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브리프 제2호_2018-02_국제노동동향] 유럽 노동자 경영참여 특징, 노동조합이 주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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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연브리프 제2호_2018-02_국제노동동향] 유럽 노동자 경영참여 특징, 노동조합이 주도한다

글쓴이: 윤효원(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

 

1. 정보, 협의, 참여

 

유럽에서 노동자 경영참여는 정보, 협의, 참여 세 영역에서 이뤄진다. 여기서 참여는 공동 결의와 공동 결정으로 나눠볼 수 있다.

정보권(the right to information)은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환경에 관련되고, 본인 고용뿐만 아니라 가족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보를 사용자로부터 제공받을 권리를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정보는 기업 지배구조, 재무제표, 임원 보수, 주주 정보, 보건안전, 생산 업무에 사용되는 물질, 기술 개발, 인력정책, 직업훈련, 채용 및 해고, 투자정책, 공급 사슬에 속한 하청업체 등을 아우르는 폭넓은 것이다.

협의권(the right to consultation)은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생활환경 노동자의 고용 및 가정 경제에 영향을 미치는 회사의 정책을 실행하기에 앞서 사용자와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 대표에게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통해 회사 정책을 실행할 때 예상되는 부정적 효과를 사전에 차단하거나 최소화함으로써 노동자들의 고용과 생활을 안정시키고, 노사관계에서 발생하는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예방하며, 기업의 안정성과 지속가능성을 증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공동 결의(codetermination)는 회사 정책을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공동으로 결의하는 것이다. 중요한 정책을 만들고 실행할 때 노사가 함께 의논해 결론을 내리는 것이다. 노사가 회사 정책을 둘러싼 태도와 행동에서 뜻을 같이한다는 의미로 이 말을 이해하는 게 도움이 될 듯하다. 한국에서는 ‘codetermination’을 ‘공동 결정’으로 해석하는데, 실질적인 제도 운용을 보면 공동결정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과도하다. 관련 제도가 가장 잘 발달됐다고 평가되는 스웨덴에서도 사용자가 노동자들에게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올 회사 정책을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면 노동자 대표가 이를 막을 수 있는 경영참여 수단은 궁극적으로 없기 때문이다. 노동자 대표가 끝까지 받아들일 수 없는 문제라면 이는 경영참가 틀을 넘어 단체행동 영역에서 처리된다.

공동 결정(co-decision)은 말 그대로 회사의 중요 정책을 사용자와 노동자 대표가 대등한 위치에서 함께 결정하는 수준의 권리를 말한다. 독일 종업원평의회와 스웨덴 보건안전위원회 사례에서 보듯이 채용과 해고, 보건안전에서 공동 결정 수준의 권리가 보장된 사례가 있다.

 

2. 사업장 종업원 대변, 노조냐 평의회냐

 

유럽의 노동 상황은 나라마다 다르다. 스웨덴처럼 노동조합 조직률이 70% 안팎인 나라도 있고, 프랑스처럼 10%도 안 되는 나라도 있다. 전통적인 노동조합 강국으로 여겨지던 독일도 18%로 떨어졌다. 이탈리아 빼고는 대부분 노조 조직률이 떨어졌으나,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에 두드려졌던 하락세는 2010년대 들어와 일단 멈춘 것으로 보인다.

노동 전선의 통일, 즉 노동조합운동의 단결 정도를 보면, 단일 노총을 유지하는 나라는 영국,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등 5개국에 불과하다. 북유럽 국가들은 생산직 노총, 사무직 노총, 전문직 노총 등 직종이나 학력 차이로 노총이 여러 개로 나뉘어 있다. 프랑스, 이탈리아, 벨기에, 네덜란드, 스페인에서는 이념이나 종교 차이로 노동 전선이 분열되어 있다.

2000년대 들어 산업별 노조 수준에서는 조직 통일이 이뤄져 거대 노조로 통합되기도 했다. 2001년 독일 Ver.di, 2003년 노르웨이 Fagforbundet, 2007년 영국 Unite, 2008년 스웨덴 Unionen, 2009년 오스트리아 PRO-GE 등이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에서는 5개 산업별노조가 노총(FNV) 조직과 바로 통합하는 새로운 사례를 만들기도 했다.

유럽 전역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60% 안팎으로 높다. 높은 노조 조직률 덕분인 나라도 있고(스웨덴, 덴마크), 산업이나 지역으로 단체협약 구속력을 확대하는 법률이나 정책 덕분인 경우도 있다(오스트리아, 벨기에, 프랑스, 이탈리아, 네덜란드). 약화되었다는 평가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노총 차원의 중앙 교섭은 벨기에, 스페인, 노르웨이, 핀란드에서 이어져 왔다. 유럽 전반적으로 산업별 단체교섭은 여전히 잘 작동하고 있다. 물론 산업별 협약은 최저 기준으로 기능하고, 이에 더해 기업별 교섭이 추가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프랑스, 스웨덴, 덴마크가 대표적이다. 네덜란드와 룩셈부르크는 산업별교섭과 기업별교섭이 공존하지만, 두 교섭의 연관성은 거의 없는 나라들이다. 영국과 그리스처럼 민간부문에서는 기업별교섭이 지배적인 나라도 있다. 중동부 유럽 국가들에서 산업별교섭은 약화되고 기업별 교섭이 횡행하고 있다.

네덜란드, 독일, 룩셈부르크, 오스트리아에서는 법으로 사업장 안에서 기능하는 노동조합 조직을 따로 규정하고 있지 않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조합은 당연히 초기업 노조, 즉 산업별노조를 말한다. 종업원평의회만 사업장 종업원을 대표하는 조직으로 인정된다. 하지만, 종업원평의회 대표 선거 과정에 노동조합이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어, 독일의 경우 종업원평의회 대표자의 70%를 산업별 노조원이 차지하고 있다. 이런 사정은 네덜란드와 오스트리아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리스, 노르웨이, 벨기에, 스페인, 체코, 프랑스, 헝가리는 사업장의 종업원 대변조직으로 노동조합과 종업원평의회를 동시에 인정하는 나라다. 하지만 많은 경우 사업장 안에서 두 조직이 경쟁하기보다는 노조가 종업원평의회를 지원하거나, 노조 대표가 평의회 대표를 겸임한다.

스웨덴, 덴마크, 핀란드, 이탈리아에서는 경영참가를 위한 사업장 종업원 대변이 오로지 노조를 통해 이뤄진다. 종업원평의회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산업별 노동조합의 현장 조직, 즉 단위노조가 사업장 종업원 대변자 역할을 동시에 맡는다. 

 

 

3. 노동자 이사 제도

 

유럽연합 28개 회원국과 노르웨이에서 노동자 이사에 관한 법률이나 제도가 없는 나라는 10개국에 불과하다(영국, 이탈리아,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루마니아 등).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독일, 룩셈부르크, 스웨덴, 오스트리아, 프랑스, 핀란드 등 13개국은 공기업은 물론 민간기업에서도 노동자 이사가 법률로 보장된다. 스페인, 포르투갈, 그리스, 체코, 아일랜드, 폴란드 등 6개국에서는 공기업에서만 노동자 이사가 보장된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처럼 기업지배 구조가 이사회와 감사회로 이원화된 나라에서는 노동자 대표는 감사회에 참여한다. 스웨덴과 노르웨이처럼 이사회로 일원화된 나라에서는 이사회에 노동자 이사가 참여한다. 프랑스처럼 지배구조를 선택할 수 있는 나라에서는 감사회가 존재하면 노동자 대표는 감사회에 참여한다. 감사회가 이사회 성원을 임명 해임하고 이사회 활동을 통제하는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 사례에서 공통적으로 확인되는 사실은 사업장 종업원 대변과 노동자 경영참여 기능에서 노동조합과 종업원평의회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노동조합이 보다 중추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과 핀란드처럼 사업장에 속한 종업원 대표 단체로 노동조합만을 인정하는 나라는 물론이고, 독일과 네덜란드처럼 사업장 내부 종업원 대표 단체로 종업원평의회만을 인정하고 있는 나라에서도 산업별 노동조합이 종업원평의회를 사실상 좌우하고 있다. 노조 유무가 노동자 경영참여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결정 요소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서울시에서 ‘근로자이사’를 도입하면서 노동조합 탈퇴를 의무화했다. “사업의 경영담당자”는 사용자에 해당한다고 규정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제2조 때문이다. 노동자 경영참여를 촉진한다면서 노동자 대표를 노동조합에서 탈퇴시키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유럽에서 기업 이사회나 감사회에 참여하는 노동자 이사가 노조원 신분을 포기해야 하는 나라는 없다. 독일의 경우 노동자 이사에 노조원인 해당 기업의 종업원은 물론 산업별 노조 간부, 즉 노동운동가가 선출되는 사례도 발견된다.

노동자 대표가 기업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노동자의 지위가 경영의 영역 밖에 대립하여 존재하는 게 아니라, 경영 안에 들어와 공존하는 것이며, 노동자와 사용자가 대등한 주체로 활동하는 것이다. 유럽 사례는 노동조합이 제대로 역할을 해야 노동자 경영참여가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노동자 이사가 되려면 노동조합을 탈퇴해야 하는 현실을 허용하면서 노동과 경영을 대립시키고 둘 사이의 분리를 조장하는 제도적 장애물을 그대로 둘 경우, 제대로 된 노동자 경영참여는 실현하기 어렵다.

 

 

4. 노동조합이 경영참여의 엔진

 

로저스와 슈트렉은 종업원평의회의 역할과 관련해 세 가지 형태를 제시했다. (1) 사용자와 정부가 노동조합을 무력화하거나 노동조합을 대체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부장적 평의회, (2) 노사 상호 간 정보 교환과 의사소통을 촉진하기 위해 만들어진 협의적 평의회, (3) 기업의 경영정책과 행위에 대해 노동자들의 제도화된 목소리를 내도록 보장하는 대변적 평의회.

이에 따르면, 한국은 아직 가부장적 모델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 우리나라에서 노동자 경영참여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는 노사협의제도는 1963년 노동조합법에서 처음 도입됐다. 1973년에는 노사협의제도 설치가 의무화됐다. 1980년에는 따로 노사협의회법을 제정해 노조법에서 분리했고, 1997년 법의 명칭을 근로자참여 및 협력증진에 관한 법률(근로자참여법)로 변경했다.

산업별노조를 약화시키려는 군사독재의 의도 속에 자리 잡은 제도의 역사적 한계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유노조 사업장에서는 노동조합이 노사협의회 기능을 대체하고, 자본가의 ‘독재’가 횡행하는 무노조 사업장에서는 노사협의회가 껍데기만 남은 현실을 만들어 냈다. 주 40시간 노동시간을 규정한 근로기준법처럼 근로자참여법도 정보공유와 정책협의를 기업 수준에서 제대로 실현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무력화된 것이다.

그 결과, 노사협의회가 해당 기업 노동자들의 집단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제도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다. 정보교환과 의사소통이라는 협의기구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노동조합 활동을 약화시키거나 대체해 노동자들의 집단적 행동을 억제하려는 사용자의 의지가 관철되는 ‘가부장적’ 회의체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바로 잡으려 최근 들어 ‘근로자 이사제’를 도입했으나 이마저도 노동조합과의 연계성을 보장하지 못하면서 변칙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노동자 경영참여를 향한 도정에서 협의와 대변 기능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단계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정보, 더 깊은 협의, 더 넓은 참여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노동자대표에게 부여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조합과 노동자 경영참여의 연계를 강화할 수 있는 제도적 틀을 만들어야 한다. 이는 노동조합의 산업별 단체교섭과 병행되는 사업장 수준 단체교섭의 미래와 직간접으로 연동된 문제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윤효원(2018), <노동자 경영참가의 네 단계 : 정보-협의-결의-결정>, 매일노동뉴스 3월28일.

Joel Rogers and Wolfgang Streeck(1995), Works Councils: Consultation, Representation, and Cooperation in Industrial Relations; Chicago University.

 

[참고 사이트]

http://www.worker-participation.e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