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비정규직 대책, 정부의 속내/노광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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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소의 창] 비정규직 대책, 정부의 속내/노광표

구도희 4,708 2015.01.08 09:57
 
-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정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이 예정 시한을 몇 번 연기한 끝에 드디어 발표됐다. 정부는 이 대책을 노사정위원회에 제출하면서 3월까지 노동시장 구조개선 특위의 합의를 이끌어 내겠다는 계획이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비정규직 처우개선과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이라는 부제이다. 부제가 암시하듯 정부 대책의 방점은 ‘비정규직’이 아니라 ‘노동시장 활성화’에 있다. 앞뒤가 바뀐 정부 대책에 대해 세부 사안을 논하는 것은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작년 하반기 내내 최경환 경제부총리와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한 노동개혁의 골격이 ‘비정규직 종합대책’에 담겨 있다고 말하면 지나친 기우일까? 어쨌든 2015년 봄은 새로운 고용노동 생태계의 규칙 마련을 위한 노·사·정 간 일대 격전의 시기가 될 것이다. 
 
정부의 대책은 ‘비정규직 종합대책’이라는 명칭이 무색하게 노동계의 거센 반대에 직면해 있다. 그 밑바탕은 비정규직에 대한 인식이다. 정부는 비정규직 확산이 정규직 과보호에 따른 결과로 정규직의 임금 및 고용 양보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다. “정규직이 과보호되고 있으니까 비정규직이 양산되고, 그러니까 기업들이 겁이 나서 정규직을 못 뽑는다”라는 경제부총리의 발언이 이를 웅변한다. 정규직·대기업·유노조 사업장에 속한 7.4%의 노동자들이 비정규직 확산의 주범이라는 인식이다. 결국 정부 대책의 칼날은 이들 과보호된 노동자들의 보호 시스템 해소에 집중된다. 왜곡된 현실 진단은 잘못된 처방전을 낳고, 상황은 더 악화된다. 
 
이제 세부 내용을 보자. 비정규직의 차별을 해소하고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 분명 존재한다. 차별시정제도의 실효성 강화를 위한 노조의 차별시정 신청대리권 보장, 철도·항공·선박 등 생명·안전 핵심 업무에 비정규직 사용 제한,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규모 제한 및 상시·지속적 업무의 정규직 전환 추진 등이 그 예이다. 반면 ‘장그래 죽이기 법’으로 회자되는 사용기간을(35세 이상) 4년으로 연장하는 내용과 고령자(55세 이상)의 파견업종 전면 확대를 포함하고 있다. 기간제노동자의 사용기간을 당사자가 원할 경우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면 비정규직의 고용은 연장되고, 기업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은 더 커진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사용기간 연장은 현행 기간제법의 취지를 무력화하여 정규직 고용의 축소와 비정규직 노동의 확대로 귀결될 것이다. 장그래가 원한 것은 비정규직 기간의 연장이 아닌 정규직 전환이 아니었던가? 55세 이상 고령노동자에 대한 파견 확대 역시 퇴직 이후 노동자의 일자리를 불안정한 비정규직으로 바꿔 놓을 것이 분명하다. 
 
필자의 정부 대책 평가가 몇 가지 사안을 너무 부정적으로 확대 해석한 것 아닌가라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정부 대책은 노동계와 경영계의 요구 사안을 어느 한편에 치우치지 않고 균형 있게 제시한 것처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경영계에 심하게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기계적 균형은 현실 개선이 아닌 현상유지로 귀결된다. 한국 사회의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 간의 생각을 절충해서 해소할 수 없을 정도로 ‘곪아 터진 종기’와 같다. 발상의 전환과 실패한 과거 정책과의 단절 없이는 한발도 나아갈 수 없다. 
 
정부 대책은 전진이 아닌 후퇴이다. 노동시장 활력 제고 방안에는 경영계가 수년 동안 집요하게 요구했던 숙원 과제를 몽땅 포함시켰다. 주당 52시간 노동시간의 60시간으로 연장, 직무·능력·성과 중심 임금체계 도입, 임금피크제 확산, 일반해고 요건의 완화, 취업규칙 변경 관련 기준·절차 개선 등이다. 
 
‘노동시장 유연화’의 망령이 다시 일터와 노동자의 삶에 엄습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는 노사뿐 아니라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좌우하는 문제이다. 정부 대책들은 경제활성화는커녕 계층 간 격차와 사회적 갈등만 더욱 확대할 것이다. 비정규직, 저임금노동의 해소 없는 온갖 구호와 정책은 모두 거짓이다. 을미년 새해 ‘을’의 인간선언과 ‘반란’을 꿈꿔 본다.
 
 
*편집자주) 이 글은 경향신문(2015년 1월 7일자)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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