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브리프 창간호(제1호)_2018-01_이슈줌인] 한국지엠의 위기원인과 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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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연브리프 창간호(제1호)_2018-01_이슈줌인] 한국지엠의 위기원인과 대책

글쓴이: 정흥준(한국노동연구원 부연구위원)

 

한국지엠 경영진이 2018년 2월 13일 국내 공장 중 한 곳인 군산공장을 폐쇄한다고 발표하였다. 이에 대해 일부 언론에서는 차입금에 대한 높은 이자율과 완성차에 대한 낮은 수출 가격 등 지엠의 부도덕한 경영방식을 비판하고 나섰다. 동시에 지엠이 장기적으로 한국에서 완전 철수를 할 수 있으므로 지엠이 요청한 정부의 지원에 대해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러한 비판적 여론 때문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으나 지엠 경영진은 그 동안 한국지엠에 빌려준 차입금을 투자금 형태로 출자전환하고 글로벌 신차를 부평공장에 배정한다고 밝히면서 한국정부에도 다시금 지원을 요청했다. 이에 한국정부는 한국지엠에 대한 경영실사를 통해 지원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그 사이 정규직 노동자 2,500여명은 희망퇴직을 신청하였다.

 

 

1. 예견되었던 지엠의 군산공장 철수

 

지엠 경영진의 군산공장 폐쇄결정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지엠 군산공장은 이미 3년 전부터 정상적으로 공장이 가동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럽의 수출물량을 담당했던 군산공장은 지엠 본사가 오펠, 복스홀 등 유럽브랜드를 매각하자 2014년부터 생산물량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2015년과 2016년까지만 해도 설마 했는데 2017년부터 위기감이 급증했다. 군산공장에서 생산되는 ‘올 뉴 크루즈’에 대한 국내 판매를 기대했지만 예상외로 판매량이 높지 않았고, 군산공장의 가동률은 20% 내외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군산공장의 노동자들은 일주일에 2~3일 출근하면서 휴업수당을 받아 생활했으나 일을 못하는 날이 많아지면서 심리적 불안감이 커졌다. 일부 신문에서는 ‘놀면서 돈을 벌었다’고 조롱했지만 막상 노동자들은 일하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닌 상태로 가정과 직장에서 심리적 압박이 컸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하여 노사가 2016년 단체협약을 통해 군산공장 정상화를 위한 ‘군산공장 특별위원회’ 설치에 합의하였지만 이마저도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군산공장의 폐쇄결정은 ‘놀라운 결정’이라기보다 시기만 특정하지 않았을 뿐 어느 정도 ‘예상되었던 결정’이었다.

오히려 놀라운 것은 지엠의 군산공장 폐쇄결정이 아니라 2월 13일 폐쇄결정 이후 벌어진 이해 당사자들의 반응이다. 우선, 지엠 경영진은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 있는 해명 대신 2대 주주(17.02%지분 보유)인 산업은행을 통한 정부의 지원을 강조하면서 한국정부가 지원을 하지 않을 경우 완전철수도 고려할 수밖에 없다는 식의 으름장을 놓았다. 정부의 지원내역을 보면 산업은행을 통한 신규투자, 출자전환, 세금감면 등 다양했다. 한편 군산공장 폐쇄에 따른 고용대책은 희망퇴직 이외에 다른 대안이 없었으며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대한 대책은 아예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국민들은 지엠 경영진의 무책임한 경영과 막무가내식 정부지원 요구에 대해 상당한 불쾌감을 보였다. 다음은 노동조합의 태도인데, 노동조합은 지엠의 정상화와 군산공장 폐쇄 결정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지만 때 늦은 감이 없지 않다. 지난 3년 동안 지엠 경영진이 군산공장의 정상화를 위해 특별히 노력한 것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노동조합도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산업은행 혹은 산업자원부로 대변되는 정부의 모습이다. 산업은행은 한국지엠의 2대 주주였지만 군산공장의 정상화를 위해 개입한 적이 거의 없다. 한국지엠의 비정상적인 경영이 꽤 오랫동안 이루어졌지만 이에 대한 정책적 개입도 거의 없었다. 일이 터지고 나서야 정부지원을 위한 구체적인 실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전라북도와 군산시도 지역에 대한 지원 대책이 필요하다며 부랴부랴 대책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지엠 군산공장의 비정상적인 운영이 3년 동안이나 지속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사, 노조, 그리고 중앙 및 지방정부의 태도는 마치 갑자기 처한 상황인 양 대응하고 있다. 이것이 더 놀랍다는 것이다.

 

 

2. 한국지엠 위기의 원인과 향후 전망

 

군산공장의 폐쇄결정을 계기로 많은 이들이 한국지엠의 위기 원인과 전망을 나름대로 분석하고 있다. 언론 등은 한국지엠 위기의 원인으로 경영진이 주장하고 있는 경영손실을 많이 거론한다. 표면적으로는 맞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지엠의 위기는 경영진이 주장하는 ‘손실이 누적되어서’가 아니라 ‘생산할 물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미국 지엠의 자회사인 한국지엠은 독립적인 경영조직이 아니라 지엠 본사의 생산기지 중 하나이다. 애초부터 한국지엠의 존재이유나 경쟁력은 수익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지엠을 위해 적절한 규모로 생산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회계 상 한국지엠의 수익이 (+)일지, (-)일지는 본사와의 거래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 생산기지로서의 한국지엠에 가장 중요한 것은 어떤 차종을 얼마만큼 한국공장에서 생산할지인데 안타깝게도 이는 전적으로 지엠 본사의 결정에 달린 상황이다. 다시 말해 현재 한국지엠이 겪고 있는 위기의 일차적인 원인은 한국공장의 인건비 혹은 경영의 문제라기보다 미국본사의 글로벌 전략에 따른 것이다. 지엠의 글로벌 전략에 따라 한국지엠이 적정수준의 생산을 책임져 준다면 회계 상 한국지엠은 적당한 순이익을 보장받을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회계 상 순손실은 불가피한데, 지금이 딱 그런 상황이다. 아래의 [표 1]은 한국지엠의 공장별 생산량을 나타낸 것으로 부평공장은 35만대 내외를 유지하고 있지만 나머지 공장의 생산량은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2017년 현재 52만대를 생산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지엠 본사는 오래전부터 물량경쟁을 통해 해외 자회사들을 관리해 왔다. 이 과정에서 한국에 불리해 진 부분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 한국은 내수시장이 확대되지 않고 있으며, 둘째, 인건비가 높은 편에 속하며, 셋째, 노동조합이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이러한 특징은 기업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일반적인 생산기지로서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지엠이 대우자동차를 처음 인수할 때도 노동조합은 존재했으며, 인건비가 그리 낮은 것도 아니었다.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을 중요한 생산기지로 삼은 이유는 단점만이 아니라 상당한 장점들이 동시에 존재했기 때문인데, 첫째, 우수한 품질이다. 한국의 자동차 조립능력은 전 세계 지엠 자회사 중 최상위권에 속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둘째, 소형경차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공장이 한국(창원)에 있으며 소형차 연구개발이 이루어지는 것도 한국공장의 장점이다. 셋째, 지리적으로 한국공장은 지엠의 중국공장을 보완 혹은 견제할 수 있는 아시아의 유일한 공장이다. 즉, 지엠 본사의 입장에서 한국지엠은 장·단점을 모두 가진, 완전철수가 쉽지 않은 자회사이다. 그럼에도 최근의 선례를 보면 지엠은 미래의 수익보다는 당장의 손해를 민감하게 받아들여 독일, 호주, 스웨덴, 인도네시아, 러시아 등 주요국에서 과감하게 공장철수를 단행해 왔다.

그렇다면 앞으로 한국지엠은 어떤 운명일까? 많은 이들이 한국지엠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 하며 조심스레 전망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은 한국지엠의 미래 운명은 지엠 스스로도 궁금한 것일 수 있다. 사실 군산공장의 폐쇄는 어느 정도 예측 가능했다. 예상은 되었지만 누구도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렇다면 군산공장의 폐쇄 이후 한숨 돌린 지엠은 한국에서 정상적인 생산을 이어갈 것인가? 이에 대해선 누구도 장담할 수 없지만 적어도 몇 가지 고려사항들이 있다. 첫째, 지엠의 경영전략이다. 지엠은 2009년 파산위기 이후 적극적인 생존전략을 전개해 왔으며 손해 보는 장사는 접고 대신 새로운 사업을 전개해 왔다. 이러한 관점에서 한국지엠을 적정수준에서 유지하다가 미래 생산기지로서 활용가치가 떨어진다고 판단되면 즉각적인 철수를 시도할 수 있다. 둘째, 해외 자회사의 상황도 고려해야 한다. 지엠의 주력공장은 북미의 미국, 멕시코와 아시아의 중국과 한국이다. 자국인 미국을 제외하면 인건비 등 유지비용이 큰 나라는 한국, 중국, 멕시코 순이다. 멕시코에서는 이미 한계치를 초과한 생산을 하고 있으며 중국은 정치적으로 미국의 경쟁국이기도 하지만 인건비가 계속 올라가고 있는 위험성이 있다. 따라서 지엠이 다른 나라에서 대안을 찾지 못하는 이상 한국공장을 어느 정도 유지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 따라서 선례를 비춰보았을 때 군산공장 폐쇄 이후 3~4년이 완전철수 혹은 잔류의 중요한 시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3. 한국지엠의 생존전략 및 고용대책

 

지금부터 향후 3~4년 동안 한국지엠 노사와 정부는 한국지엠의 생존과 고용안정을 위해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되었다. 지엠 본사는 군산공장을 폐쇄하면서 한국에서 생산물량이 줄어든다면 남은 자산을 처분하고 철수할 준비에 착수하겠다는 신호를 이미 보내 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지엠의 노사와 정부는 단기적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극복할 대안들을 마련해야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지엠 본사의 완전 철수 등 시나리오별로 다양한 대응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1) 군산공장 폐쇄 시 고용대책

지엠 경영진은 군산공장의 폐쇄결정을 철회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생산할 물량이 없기 때문에 군산공장을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이 논리이다. 노동조합과 지자체는 군산공장 유지를 강하게 요구하고 있지만, 지엠 경영진을 압박할 수 있는 뾰족한 카드가 없는 상황에서 군산공장은 예정대로 폐쇄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장폐쇄 이후 원청 정규직과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고용에 대한 대책 논의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우선, 정규직에 대해선 강제적인 정리해고를 피해야 한다. 희망퇴직을 거부하고 남아 있는 원청 정규직의 경우 노사가 합의를 통해 창원, 부평, 보령공장으로 전환배치를 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면 정리해고를 피할 수 있다. 원청 정규직만이 아니라 사내하청 비정규직에 대한 고용대책도 동시에 진행되어야 한다. 군산공장 사내하청 비정규직의 경우 노사는 물론 정부가 함께 나서 부평이나 창원공장의 사내하청 또는 지엠 부품사 등에 일자리를 구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군산지역에서 지엠 군산공장에만 전속적으로 부품을 납품하는 회사에 대해서 다른 판매망을 찾을 수 있을 때까지 단기적으로 고용지원금 등을 지원할 필요가 있다.

 

2) 경쟁력 제고를 위한 협력, 공생, 그리고 혁신

군산공장이 폐쇄된다고 할지라도 한국지엠의 위험요소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경차를 생산하는 창원공장의 물량이 줄어들고 있으며, 부평 1, 2공장 중 부평2공장의 가동률은 60% 수준에 불과한 상황이다.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는 공장은 부평1공장과 자동미션을 만드는 보령공장 정도이다. 따라서 한국지엠 노사는 다양한 방법을 통해 남아 있는 공장의 정상적인 가동을 목표로 해야 한다. 우선, 경영진은 경차에 대한 기술투자 및 마케팅을 통해 창원공장의 가동률을 높여야 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창원공장의 가동률은 거의 100%였기 때문에 불가능한 목표가 아니다. 다음으로, 노동조합은 부평1공장과 부평2공장 간의 물량을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얼마 전까지 부평1공장은 잔업과 특근을 하지만 부평2공장은 휴업수당을 지급받아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술적인 문제가 있다면 이를 최소화하되 노동조합은 최대한 물량이 적절하게 안배될 수 있도록 협조해야 한다. 또한 노사 모두 위기경영이란 인식아래 당분간 신규 인력충원을 최소화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스스로 경쟁력을 가진 공장이 될 때 비로소 노동자의 고용안정도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3) 지엠의 경영 투명성 제고를 위한 정부의 적극적 역할

이번 지엠사태를 계기로 지엠 경영진만이 아니라 산업은행의 역할에 대한 질책도 적지 않았다. 한국지엠의 지분을 17.02%를 소유한 대주주임에도 불구하고 지엠의 경영에선 거의 배제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직접적으로 경영에 참여할 수는 없지만, 한국지엠의 경영상황에 대한 정보파악마저 어려운 것은 아니다. 의지만 가지고 있다면 산업은행이 한국지엠의 경영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다양한 방안들을 모색할 수 있으므로 향후에는 이 부분이 개선되어야 한다. 마침 한국지엠은 경영실사를 통해 자금지원의 방법과 규모를 결정할 계획이다. 지엠 본사가 차입금을 출자전환했기 때문에 이에 상응하는 조치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어찌되었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자금만 투자하고 말 것이 아니라 상시적으로 경영에 개입하여 지엠 본사와 한국지엠 간의 부당한 거래를 감시하고 경영의 투명성을 높일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시라도 지엠 본사가 한국지엠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4) 한국지엠에 대한 추가 지분 확보로 영향력 확대

지엠 본사는 앞으로 3~4년 정도의 시간을 두고 한국지엠의 ‘계속 운영’ 또는 ‘축소 운영’ 혹은 ‘완전 철수’를 결정할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결정을 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고려사항은 지엠의 글로벌 전략이지, 한국 국민의 일자리가 아니다. 따라서 한국지엠을 통한 한국 자동차 산업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지엠의 의사결정에 개입할 수 있도록 할 필요가 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한국지엠의 지분을 추가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다만, 추가적인 지분 확보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하므로 이를 모두 세금인 정부자금만으로 투자하기보다 국내투자 등 다양한 방식을 결합하여 공적자금을 구성하고 이를 한국지엠에 투자하여 지분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식으로 지엠 본사가 무책임하게 철수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