다. 그러나 법이 개정되지 않았음에도 해고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러한 경험으로부터 배운 게 있어서인지 박근혜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장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를 제시하지 않는다. 물론 지난 1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는 일자리를 찾거나 구직을 포기한 청년들이 "100만명"에 이른다며 위기감을 조성했지만, 노동시장 구조개혁 정책이 어떤 효과를 가져올지에 대해서는 "간절한 목소리" "절절한 호소" 같은 수사를 들이댈 뿐이었다.

넘쳐나는 수사, 그러나...

그렇다면 도대체 정규직의 해고와 비정규직의 확대가 경제성장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도덕적이며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된다고까지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 탁월한 뻔뻔함? 그렇게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보다는 청와대와 재계의 일부가 심층 무의식에서 공유하고 있는 '시장지상주의'가, 한국노총이 보다 못해 파기선언을 할 정도로 급박하게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추진하는 근본적인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요컨대 그들은 일반적인 노동자와 '상식'이 다르다. 그들이 보기에 고용문제는 '대자연의 원리'로서 시장질서의 결과이다. 그러므로 이른바 "청년 고용절벽"은 시장질서에 대한 개입, 즉 기업에 대한 규제를 통해 해결할 수 없다. 또한 '법제도적 보호'는 노동자 간 문제이지 노동과 자본 사이 문제가 아니다. 청년과 비정규직 '과소보호'는 곧 장년과 정규직 '과보호'다. 자본의 횡포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장년과 정규직의 과보호를 깨야, 청년과 비정규직을 더 보호할 수 있다.

이러한 인식에 기초한 정책들은 실증적인 합리성을 갖고 있지 못할 뿐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소득주도 성장"을 제기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의 방침에 완전하게 어긋난다.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에서 밝힌 대로 "국제노동기구 관계자들도 우리의 대타협을 중요한 모범 사례라며 찬사"를 보냈다면, 그것은 '타협의 정신'에 대한 것이지 상기 정책내용에 대한 것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노동시장 구조개혁 추진은 정부가 주장하는 대로 "17년 만의 역사적인 대타협"이 아니라, 사실상 과거 노사정합의 결과의 훼손 시도라고 볼 수 있다. 박근혜정부가 금번에 개정을 추진하고 있는 비정규직 관련법은 2001년부터 노사정 논의를 시작해 2004년 말 확정한 것이다. 그 3년 동안 무수히 많은 노사갈등이 있었고, 결국 민주노총은 논의틀에서 이탈했다. 그 결과가 부족하나마 현재의 비정규직보호법이었다. 지난 이명박정부에서도 이를 보다 친기업적으로 개정하기 위한 시도들이 있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박근혜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 역시 그러한 시도들과 사실상 달라 보이지 않는다.

노사정타협 과정은 필연적으로 당사자 간 다층적인 갈등을 동반한다. 그러한 갈등을 제도적으로 순화하고 수용할 수 있는 능력이 바로 정부의 역량일 것이다. 지금 박근혜정부는 2001년 비정규직에 대한 규제가 사회적 화두로 떠올랐을 때보다 당사자들의 동의는 훨씬 적게 확보한 채 훨씬 더 급진적인 구조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타협에 필수적으로 따르게 될 갈등을 제도화할 실력이 박근혜정부에 준비되어 있을까? 지금까지 태도로 봐서는 회의적이다. 요컨대 무능력한 박근혜정부에 노동시장 구조개혁 추진은 '분수'에 맞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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