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유성기업 파업이 던진 교훈 (경향신문, 2011.06.04)

[시론] 유성기업 파업이 던진 교훈

노광표(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하루하루 신문이 쏟아내는 새로운 소식을 따라잡기 벅찬 세월이다. 세상사 모진 풍파를 몸으로 견뎌야 하는 보통사람의 처지에서야 대책 없는 세상 걱정보다는 망각도 삶의 지혜이다. 하지만 쉽게 잊은 과거는 거꾸로 우리 삶을 옥죄어 온다. 우리가 외면했던 이웃의 노동권 파괴는 다시 부메랑이 되어 우리 직장, 나의 일자리 파괴로 되돌아온다. 유성기업 파업 사태가 그것이다.
한국은 노동3권이 있는 나라인가? 노동자의 마지막 저항권인 파업이 공격적인 직장폐쇄와 공권력에 의해 ‘합법’적으로 진압되는 이 땅에서 노동자들이 기댈 곳은 어디인가? 진정 우리 사회는 노동자들을 한진중공업의 85호 크레인으로, 대우조선의 20m 송전소 철탑으로 몰아넣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공권력 투입으로 일단락된 것처럼 보였던 유성기업의 노동쟁의는 제2라운드로 접어든 양상이다. 파업이 마무리되었지만 노동자들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회사는 무슨 이유인지 공장으로 돌아가 ‘일하고 싶다’는 파업참가 노동자의 출입을 가로막고 있다. 경찰투입 9일 만인 6월2일 노사는 대화를 재개했다.
하지만 노사의 입장은 여전히 평행선이다. 회사는 조합원 전원이 현장에 복귀해 일하겠다는 노동조합의 요구를 거부하고 ‘선별 복귀’ 방침을 고수했다. 똥 눈 놈이 방귀 뀐 놈 보고 성낸다고, 회사의 대응이 꼭 그 꼴이다. 엎지른 물을 주어 담을 수는 없지만, 소 잃으면 마음이 무너져도 외양간을 고쳐야 한다. 그 심정으로 유성기업 노동쟁의를 되돌아보자.

유성기업 노동자들은 왜 파업을 했나? 그들의 요구는 단순했다. ‘밤에는 일하지 않고 잠자고 싶다’였다. 이는 노동자들만의 요구가 아니라 노사 간의 약속이었다. 유성기업 노사는 2009년 단체협상에서 ‘2011년 1월부터 주간연속 2교대제 및 월급제로 전환한다’고 합의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잠을 잘 수 있는 근무제도를 짜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2010년 연말이 다되도록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수립하지 않은 채 약속을 일방적으로 뭉개버렸다. 결국 합의서를 둘러싼 11차례의 노사교섭은 무위로 돌아갔고, 노동조합은 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과 조합원 찬반투표(78.2% 찬성)를 거쳐 합법적인 파업권을 확보했다. 법을 위반한 사람은 노조와 파업참가자들이 아니라 노사 간의 약속을 헌신짝처럼 저버리고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한 경영진이다.
노동시간 단축과 심야근무 철폐를 요구하는 노동자들에게 정부와 보수언론들은 ‘연봉 7000만원 받는 배부른 노동자’들의 투쟁이라고 비난했다. 생산직 노동자가 7000만원의 연봉을 받는 것이 비난받아야 할 일인지도 의문이지만, 정부는 없는 사실도 제멋대로 짜 맞추었다. 노동자의 파업을 봉쇄하고, 완성차의 조업 중단 사태를 막기 위해 장관부터 대통령까지 한통속으로 움직였다. 유성기업 노동자의 실제 평균연봉은 5710만원이다. 그 중 21%는 잔업과 특근, 심야노동 등 초과노동을 통해 받는 돈이다. 낮밤 바꾸고 휴일에도 일해 6000만원 받는 노동자가 비난받고, 9살짜리 재벌가 자제가 1년 주식배당금으로 9억5000만원을 챙기는 대한민국이 진짜 공정사회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유성기업 노동쟁의에서 기억할 것은 산업 현장에 만연한 장시간 노동체제이다. 고용노동부도 OECD국가 중 최장시간을 기록하고 있는 한국의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잔업과 휴일 특근을 몸에 달고 살아가는 노동자들은 턱없이 낮은 기본급 비중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다.
장시간 노동과 심야근무는 노동자의 건강을 파괴하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가로 막는다. 주야 맞교대 근무자가 주간 근무만 하는 노동자보다 평균 수명이 훨씬 짧다는 독일수면학회 보고를 떠올리지 않더라도, 밤에 잠자고 낮에 일하는 것은 하늘의 섭리이다.
유성기업 노동쟁의에서 우리가 얻어야 할 교훈은 장시간노동과 심야 근무체제를 벗어나기 위한 사회적 논의가 시급히 그것도 지금 당장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카테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