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운동, 대안은 지역이다/김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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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노동운동, 대안은 지역이다/김주일

구도희 4,066 2013.11.19 02:15
 
-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학교 산업경영학부 및 HRD 대학원 교수(jikimi@koreatech.ac.kr)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 속에서 노동운동과 지역은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었다. 전태일 열사의 청계 피복노조도 청계천의 평화시장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통하여 근본적 모순이 터져 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왜 ‘노동운동, 대안은 지역이다’라는 제목을 달게 되었는가? 그 시절 이후 우리나라의 노동운동은 지역과 괴리된, 엄격한 의미에서는 노동자의 일상적 삶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채 진행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 같은 반성에서 지역을 화두로 올리고자 한다. 
 
그간 민주노조운동은 신자유주의와 사회양극화의 흐름에 저항했지만, 시민들의 보수화 추세와 지역 사회에서의 주체 형성 실패라는 커다란 장벽을 넘어서지 못했던 것도 사실이다. 특히 지역사회 주체 형성은 진보정당의 존재감이 미약하고, 주민운동 조직이 발전하지 못해 아직도 답보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사회에서 여러 움직임이 있었다. 여기서는 지역사회의 몇 가지 흐름을 눈여겨 보고, 이를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첫째, 지역거점이 가능한 공간이 많이 형성되고 있다. 근래 들어 지역에 비정규노동센터, 근로·노동복지센터, 노동상담소 등 지역의 비정규직 혹은 취약계층, 이주노동자 등을 상대로 하는 노동관련 기관들이 많이 설립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의 지원으로 설립된 이들 조직들은 일정 정도의 의무사항이 있긴 하지만, 상근자가 지역사회에 맞는 다양한 활동을 할 수 있다. 물론 스페인이나 이탈리아의 ‘민중의 집’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는 숫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많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둘째, 지역 내 다양한 그룹의 네트워크가 지역 취약계층의 일상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 형성되고 있다. 지역시민운동단체나 사회적기업협의회, 노동단체, 사회복지단체 등의 연계활동이 활발하며, 수원과 같은 지역에서는 ‘반올림’, 시민단체, 노동단체 등의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공동활동을 전개하기도 한다. 이러한 활동은 중앙노조의 지역본부 중심으로 전개되지 않는다는 것 뿐, 어떤 면에서는 지역노조만 소외된 채로 진행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노동자의 일상적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아래로부터 전개되는 연계활동은 어떤 식으로든 의미가 있다. 또한 이러한 움직임을 노동조합이 주도해야 한다는 법은 없다.
  
셋째, 정부 사업의 지자체 위양 추세에 따라 위로부터의 거버넌스 구성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 및 지자체 주도로 일자리 및 인적자원개발, 사회복지 등의 전달방식이 지역 및 지자체로 위양되는 추세다. 이에 따라 지역노사민정협의회, 인적자원개발위원회, 사회보장협의회, 사회복지협의회 등 각종 협의회 및 거버넌스가 지역에 넘쳐난다. 그런데 정부의 어느 부서도 나서서 이를 교통정리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거버넌스는 지자체를 통해 중앙의 공공서비스를 전달하고자 하는 방식으로, 위로부터의 협치 혹은 민관협력 체제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이는 노동운동이 여기에 참여하자,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 달리 지역 나름대로 유연성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사업의 양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넷째, 노동조합의 지역본부들이 이러한 지자체 사업들과 부분적으로 연계되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를 재정부족이나 상근자 인건비의 문제로만 보는 것은 잘못 파악한 것이다. 이는  지역 노동자의 요구 등 사업적 필요성에 의해 결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지역 노동자의 일상적 삶의 문제가 해결 가능하며, 취약 노동자에 대한 접근이 가능하다면 지자체가 만든 공간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은 많다. 전면적인 변화의 틀이 아니더라도 부분적으로 이러한 사업들을 수행하며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중앙노동조합의 지역본부가 중앙만 쳐다보거나, 지역 내 파업사업장 지원만 하다가 놓치고 지나간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특성에 맞게 지역에서 진보적 주체를 만들어나가며 지역 노동자 및 취약 노동자, 나아가 정치적으로 배제된 취약계층을 상대로 이들의 일상적 삶을 조직화하고 만들어나가는 것은 현 단계 노동운동에서 의미있는 작업이다. 
 
이제 노동운동은 노동조합 위주의 기존 노동운동의 틀을 벗어나서 지평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지역 노동운동의 핵심은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노동자의 일상적 삶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를 구성하는 주민들의 공동체 네트워크로 편입돼 대중운동의 맥락과 연결되어야 한다. 즉, 공동체 운동이 지역노동운동의 핵심이다. 지역 공동체 운동은 자본에 맞선 노동, 시장에 맞선 공동체, 사유에 맞선 공유, 양극화에 맞선 통합, 배제에 맞선 참여, 지배에 맞선 연대의 가치 속에 형성되어야 한다. 또한 정치적으로 배제된 지역사회 주민들을 대변하여 진행하며, 일상생활 속에서 대안적 가치를 내면화하도록 형성되어야 한다. 
 
지역은 현 단계 노동운동에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첫째, 노동운동의 대안적 가치를 만들어 나갈 수 있다. 따라서 민족이나 계급의 논의에서 벗어나 친환경 소비, 복지의 녹색화, 일과 삶의 양립 및 문화적 여가, 자주관리 및 생산협동조합, 나아가 베이비부머의 퇴직, 노동자의 자기개발 등 일상적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과정에서 대안적 질서와 가치를 만들어나가야 한다. 이는 지역사회 주민들의 일상적 실천으로부터 시작할 수 있다. 지역은 그러한 대안적 가치와 질서를 만들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둘째, 연대와 네트워크가 가능한 공간이다. 지역에는 이념이나 명분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업이나 내용을 가지고 직접 얼굴을 맞대는 현장이 있다. 이러한 만남의 대부분은 연대와 네트워크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역에서 노동조합이 노동자의 삶을 위하여 무언가를 하려고 움직이면, 지역사회 내에서 끊임없는 네트워크가 형성된다. 이러한 연대에 기초하여 지역 공동체운동이나 일상적 삶의 조직화가 가능하다. 앞서 언급한 다양한 노동복지센터나 상담소 등은 구심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지역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자원이 지역으로 모이고 있으므로, 이에 대한 분배에 참여하여야 한다. 거버넌스는 어떤 측면에서는 중앙에서 전달되는 자원을 지역에 맞게 재분배하는 ‘깔때기’의 역할을 한다. 중앙단위의 참여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지역 거버넌스에 참여해 목소리를 내고, 지역 내 양극화를 해소하도록 기여하며 지역 내 진보 주체를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다.
 
지금 지역에서는 다양한 움직임이 있으며, 이를 기반으로 지역노동운동의 지평을 확대할 조건이 성숙되고 있다. 과거 지역노동운동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서, 중앙단위가 쉬쉬하며 하는 일들을 보다 더 적극적으로 떠안아 이를 아젠다로 만들고 활성화할 필요성이 있다. 민주주의의 위기와 사회경제적 퇴행의 시기에 지역사회에서 사회적 약자들이 진보적 주체로 형성되면, 노동운동을 한 걸음 진전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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