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정규직의 사회경제적 폐해(한겨레신문 2008.9.30)

외환위기 직후 구조조정과 대량 해고의 칼바람이 휩쓸고 간 뒤, 빈자리는 하나둘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얼마 안 가 비정규직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을 넘어섰고,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860만 비정규직 가운데 한 달 월급이 100만원 이하인 사람이 440만명이다. 이 가운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구주는 190만명이다. 통계청 통계로 도시근로자 가구 중 하위 20%가 가계수지 적자다. 그러나 이것은 주거비에 월세만 포함했을 때 얘기다. 자가와 전세평가액을 포함하면 적자가구는 50%로 늘어난다.

지난 몇 해 동안 수출이 사상 최대의 호황을 누렸음에도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내수기반이 약화된 것은, 가계수지 적자에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민간소비가 위축되고 내수기반이 약화되면 성장 잠재력이 잠식되고 지속적인 경제성장은 불가능해진다.

교육 불평등이 심화되고 저소득층 인적자본 축적이 저해되면 성장 잠재력이 잠식된다. 가구당 월평균 교육비가 하위 10% 계층은 1997년 6만3천원에서 2007년 8만6천원으로 2만3천원 증가한 데 비해, 상위 10% 계층은 27만3천원에서 53만9천원으로 26만6천원 증가했다. 하위 10%와 상위 10% 계층의 교육비 격차는 4.3배에서 6.2배로 확대되었다.

노동자들의 고용불안과 생활불안이 가중되고 계층간 위화감이 조성되면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생활범죄가 증가한다. 사회정치적으로 불안이 고조되고 정치경제 환경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 기업의 설비투자 의욕이 저하되고 성장 잠재력이 훼손된다.

90년대 중반 김영삼 정부가 노동시장 유연화를 추진하면서 비정규직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관행으로 굳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는 정치적으로 민주주의가 진전된 시기다. 민주주의가 나의 삶을 개선해 주지 않더라는 경험은, 그만큼 민주주의 지지기반을 잠식한다.

저출산 문제는 청년층 일자리가 대부분 미래를 예측하기 힘든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인데서 비롯된 측면이 크다. 당장 제 앞가림도 하기 힘든 터에 결혼이나 자녀 출산은 생각하기 어렵다.

청년 실업자가 31만명이고, 그냥 쉬었다는 청년이 27만명이다. 취업 준비생까지 합치면 청년 ‘백수’가 100만명을 넘는다. 이들이 청년 백수가 된 것은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다. 평생을 걸고 일할 만한 안정된 일자리가 없어서다.

이 밖에도 비정규직 남용에 따른 사회경제적 폐해는 셀 수 없이 많다. 그럼에도 비정규직 고용이 증가하고 차별이 심화된 것은 기업의 ‘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단기수익 극대화 전략’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전략은 이미 한계상황에 봉착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시장의 수량적 유연성이 극단으로 치닫고, 제조업의 인건비 비중이 1977년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인 9.8%임에도 기업의 경쟁력은 개선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이 ‘인건비 절감을 통한 단기수익 극대화’라는 일종의 ‘죄수의 딜레마’ 상태에서 벗어나 ‘인적자원 개발에 기초한 장기수익 극대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비정규직 남용과 차별 해소, 법정 최저임금 현실화’ 등 사회적 규제를 강화하고, 기업 지배구조를 이해관계자 모델로 전환해야 한다.

그렇지만 이명박 정부는 청년실업을 반으로 줄이고 비정규직 차별을 해소하겠다던 공약은 인수위 시절에 이미 내팽개쳤다. 안팎의 경제가 극도로 불안정해도 오로지 자기들의 민원인, 1% 집부자 세금 깎기에 여념이 없다. 지난 23일치 아침 신문에는 ‘비정규직 없는 세상 만들기 만인선언, 만인행동’ 광고가 실렸다. 이제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과 시민사회의 힘으로 해결해 나갈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