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정부가 노조 단결권 침해해서야(한겨레신문 시론 2009.9.29)

지난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한국노동연구원 원장은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헌법에서 빼는 것이 소신’이라고 밝혔다. 차마 전경련도 하지 못할 얘기를 국책연구기관의 장이, 그것도 국회 공식 회의 석상에서 하다니? 설마 하는 생각에 국회 영상회의록 시스템에 접속했다. 사실이었다. 여야 의원들의 질의가 몇 차례 이어지자, 소신은 얼마 안 가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서… 죄송합니다’로 바뀌었다. 소신이 아닌 맹신이었다.

아무리 정권이 바뀌었다 해도 이건 정말 너무 심하지 않은가? 노동 기본권조차 부정하는 사람을 국책연구기관의 장으로 앉혀 놓다니. 아무래도 이명박 정부에선 개헌을 논의하면 안 될 것 같다. 노동3권,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마저 헌법에서 빼자고 덤벼들 테니 말이다.

지난 21~22일 전국공무원노조, 민주공무원노조, 법원공무원노조가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했다. 조합원 11만명 가운데 78%가 투표에 참여했고, 88%의 찬성으로 공무원노조 통합을 결의했고, 68%의 찬성으로 민주노총 가입을 결의했다. 당장이라도 민주노총이 무너질 것처럼 한껏 분위기를 연출해 오던 터에, 공무원 11만명이 새로이 민주노총에 가입한다니?

정부 쪽에선 예상보다 높은 투표율과 찬성률에 무척 당황한 모양이다. 바로 다음날 법무부 장관, 행정안전부 장관, 노동부 장관이 함께 발표한 담화문이, 부당노동행위를 입증하는 글귀들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다. 제목부터 ‘정부, 공무원노조 민노총 가입 관련 “강력하고 실효적인 대책 추진” 표명’이다. 내용인즉 ‘정부는 공무원노조가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가입하기로 결정한 것에 대해 국민과 함께 심각하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으며, 엄중대처하기로 하였다.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이건 헌법이 보장하는 자주적 단결권에 대한 침해이자, 노동조합법이 금지하는 부당노동행위임이 틀림없다. 노동조합 상급단체는 조합원들 스스로 결정할 문제이지, 사용자인 정부가 ‘감 놔라 배 놔라’ 할 일이 아니다. 정부는 선량한 사용자로서 민간부문에 모범을 보이지는 못할망정, 헌법과 노동조합법조차 부정하는 치졸한 모습을 보여서는 아니된다.

요즘 흘러가는 걸 보면 고위 공직자들 가운데 노동3권을 거추장스러워하는 사람들이 제법 있는 것 같다. 만에 하나라도 헌법에서 노동3권이 빠진다면, 사용자의 자주적 단결권 침해와 조합 활동 개입이 정당화되기라도 하는 걸까?

물론 아니다. 우리는 국제연합과 국제노동기구 회원국으로서 이들 기구의 헌장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국제연합에 가입할 때 비준한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제8조는 ‘노동조합의 결성·가입 및 파업권’을 보장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 조약 87호(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조약)는 설령 회원국이 비준하지 않더라도, 회원국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의무가 따르는 기본 협약이다.

아직 이명박 정부가 생각하는 ‘노사관계 선진화’의 실체가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다. 그렇지만 노사관계 선진화는 국제규범인 ‘자주적 단결권 보장’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을까? 요즈음 고위 공직자들의 노동인권 감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정부 쪽의 자주적 단결권 침해 행위부터 국제연합과 국제노동기구 결사의 자유 위원회에 제소해야 할 것 같다. 가입한 지 20년이 가까워 옴에도 뚜렷한 이유 없이 미루어지고 있는 국제노동기구 조약 87호 비준 운동도 국민기본권 확보 차원에서 벌여야 할 것 같다. 아무쪼록 통합공무원노조가 ‘국민과 함께하는 공무원노조’로 발돋움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