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시론]허망하기만 한 ‘노동개혁’의 속살(08.10)

[시론]허망하기만 한 ‘노동개혁’의 속살

아침부터 푹푹 찌던 며칠 전 경기 안산의 중소기업 노동조합 간부에게 전화가 왔다. 전화선을 타고 넘어온 목소리에는 진한 한숨이 묻어났다. 점심시간 TV 뉴스를 통해 대통령 담화를 본 후에 건 전화였다. 차분한 목소리가 가슴을 짓눌렀다. “애들 취직 못하는 것이 노동자들 책임입니까. 나이 먹었다고 혜택도 없는 나라에서 임금을 강제로 깎는 임금피크제를 왜 합니까. 대통령 말씀 들어보면 나라 경제 어려운 이유가 온통 노조 때문이네요. 더운 날씨에 진짜 일할 맛 안 납니다.” 10여분을 넘긴 대화 내내 정부에 대한 원망과 불만이 끊이지 않았다. “뭘 더 양보해야 노동자 탓 안 할까요. 불법파견, 최저임금도 단속 못하는 정부가 노동자에게 할 소리예요?” 내 대답을 듣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정년이 몇 년 남지 않은 늙은 노동자의 하소연은 이내 분노로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6일 ‘경제 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를 통해 노동개혁 추진 의지를 분명히 했다. 성장엔진이 둔화되고 저성장 흐름이 고착되면서 고용창출력이 약화되었다면서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대기업과 노조의 고통분담을 요구했다. 노사의 양보를 요구했지만 그 칼날은 노조를 정조준하고 있었다. 정규직 과보호론을 내세우며 한국 경제의 살길은 노동유연성 확대에 있음을 강조했다. 정부의 해법은 임금피크제 도입 및 저성과자 퇴출제로 귀결된다.

담화문의 절반 이상을 넘긴 노동개혁의 속살은 허망하기 그지없다. 노동개혁은 청년고용 문제로 축소되고 노동자들은 개혁의 주체가 아닌 대상으로 바뀌었다. 청년실업 문제를 세대 간 밥그릇 싸움으로 바꿔 놓고 자녀들을 위해 부모가 양보해야 한다고 윽박지른다. 청년실업 악화의 책임을 ‘베이붐 세대’에게 몽땅 뒤집어씌우고 정부와 대기업들은 무대 바깥으로 사라진다. ‘노동개혁 없이는 경제회생도 없다’, ‘청년실업은 노조 탓이다’라는 억지논리가 의심할 수 없는 진실로 바뀐다.

노동개혁은 성공할 수 있을까.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정책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잘못하면 개악이 된다.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이 직면한 현실에 발 딛고 미래를 지향해야 한다. 왜 노동개혁을 하는가. 더 이상 현재의 노동체제가 유지될 수 없고 지속가능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자살률과 낮은 출산율은 국민들이 국가와 자본에 던지는 마지막 절규이자 저항이다. 6명 중 1명이 구직 단념자인 나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평균 근무기간이 5.6년으로 가장 짧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율이 가장 낮은 나라, 저녁 없는 삶이 지배하는 세계 최장의 노동시간,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는 노동자가 14.7%인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비정상적인 고용관계는 자율적 노사관계의 기반을 침식하며, 월급쟁이들은 노조의 보호 밖에 내팽개쳐져 있다. 10.3%의 낮은 조직률은 처참한 노동인권의 현주소이다. 교원과 공무원의 노동기본권은 보장되었건만 전교조와 전공노는 법외노조 신분으로 국제적인 조롱거리다. 불법파견은 넘쳐나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저항은 철탑 위의 고공농성으로 이어진다.

노동개혁은 노동자, 노조 죽이기가 아니다. 땀 흘려 일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의 청사진이 마련돼야 한다. 그런 이유로 노동개혁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화를 고착시킨 재벌대기업의 탐욕을 규제하는 경제민주화와 병행되어야 한다. 경제 재도약을 언급하면서 재벌대기업의 부의 집중과 불투명한 지배구조에 말도 꺼내지 않는 것은 노동개혁의 진정성을 의심케 한다. 8·15 특별사면 대상에 최태원·김승연 회장의 이름은 거론되지만 구속노동자들은 언급조차 없다. 노동개혁의 파트너인 민주노총 한상균 위원장은 체포영장이 발부돼 수배 상태에 있다. 노동개혁의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 노동자를 만나고, 노조 지도자들과 대화에 나서야 한다. 노동개혁은 정치적 이해타산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살기 위한 새로운 제도 개혁이기 때문이다.

<노광표 |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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