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의제를 사회화하자

* 이 글은 지난 3월 24일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3월은 사자처럼 왔다가 양처럼 지나간다.’는 미국 속담이 있다. 절기상 봄은 왔지만, 겨울 위세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의미한다. 지방선거를 앞둔 정국도, 임·단투를 준비하는 노동조합의 상황도 녹녹치 않다. 희망보다는 절망, 낙관보다는 비관이 현실을 지배한다. 보편 복지와 국민행복시대라는 말의 성찬(盛饌) 뒤에는 세 모녀 자살 사건 등 비극적 사건이 연속되고 있다. 
 
노동운동은 예정된 박근혜정부의 퇴행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는 경제활성화로 대체되었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공공성을 담보해야 할 정부는 ‘규제 완화’라는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암 덩어리’로 전락하였다. 박근혜정부 취임 6개월을 기점으로 모든 정책은 MB정부로 회귀하였다. 바뀌었다면 ‘747공약(성장률 7%, 4만불 시대, 7대 강국)’이 ‘474공약(성장률 4%, 고용율 70%, 4만불 시대)’으로 변화했을 뿐이다. 고용노동부가 경제부처의 뒤꽁무니를 쫒는 한, 노동정책의 뒷걸음은 예상된 결과였다. 정년연장, 노동시간 단축, 최저임금 인상 그리고 비정규직의 차별해소에 맞추어져 있던 초기 노동정책은 시간제일자리 확충, 통상임금 개악, 임금체계 변화, 노동 규제 완화 쪽으로 그 방향을 틀었다. 
 
박근혜정부의 노동정책을 비판만 해서는 희망을 만들어 낼 수 없다. 현상 유지가 아닌 현상 타파를 위한 계획과 실천을 도모할 시점이다. 이를 위한 작은 출발은 ‘노동의제의 사회화’에 있다. 조직노동의 틀에서 벗어나 미조직노동자의 권익 옹호 등 노동의제를 국민의제로 만들어 나가는 싸움을 조직해야 한다. 그 출발은 최저임금과 장시간노동의 해소에 있다.
 
첫째, 최저임금의 정상화이다. 박대통령의 말처럼 한국사회의 고질병은 ‘비정상성’에 있다. 가장 비정상적인 것의 으뜸은 노동의 저평가에 있다. 현재의 최저임금을 월급으로 계산하면 107만원이다. 혼자 사는 노동자의 한 달 생계비가 163만원으로 조사된 것을 고려하면 최저임금은 한 달 평균 생계비의 66%밖에 안 된다. 낮은 최저임금 수준은 노동 양극화와 사회불평등의 주범이다. 물론 저임금노동은 비단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전 세계는 지금 ‘최저임금 인상’에 나서고 있다. 이를 통해 세계 경제의 가장 큰 우환꺼리인 소득 불평등을 조금이나마 완화하고자 하는 것이다. 미국은 대통령 스스로 최저임금 인상의 전도사로 나섰다. 지난 4년간 미국경제가 성장하고 일자리가 850만개나 늘어났지만 평균임금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최저임금을 현행 7.25달러(약 7,685원)에서 10.10달러(약 1만원)로 인상하는 법률이 계류 중이다. 최저임금제가 없는 독일도 저임금노동의 해소를 위해, 2015년 1월부터 점진적으로 시간당 8.5유로(약 1만2250원)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해 2017년 전국적으로 시행할 예정이다. 이렇듯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노동자의 생존권 확보와 사회불평등을 완화하는 유력한 기제이다. 우리의 최저임금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권고하는 평균임금의 50% 수준보다 훨씬 낮은 37%선이다. 소비자물가 등을 반영한 수치로도 스페인을 제외하고 가장 낮다. 최저임금이 최저임금제법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정상화를 위한 출발점이다. 최저임금법은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이 법은 근로자에 대하여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둘째, 노동시간 단축이다. 장시간노동체제의 폐해는 더 이상 논의할 필요가 없을 정도이다. 장시간노동은 생산체제의 고도화, 노동시간의 효율적 활용, 생애주기와 일·가정 양립이라는 사회적 요구, 노동생활의 질 향상, 일자리 창출의 역행성 때문에 더 이상 지속되어서는 안 되는 구조이다. 하지만 지난 몇 년 동안 금속노조를 중심으로 확대되었던 노동시간 단축 투쟁의 열기가 시나브로 수그러드는 양상이다. 현대·기아차 에 도입된 주간연속2교대제는 일부의 직서열 부품업체를 제외하고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고 있다. 정부 스스로도 휴일근무를 연장근로에 포함하는 입법안에 소극적인데다, 노동시간 위반 사업장 근로감독도 느슨해졌다. 노동시간 단축 목표는 시간제일자리의 양산을 통해 도모되는 형국이다. 2014년 임단협 교섭의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통상임금’ 문제도 그 핵심은 장시간근로의 해소에 두어야 한다. 더 이상 비정상적으로 일하고 그 보상에 목메는 것이 아니라, ‘주5일-하루 8시간 노동’으로 생활임금을 보장받아야 한다. 노동시간 단축은 단지 노동조합만의 과제가 아닌 사회가 풀어가야 할 사회적 요구이다.  
 
노동시장 유연화, 노동배제 정책이 가져 온 노동양극화, 사회불평등 심화는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당면 과제이다. 이는 노동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문제이며 국가적 의제이다. 2014년 노동운동의 활로는 여기서 찾아야 한다. 관성적인 임·단협 교섭과 시기 집중 투쟁을 뛰어 넘을 수 있는 싸움의 지점을 찾고, 동력을 만들어야 한다. 최저임금 정상화와 노동시간 단축은 그 출발점이다. 조직 노동이 비정상성의 정상화를 위한 싸움에 나서지 않으면, 조직 노동은 비정상적 집단이라는 사회적 낙인을 벗어나기 힘들다. 노동 연대는 남을 돕는 시혜가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운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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