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백성들만 불쌍하다(한겨레신문 2008.4.15)

오후 네 시, 그때까지 집에서 조용히 죽치면서 선거를 무시해 버릴 것 같던 선거인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규모의 기권이라는 유령이, 정권만이 아니라 체제 자체의 안정까지 심각하게 위협하는 지경에 이르자 수도의 주민들이 무더기로 투표소에 나타나 전국민을 위한 모범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유효표 숫자는 25%에도 미치지 못했다. 나머지 표, 그러니까 전체 표의 70% 이상이 모두 백지였다.

위 구절은 포르투갈의 노벨상 수상작가인 주제 사마라구가 쓴 소설 <눈뜬 자들의 도시>에서 인용한 것이다. 이 소설에서 정치권은 무더기 백지투표를 심각한 문제제기로 받아들여 일주일 뒤 다시 선거를 치른다.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투표율이나 득표율이 낮다고 해서 선거를 다시 치르는 일은 없다.

지난 9일 치러진 제18대 총선에서는 서울지역만 보더라도 유권자 810만명 가운데 46%인 370만명이 투표에 참가하고, 54%인 440만명이 기권했다. 선거구 48곳에서 유권자가 과반수 투표한 곳은 5곳, 한 후보가 투표자의 과반수를 득표한 곳은 24곳이다. 그렇지만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득표 두 요건을 충족한 곳은 문국현과 정몽준 두 후보밖에 없다. 유권자 대비 득표율이 25%에 못미치는 당선자도 13명이나 된다. 만약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이 제도화되어 있다면 서울에서만도 46곳에서 다시 선거를 치러야 할 판이다.

노동조합 임원이나 초중등학교 반장 선거에서 과반수 투표에 과반수 찬성은 상식이다. 그럼에도 유독 정치권만 ‘한 표라도 많으면 묻지마 당선’을 제도화하고 있는 이유를 모르겠다. 한 나라의 국회의원이 노동조합 임원이나 초중등학교 반장만도 못한 대표성을 가지고 의정활동을 하는 것은 두루 불행한 일이다. 의회정치의 대표성을 높이는 방향에서 선거제도를 정비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선거제도만 정비하면 국민들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나 실망이 사라지고 투표율이 오른다는 얘기는 아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투표에 참여하면 우리들의 삶이 달라질 수 있다는 꿈과 희망을 주지 못한 정당과 후보들에서 찾아야 한다. 혹자는 투표율이 20%에도 못미친다며 20대를 나무란다. 그렇지만 이들을 나무라기에 앞서 과연 투표에 참여할 만한 유인이나 가치를 부여하였는지 스스로 되물어야 할 것이다.

얼마 전까지 한국 사회 최대 이슈는 양극화와 비정규직 문제였다. 그렇지만 이번 총선에서 이들 쟁점은 모두 사라졌다. 제1야당인 민주당은 서민들의 삶에 가장 중요한 이들 사회경제적 이슈는 젖혀둔 채, ‘이명박 정부 견제론’에 기댔다. 그렇지만 자신이 할 바는 다 하지 않고, 손님 실수에 기대는 정당에 미래는 없다. 총선 결과는 민주당의 참패였고, 이명박 정부 견제는 민주당이 아닌 한나라당 내 박근혜계 몫으로 맡겨졌다.

진보정당도 이번 총선에서 참패하기는 마찬가지다. 민주노동당은 의석이 10석에서 5석으로 두 동강 났고, 진보신당은 한 석도 확보하지 못했다. 이름깨나 알려진 스타급 엘리트들이 모두 떠난 상태에서 선거를 치른 민주노동당에 5석은 그나마 선방이라고 할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5석은 진보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마지막 경고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역사에 가정은 없다고들 한다. 그렇지만 만약 지난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이 둘로 갈라지지 않고 선거를 치렀다면 어떠했을까? 지금보다는 나은 성적표를 받지 않았을까? 이명박과 박근혜도 한나라당 한지붕 밑에서 같이하는데, 권영길·강기갑과 심상정·노회찬은 민주노동당 한지붕 밑에서 같이하지 못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래저래 백성들만 불쌍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