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노동세력화가 답이다 (경향신문, 2012.05.12)

[시론] 노동세력화가 답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부소장)

4·11 총선이 끝난 지 한 달이 지났다. 예전 같으면 총선에서 드러난 민심을 읽기 위한 치열한 논의와 공방이 전개될 시점이지만, 요즘 정치 기상도를 보면 상황이 생뚱맞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은 총선 공약은 내팽개친 채 대통령 선거와 관련한 내부 권력구도와 지도체제 개편 논의에만 매몰돼 있고, 통합진보당은 비례대표 부정선거 논란으로 한 치 앞을 알 수 없는 진흙탕 싸움에서 허우적대는 중이다. 총선 결과를 복기하면 단순하다. 이명박 정부의 부패와 실정에도 새누리당 우위의 여대야소가 유지됐고, 진보정당의 성장은 지체되었으며, 노동자 정치세력화 운동은 실패했다.

통합진보당은 진보정당 역사상 가장 많은 13석의 의석을 얻었다. 그러나 의석수가 증가했음에도 득표율은 2004년 총선 결과에 못 미쳤고, 노동자 밀집지역인 울산과 창원, 거제 등 전략지역에서 모두 낙선했다. 매우 유리했던 상황 조건을 고려하면 이러한 결과는 실질적 패배로 규정하는 게 옳다. 왜 이렇게 됐을까? 진보정당에 걸맞은 정책의제와 실천의지를 서민대중에게 제시하지 못한 채 야권단일화에 매몰된 것이 주원인으로 보인다. 근본적으로 진보정당이 ‘앙꼬 없는 찐빵’이 되었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의 평가 지점과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계기는 결국 노동 없는 진보정치, 세력화하지 못한 노조운동에서 찾아야 한다.

올해는 한국의 노동자들이 ‘공돌이’ ‘공순이’가 아닌 노동자로서 시민권을 회복하게 된 계기인 87년 노동자 대투쟁이 발생한 지 25주년이 되는 해이다.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노동자도 인간이다”라는 절박한 노동자 인권 선언의 불기둥이 터져 나온 지 벌써 사반세기가 지났다. 하지만 노조 역량의 바로미터인 노조조직률은 곤두박질치고 있다. 1989년 19.8%를 기록한 이후 매년 평균 1%가량 떨어져 2010년 현재 9.8%이다. 전체 노동자 10명 가운데 노조 가입자는 1명도 안된다. OECD 국가 중 가장 낮은 수치다.

기업별노조의 폐쇄적 울타리가 ‘계급’으로서 노동의 연대와 결집을 가로막고 있다. 또한 조합원 500인 이상의 대기업노조 조합원 수가 130만5000여명으로 전체 조합원 수의 78.3%를 차지한다. 노조에 속한 노동자 수도 적지만 노조의 주된 기반은 그나마 근무 조건이 좋은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정규직 노동자들인 것이다. 다수의 중소기업 노동자와 비정규직 노동자를 포괄하지 못하는 노동조합운동은 계급 연대성 약화와 사회적 고립에 직면해 있다.

한 자릿수도 되지 않는 낮은 노조조직률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노동조합을 아직도 ‘뿔난 도깨비’로 보는 전근대적인 사용자의 태도와 인식, 글로벌기업 삼성 등의 시대착오적인 무노조전략, 노조가입권이 박탈되어 있는 200만명의 특수고용직 노동자들, 중립적 위치를 망각한 정부의 사용자 편향 정책, 산업구조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제조업 중심의 노조운동 관행, 전체 노동자 수의 반을 훌쩍 넘어버린 비정규 노동자들의 급증, 대기업노조의 폐쇄성 등이 주된 요인으로 지적된다.

노조조직률 하락은 보통사람들에게 부과되는 사회적인 리스크가 한계치에 왔거나 이미 넘어섰음을 가리키는 ‘빨간 신호’다. 노조조직률 하락은 노동조합의 교섭력 약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그 피해는 노조원뿐만 아니라 전체 국민들에게 미치게 된다. 이명박 정부 4년, 서민 대다수의 삶에 드리운 사회 불평등 악화와 고용 불안정 심화는 결국 노조의 약화와도 연동돼 있다. 노동조합은 기업경영과 국가정책의 잘못을 지적하고 올바른 방향으로 가도록 요구하는 사회적 제어장치로서 기능한다. 노동조합이야말로 일터의 민주화와 권리 회복을 위한 버팀목이다.

한국 사회 진보와 개혁의 출발점 역시 노동의 집합적 목소리 회복에 있다. 노동 현장에 기반을 두지 않는 진보정당은 바람 앞의 촛불과 같다. 노동의 세력화야말로 오른쪽으로 쏠린 한국 사회의 무게중심을 바로잡는 저울추가 될 것이다. 진보정치 복원과 정상화의 해법도 노동 현장에 있다. 바로 그곳으로 뛰어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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