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지금 우리는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가(한겨레신문 2007.11.13)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워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꼭 돌아가야 한다. 불쌍한 내 형제의 곁으로, 내 마음의 고향으로,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너희들의 곁을 떠나지 않기 위하여 나약한 나를 다 바치마.”

이 글을 남기고 얼마 안 가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고 외치며 스스로의 몸을 불살랐다. 1970년 11월13일 오늘, 스물두 살 전태일은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당시 전태일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커다란 파장을 불러일으켰고, 많은 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을 자신의 삶으로 받아 안게 만들었으며, 오늘날 민주노조 운동의 시발점이 되었다. 70년대에는 작은 불씨에 불과하던 민주노조 운동은 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커다란 흐름으로 자리잡았고, 노동자들의 생활은 개선되고 노동시간은 단축되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전태일 열사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외침은 37년이 지난 오늘도 여전히 유효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법정 유급휴가조차 갖지 못하는 노동자가 800만명에 이르고,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200만명에 이른다. 노동자들의 파업과 시위에 대해서는 걸핏하면 ‘법과 원칙’을 강조하는 정부와 재계, 수구언론도 근로기준법과 최저임금법조차 지켜지지 않는 노동현실에는 애써 눈을 감는다.

지난달 27일에는 20년 넘게 전봇대를 오르며 고압선과 함께 살아온 비정규직 건설노동자 정해진이 “전기원 노동자 파업은 정당하다”고 외치며 스스로 몸을 불살랐다. 남들처럼 주5일제도 아닌 격주 토요휴무제를 요구하며 넉달 넘게 파업했음에도 단체협약조차 타결될 전망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현실이, 마흔여섯 살 정해진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이다. 또 한 명의 전태일이 다시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과연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정해진의 죽음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숱한 노동자들의 죽음 소식에 우리 사회가 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닐까?

엊그제 일요일에는 서울시내 한복판에서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렸다. 1988년 11월13일 전태일 열사 정신 계승과 노동법 개정을 목표로 시작된 전국노동자대회는 지난 20년 동안 단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치러진 노동계 최대 행사다. 노태우 정권 시절에는 정부가 원천봉쇄하더라도 경찰과 숨바꼭질하면서 전국노동자대회를 치러냈고, 문민정부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불허된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참여정부는 올해 노동자대회를 원천봉쇄함으로써 20년 전통의 전국노동자대회에 새로운 역사를 보탰다. ‘문민정부 이후 최초의 전국노동자대회 원천봉쇄’. 경찰은 도심의 극심한 교통체증과 시민불편 운운하며 집회금지를 통고했고, 노동부 등 네 부처 장관은 연명으로 담화문을 발표했으며, 지방에서는 대회 참가자 상경을 원천봉쇄했다.

그럼에도 전국노동자대회는 치러졌다. 서울 남대문에서 시청까지 거리에서 전국노동자대회가 열리는 동안,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광화문까지 거리에서는 집회 참가자 수와 맞먹는 2만여 전경이 도심의 교통체증과 시민불편을 야기했다. 1990년에는 노태우 정권이 집회에 최루탄으로 대응했는데, 2007년 참여정부는 물대포와 도심 상공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집회를 방해하는 헬리콥터로 대응 방식을 바꾼 데서 그나마 위안을 찾아야 할까?

과연 우리는 지금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