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절차도 균형도 잃은 타임오프제 (경향신문, 2010.05.07)

[시론] 절차도 균형도 잃은 타임오프제 (경향신문, 2010.05.07)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올 한 해 노사관계 향방의 가늠자로 이야기되던 노조 전임자의 타임오프(유급 인정 노조활동) 한도가 전격 결정됐다. “노동절 새벽의 폭거”라는 평가처럼 이번 결정에 대한 노동현장의 반응은 사뭇 비장하다. 타임오프제도로의 변화 자체는 수용했던 한국노총도 이번 결정에 대한 불만으로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파기, 지방선거에서의 낙선운동을 공표하고 있다. 더구나 노동계의 반발은 더욱 커질 기세다. 이렇듯 노동계가 근로시간면제심의위원회(근면위)의 결정을 ‘노동조합 죽이기’로 규정하고 전면 반대투쟁에 나선 이유는 무엇인가?

시한 어기며 일방적 처리

먼저, 민주적 절차 위반이다. 올해 초 타임오프제도를 만들어낸 노동관계법 개정 과정에서 ‘날치기’ 논란이 있었는데, 이번 유급 인정 노조활동 결정 과정에서도 비슷한 일이 되풀이됐다. 근면위 위원 15명 중 노동계 위원 5명을 따돌린 채 공익위원과 재계 위원만의 투표로 결정된 것이다. 노동계 위원들의 회의장 출입을 막은 것이 노동부 근로감독관들이었다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50여명의 근로감독관이 본업을 내팽개친 채 누구의 지시로 회의 장소에 미리 대기하고 그와 같은 행동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번 결정의 총감독은 노동부이고 근면위 위원들은 들러리에 불과했다는 의혹을 벗기 힘들다. 이번 결정이 근면위의 법적 의결시한인 4월30일을 넘긴 5월1일 새벽 2시40분 이루어졌다는 점도 논란거리다. 국회에서 처리하는 방안이 남아 있었음에도 위법성 문제까지 불러일으키며 공익위원들이 강행 처리해야 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음으로, 이번 결정이 과도하게 전임자를 규제함으로써 노사관계의 힘의 균형을 파괴한 점을 들 수 있다. 근면위는 전임자 1명당 연간 유급활동 시간을 2000시간으로 정하고, 조합원 수에 따라 최소 0.5명(1000시간)에서 최대 24명(3만6000시간)까지 11단계로 세분화해 전임자를 둘 수 있도록 했다. 근면위 안에 따르면 노조원 4만5000명, 전임자 220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현대차 노조는 전임자 수를 곧 24명으로 줄이고, 2012년 7월부터는 18명으로 줄여야 한다. 34개 지부에 조합원 9만6536명을 둔 금융노조는 전임자를 현재 295명에서 162명으로 축소해야 한다. 이런 한도 설정은 지나치게 과도한 것이란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타임오프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유럽 국가들의 경우 법적 기준을 최소한의 보장 장치로 삼고 있는 데 반해, 개정 노조법은 거꾸로 이를 최대한도로 설정함으로써 노조활동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임태희 노동부 장관의 최근 발언은 노동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복수노조가 시행되더라도 (기존의) 타임오프 총량 한도 안에서 나눠야” 하고 “상급단체 파견자는 타임오프 적용대상이 아니다”라는 자의적 법 해석으로 노동계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다.

과도한 전임자 규제 불합리

노조 전임자는 단체교섭, 노사협의회, 고충처리 등을 통해 노조의 영향력, 사업장 통제력을 발휘하는 노동조합운동의 핵심 근거지이다. 전임자의 축소 및 파괴는 노조 조직역량의 약화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노사관계 현실과 동떨어진 정부 규제는 산업현장의 갈등을 부추기거나 담합을 조장할 뿐이다. 법적 논란이 있는 이번 근면위 결정을 철회하고 합리적 대안 마련을 위한 재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노조법 부칙이 정하고 있듯 4월30일이 지나 의결된 근면위의 결정은 법 위반이며 국회의 권한 침해다.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은 “부칙의 시한을 어기면 위법”이라고 지적하며, 타임오프 한도의 현실적 보완을 촉구했다. 하지만 노동부 장관은 ‘시행 후 보완’이라는 기존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노사관계의 파국을 막기 위한 환노위의 적극적인 역할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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