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스무살, 무엇이 잘못된 걸까(한겨레신문 2007.9.19)

1987년 6월 항쟁과 7∼9월 노동자 대투쟁으로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민주주의가 진전되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된 지 벌써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97년 11월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물결이 한국 사회를 뒤덮은 지도 벌써 10년의 세월이 흘렀다. 87년 당시 서른을 갓 넘겼던 젊은이가 이제는 지천명의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섰다.

87년 당시는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고 노동운동이 활성화되면 노동자 대중의 삶의 질이 개선되고 노동현장에 민주주의가 살아 숨쉴 것이다’는 명제를 의심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실제로 지난 20년 동안 노동자들의 실질임금은 인상되고 노동시간은 단축되었으며 노동기본권을 침해하던 노동법의 독소조항은 개선되고 민주노총과 산별노조가 건설되는 등 많은 성과가 있었다. 87년 이전에는 먼나라 얘기로만 들리던 ‘마이카’ 시대가 찾아왔고 닭장 집으로 상징되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환경은 아파트 단지로 개선되었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노동시장 유연화와 구조조정의 물결이 밀어닥치면서, 87년 이후 노동운동의 성과는 하나하나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비정규직이 급증하면서 고용의 질과 분배구조가 악화되고, 차별이 심화되면서 노동자 대중의 삶은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노조 조직률은 70년대 이래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고, 많은 사람이 ‘노동 없는 민주주의’와 ‘노동의 위기’를 경고하고 있다. 역사 발전의 주역임을 자부해 온 노동운동의 사회적 고립이 심화되면서, ‘노동운동이 무슨 동네북이냐?’는 자조 섞인 한탄마저 나오고 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지난 20년 동안 구속, 수배, 해고를 두려워하지 않으면서, 전 세계 노동운동이 부러워하는 전투성과 헌신성을 갖고 열심히 싸워 왔는데, 왜 오늘날 한국의 노동운동은 ‘노동의 위기’가 경고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었는가?

그것은, 국가는 간접사용자로서 노동인권을 신장할 책무가 있다는 사실조차 자각하지 못한 채, 노동시장 유연화를 신주 단지처럼 모셔 온 정부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 사람을 기업의 가장 소중한 자산으로 보기는커녕, 한 푼이라도 줄여야 할 비용이나 한번 쓰고 버릴 소모품으로 취급하면서,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으로 치달려온 기업의 사회적 책무 망각에서 비롯되었다. 또한 기존의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전환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과 이를 실현할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에서, 변화하는 상황에 수세적 대응으로 일관해온 노동운동의 무능에서 비롯되었다.

비정규직이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서고, 노동현장에서 각종 차별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전체 노동자의 90%가 미조직 상태로 헌법에서 보장된 단결권조차 누리고 있지 못하는 몇 가지 사실만 놓고 보더라도, 정부는 노동인권을 신장해야 할 책무를 다 하지 않았고 노동운동은 연대의 정신에 충실하지 못했으며 기업은 사회적 책무를 다 하지 않았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앞으로 한국의 노동운동은 계급적 단결과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고 노동시장 불평등을 해소하고 산업별 노사관계를 진전시키는 데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부는 ‘노동인권을 신장할 책무가 있다’는 사실부터 인식하고, 기존의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과 기업별 노사관계 정책을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기업은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으로는 결코 사회적 책무를 다할 수 없다는 사실부터 자각하고, 기존의 경영 방침을 전면 재검토해야 할 것이다. 앞으로 10년 뒤 87년 노동자 대투쟁 30돌에는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마주볼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