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여성노동자가 행복해야 99%가 행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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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여성노동자가 행복해야 99%가 행복할 수 있다

구도희 4,243 2016.03.08 11:03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3월 8일은 일 년에 단 하루밖에 없는 세계 여성의 날이다. 누군가의 ‘립서비스’처럼 365일이 여성의 날이라면 뭔 문제가 있겠냐마는 오롯이 딱 하루만 여성의 날로 정해져있다. 이는 백여 년 전 참정권과 노동권을 요구하며 행진했던 미국의 여성노동자들로부터 유래된다. 그래서 이 무렵이면 행사도 좀 열리고 언론에서도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나 ‘우리만의’ 여성대회를 치르고 나면 조합원들이 묻곤 한다. “이렇게 역사적인 날이 왜 공휴일이 아니죠? 왜 아는 사람이 별로 없죠?”라고. 푸대접보다 못한 것이 ‘무대접’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여성노동자의 처지가 그러하다. 
 
미국 대선 민주당 경선 후보인 버니 샌더스의 선전이 미국 뿐 아니라 우리들도 흥분시키고 있다. 그는 시간당 최저임금 15달러, 대학 무상교육 등과 함께 성별 차이 없는 평등 임금을 주장하며 남성이 100달러를 벌 때 여성이 78.9달러를 버는 것은 위법하다고 말한다. 한국의 여성노동자는 남성노동자가 100만 원을 벌 때 62만 원을 번다. 비정규직이라면 36만 원을 벌고 있다. 이것은 적법한가. 
우리나라 법에는 미국에서 보장되지 않는다는 출산휴가와 육아휴직이 있지만, 임신·출산·육아로 더 이상 직장 생활을 하지 못하는 20~30대 경력단절 여성의 비율은 60%가 넘는다. 한국여성노동자회의 상담 내용을 보면 정규직은 육아휴직을, 비정규직은 출산휴가를 쓰기 힘들다며 상담하는 비율이 높다. 비정규직은 출산휴가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맘 편히 아이를 낳고 기르는 것이 불가능한 사회에서 세계 최저의 출산율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그런데도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대표는 “조선족을 들여오자”는 말도 안 되는 망발을 쏟아낼 뿐이다. 여성대통령 집권 2년 동안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2.5배나 늘었다. 20~30대가 성희롱의 주요대상일 것이라는 생각을 넘어 비정규직의 성희롱 상담은 50대, 40대 순으로 많다. 40~50대 여성은 바로 최저임금 미만자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대이다. 비정규직으로 낮은 임금을 받고 고용불안을 느끼며, 모성이 공격당하고 성희롱이라는 인격적 모욕까지 견뎌 내야 하는 노동은 행복하지 않다. 이 불행한 느낌은 단지 여성노동자들만 느끼는 것인가.
 
여성노동자가 종사하는 분야는 1970년대의 경우 공장이 많았지만 요즘은 서비스영역이 많다. 서비스노동은 사람을 접하여 드러나는 것으로, 감정 소모가 많은 ‘감정노동’이 많다. 그 감정의 소모에는 가격이 매겨지지 않는다. 서비스노동의 또 다른 면은 ‘보이지 않는 노동’이다. ‘우렁각시’처럼 사람은 보이지 않지만 밥이 차려져있고 청소가 되어 있으며, 과학실험실에서는 실험 도구들이 준비되어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는 그 노동에 대해 아주 싼 값을 매긴다. 일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으니 노동을 존중하지 않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단가를 후려친다. 8시간이 필요한 일이지만, 6시간이면 할 수 있다고 선언하며 임금을 깎거나 노동시간을 줄여서 공짜로 대기시킨다. 일손을 놓기 전 그 노동은 드러나지 않는다. 주로 여성이 많이 하는 이런 노동은 인간이 살아나가는 데 필수지만, 그렇기에 가치가 더 낮게 매겨진다. 우렁각시로 살아갈 때 여성노동자는 행복하지 않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많아져야 경제에 도움이 된다며 정부가 내놓은 것은 시간제 일자리다. 임금은 더 낮아졌고 고용은 더 불안해졌으며 사회보험 적용도 되지 않는 나쁜 일자리다. 노동개혁을 한다면서 저성과자 해고를 쉽게 한다는데 그동안 임신 출산, 육아에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나쁜 평점을 받아왔던 여성노동자는 불안하다. 사회통념상 납득되면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다는데, 노조에 가입한 여성은 5%밖에 되지 않으니 단체협약으로 보호받을 수 없고 목소리를 낼 수 없어 불안하다. 불안해서 도무지 행복해지지 않는다.
 
여성노동자가 불행한 사회는 남성노동자도 불행한 사회이다. 임금만 놓고 보더라도 부부가 같이 번다면 여성의 낮은 임금을 상쇄할 만큼 남성이 더 일해야 하고, 업종에 따라서는 저평가되는 여성의 임금이 기준이 되어 함께 낮은 임금을 받게 된다. 
노동자는 누구를 누르고 행복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차별을 없애고 평등을 확보해서 더 크게 하나로 단결할 때만 더 행복해지는 존재이다. 여성노동자의 임금이 남성과 같아질 때, 임신·출산·육아가 사회적으로 축복받는 일이 될 때, 일과 가정 모두가 소중하다는 인식이 확산되어 함께 일하고 함께 돌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때, 세상이 돌아가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노동이 꼭 필요함을 인정할 때, 함께 행복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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