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체제의 전환 전략과 과제

노동사회

노동체제의 전환 전략과 과제

0 3,911 2017.12.12 08:35
대전환의 노동체제, 어떻게 추진할 것인가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87년 노동체제’의 구조적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한 전환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노동체제 개혁에 대한 정부의 비전은 ‘노동존중 사회 실현’이라는 목표에 압축되어 있다. 노동정책 전환에 대한 정부의 의지는 과거 정부와의 ‘정책적 차별화’ 수준을 넘어서는 ‘전략적 전환’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러한 노력이 성공한다면 한국의 노동체제에서는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사회적 통합의 경로가 열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추진하는 ‘대전환(Big Transformation)’이 성공적으로 추진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한 ‘전략적 로드맵’과 ‘비전’의 필요성이 어느 때보다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새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존중 사회의 비전이 성공적으로 실현되기 위해서는 ‘작업장 중심 노동체제’를 ‘사회통합적 노동체제’로 전환할 필요성이 있다. 이와 동시에 집권적, 하향적, 관료적으로 운영되어 온 하향식 사회적 대화 체제를 분권적, 다원적, 상향적 사회적 대화와 파트너십 방식으로 전환해야 한다. 
 
대결적 담합의 지속 불가능성
 1987년 이후 한국사회에 공고히 자리 잡은 작업장 체제는 대기업 정규직 중심 노동자들의 기득권과 강력한 경제적 독과점 세력 간에 형성된 ‘대결적 담합’이라는 ‘교섭 관행 (Negotiation Ritual)’을 통해 유지되고 안정화되어 왔다. 그러나 87년 이후 대기업과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고착된 대결적 작업장 체제는 노동시장 간의 위계적 단절 구조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87년 체제를 주도한 대기업과 거대 공공기관들 중심의 교섭 체제는 한국의 노동시장을 소수의 독과점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의 거대한 신분 피라미드 체제로 만들었다. 이를 주도해 온 대기업, 독과점기업, 공공부문, 기득권의 조직화가 쉬웠던 직업집단들은 기존 체제의 최대 수혜 계층으로 그 입지를 공고히 다졌다. 87년 체제가 안정화되면서 고임금, 공공부문에서는 독점적 조직화, 소수 직업 집단 중심의 강력한 ‘일자리 카르텔’이 구축됐다. 반면 이러한 카르텔 주변에서는 진입 장벽의 공고화로 인한 노동시장의 경직화, 조직 슬림화를 위한 일자리 아웃소싱과 같이 오늘날 한국 노동체제의 구조적 문제들이 누적되거나 무관심 속에 방치되었다. 
 ‘교착적 작업장’과 ‘대결적 담합’이 동거하는 어색한 타협은 87년 체제의 대표적인 부산물이자 ‘의도하지 않은 사회적 결과물’이다. 이러한 체제는 산업과 부문, 직업집단 등 다양한 영역에서 이른바 양질의 정규직 일자리를 둘러싼 극심한 경쟁과 독점을 심화시켰다. 기존 일자리를 안정화시킨 집단들은 생산성과 관계없이 자신들의 일자리 기득권을 강화하는 일자리 카르텔을 만들었다. 
 기존 체제의 가장 큰 부작용 중 하나는 노동자들 간의 격차가 확대되고, 위계 구조가 정착되면서 일자리의 불균형이 초래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작업장의 위계적 서열 체제에서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 간에 신분적 차별화 현상도 강화되었다. 노동시장의 지위와 신분 격차는 일자리를 둘러싼 기회의 불균형을 낳았다. 노동체제의 불안정이 신분 격차와 출산 기피로 이어지고, 미래 인적 자원의 공급 기반을 잠식하여 노동시장 체제의 장기적 재생산 가능성을 위협하여 전체 사회의 경제적 토대와 재생산의 위기로 이어지는 연쇄 고리를 형성해 왔다. 하지만 이를 바꾸기 위한 노력은 거의 효과를 볼 수 없었다. 결국 현재와 같은 노동시장 체제가 지속될 경우 한국 노동체제는 중장기적으로 지속 불가능성이라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유사한 목표, 상이한 전략 
 한국의 노동체제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그러나 보수와 진보가 제시하는 체제 개혁의 비전과 전략은 대척점에 서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작업장 체제의 내부 담합 구조를 공격하고, 기득권의 해체와 구조조정을 통해 체제의 효율성을 향상시키는 ‘구조조정과 해체’ 전략을 선호한다. 반면 진보 진영은 기득권과 체제의 보호 기제로부터 배제되어 온 아웃사이더의 지위를 향상시키고, 불합리한 차별을 해소하는 한편, 아웃사이더 집단의 소득과 일자리 기회를 확충하는 격차 해소 방식을 통해 구조를 전환하는 ‘격차해소와 포용’ 전략을 선호한다. 
 보수정권은 기존 체제의 해체를 강력히 추진해 왔다. 그러나 새 정부와 보수정권의 전략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과거 정부는 작업장 체제를 해체하기 위해 기득권을 강제적으로 해체하는 데 주력했다. 반면 새 정부는 체제 개혁을 위해 조직노동에 양보와 동의를 구하고, 사회적 협치를 확대하는 한편, 기존의 노동체제에서 배제됐던 경제사회 주체들을 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사회통합적 전략을 취하고 있다.
 보수 진영에서는 작업장 체제의 내부 문제에 초점을 두고, 경쟁력과 효율성을 저하시키는 요인들을 제거하는 인력 합리화와 성과 중심의 구조조정에 주력해 왔다. ‘쉬운 해고’와 ‘성과주의’는 이러한 전략의 두 축이었다. 
 그러나 체제의 내부 개혁에 주력하던 이러한 시도는 대결적 담합 체제가 일으키는 ‘체제적 외부 효과(Systemic Externality)’에 대해서는 침묵해 왔다. 아이러니하게도 보수정부의 노동정책은 대결적 담합 체제에서 ‘대결’을 강화하는 한편 ‘담합’은 심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보수정권의 노동개혁은 조직 효율화와 일방적 변화 방식을 지향해 왔고, 간신히 추진되던 사회적 대화와 합의의 단초들마저 스스로 좌초시켰다. 결과적으로 작업장 체제 개혁과 전환에 대한 보수 진영의 시도는 기존의 대결 구도를 심화시키고 실패한 개혁으로 끝나는 최악의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반해 새 정부는 87년 체제의 공고화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됐던 아웃사이더 집단에 대한 적극적인 통합을 추구한다. 새 정부는 기존 체제에 대한 직접적 공격과 해체보다 노동시장과 고용체제 관행 전반에서 포괄적이고 적극적인 통합 노력을 중시한다. 
이러한 사회통합적 전략은 일하는 사람들의 소득을 향상시키고, 일자리를 확대하며, 최저임금의 인상과 노동시간 단축, 일과 가족의 균형과 같은 노동존중 정책을 통한 경제사회 정책의 전환 의지를 강하게 담고 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과거 정부의 신자유주의, 혹은 비즈니스 친화 노동정책과 극명히 대비되는 ‘사람 중심 성장’과 ‘사회통합적 전략’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추진하는 전략적 전환은 과거에 비해 훨씬 어려운 사회경제적 난관들을 극복해야 한다. 그만큼 노동개혁의 앞날은 좁고 험난하다.
우선 새 정부는 저성장, 저출산, 고령화라는 새로운 경제사회 및 인구 환경 속에서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산업화 시대를 주도해 온 베이비부머 계층의 노동시장 은퇴가 본격화되고 있고, 노동력의 급속한 고령화와 더불어 잠재 경제성장률도 2~3% 수준으로 떨어졌다. 기록적인 저출산이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도 곳곳에서 본격화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 현장에서는 정규직을 중심으로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고용의 질도 악화되는 고용 위기 상황이 해소되지 않고 있다.
 고용시장과 임금 구조의 구조적 문제점 또한 심화되고 있다. 한국의 비정규 고용은 지난 20여 년 동안 OECD 최고 수준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공공과 민간부문 간의 임금격차도 지속적으로 확대되어 노동시장의 구조적 불평등과 격차가 심화되어 왔다. 민간부문에서 좋은 일자리 창출을 선도해야 할 대기업들은 국내 고용 확대에 극도로 소극적이다. 
 새 정부는 경제사회 환경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소득과 고용 중심의 노동 친화적 성장 전략을 추진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존중의 사회통합적 노동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단기 및 중기적, 구조적 수준에까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고용 및 노사관계 정책이 일관되게 추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고용 위기 돌파를 위한 1단계 조치로 새 정부는 과감한 일자리 정책에 시동을 걸었다. 그러나 이러한 전략은 정부의 재정과 공공부문의 선도적 역할에 크게 의존하기 때문에 단기적인 처방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일자리 창출과 연계된 노동개혁과 민간부문의 경제 활성화가 순조롭게 결합되는 경우에만 정부의 일자리 창출 정책이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
고용위기 극복의 2단계 전략은 공공부문이 선도하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불합리한 고용관행을 해소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고, 이러한 분위기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OECD 최고 수준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체제의 개선을 위한 노동시간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고용에 대한 규제 강화, 최저임금의 적극적 인상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단기 및 중기적 정책들은 당장 정부가 주도적으로 시행할 수 있는 조치들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한국의 고용체제와 노동체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치 및 사회 세력들 간의 대화와 타협이 필수적으로 요구된다. 노동시장에 확대된 분배 격차를 바로잡고 청년층의 고용불안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 연대적 임금과 재분배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강력한 기득권 세력들을 사회통합적 노동체제로의 이행 과정에 끌어들여 보다 폭 넓은 보편주의적 노동통합 체제 구축에 동참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작업장 중심적 노동체제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우며, 이를 대체하는 사회통합적 체제로의 이행이 자본의 장기적 이익과 안정성에 도움을 준다는 인식이 공유될 필요가 있다.
 
사회적 대화의 프레임 전환과 분권화 
 한국의 노사관계에서 사회적 대화를 통한 노사관계 개혁에 대한 노력은 87년 노동체제의 성립 이후 지속적으로 전개됐다. 그러나 이제 기존의 사회적 대화의 방식은 한계에 직면한 것으로 보인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현재처럼 위축된 주된 원인 중의 하나는 관료적 통제 시스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중앙집권적 대화 체제의 제도적 한계와도 깊은 관련이 있다. 
노사정위원회 중심의 중앙집중적 대화체제는 대통령에 대한 자문기구 이상의 독자적 위상을 가질 수 없었을 뿐만 아니라, 제도의 운영 과정에 정부가 깊이 개입하는 관료적 통제 아래에 있었다. 노사정 체제의 참여와 대화 구조 역시 정부의 통제를 벗어나 폭넓은 당사자들이 참여하고, 중요한 사회적 의제들을 다룰 수 있을 만한 제도적 프로세스를 내실화할 수 없었다. 노사정의 자율적 대화기구의 위상과 지위를 강화시키기 위한 어떠한 실질적인 노력도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대화는 상징적이고도 형식적인 수준으로 점점 왜소화되어 갔다.
 사회적 대화기구가 지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실질적인 노사정 협치의 플랫폼으로 발전하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위상과 제도, 기능과 역할을 혁신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기구의 과감한 상향식 분권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과거 정부들이 조직하고 추진했던 사회적 대화는 해당 이해 집단들의 이익을 상향적 방식으로 소통하기보다는 정부, 관료, 전문가 집단 중심의 ‘하향식(Top-Down)’ 협의 체제 이상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사회적 교섭은 이해 당사자들과 분리된 채 국민 대다수의 관심과는 무관한 방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고, 합의 결과에 대한 집행력이 담보되지 못한 상태에서 형식적 협의 체제로 약화될 수밖에 없었다.
 사회적 대화의 기능을 실질적으로 복원하기 위해서는 대화기구의 다층화, 다원화, 분권화를 과감하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과거의 협약이 중앙 수준에서 이루어져 폐쇄적 타협의 결과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형식적인 협의에 머물렀다면, 새로운 사회적 협의는 경제사회적 이익과 운명을 직접 공유하는 당사자 중심의 상향적, 분권적 협치의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동시에 중앙 수준의 사회적 대화는 분권적으로 추진된 사회경제적 의제들을 조율하고 수렴하며, 최종 수준에서 폭넓은 합의를 끌어내는 역할에 주력할 필요가 있다.
 지역, 업종, 산업, 부문 수준에서 다양한 방식의 사회적 대화와 자율적 협약 모델들이 성장하여 각자의 방식으로 지역이나 산업에 뿌리내리게 될 분권적 사회 협약 체제는 향후 논의될 개헌 등 국가 운영의 기본 의제와 연결해 볼 때 적절한 개혁의 방향이 될 수 있다. 중앙 중심의 획일적, 일률적 사회협약 기제는 이제 기능하기 어렵다. 체제의 한계를 돌파하는 변화의 방향은 크고 작은 사회적 혁신과 성과들을 상향적으로 축적하고, 자율적 결정의 결과들을 사회 전반에 걸쳐 확산시키고 공유하는 것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기존 사회적 타협 체제의 중요한 한계가 중앙집권적 체제의 경직성에 있다는 것이 이제 분명해졌다. 경제구조는 다원화되고 지역 및 산업 간 이해는 점점 더 복잡하게 연결되어 간다. 지역 간 경제적 조건이 크게 다른 상태에서 하나의 사회적 대화기구나 조직이 수많은 사회 갈등과 이해 조정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제는 사회적 타협과 대화의 다원화, 분권화, 자율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이다.
 사회적 대화의 분권화는 개혁의 과정에서 분출되는 다양한 이해 충돌을 조절하고, 변화하는 경제사회적 상황에 능동적으로 대처 가능한 신축적인 사회적 대화 체제로의 제도적 전환, 혹은 제도 진화를 촉진하기 위한 토대로 볼 수 있다. 사회적 대화의 분권화와 이를 통한 신축성, 복원력, 적응력 확장은 새로운 노동체제가 경직화될 위험성을 방지하는 중요한 기제이자 사회적 대화 체제가 진화하는 데 새로운 방향이 될 것이다.
 중앙 중심의 집권적 노동체제가 안고 있는 부담과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지난 수년 동안 주요 지방정부 수준에서 시도되었고, 효과적으로 작동할 가능성을 보여준 분권적 타협과 협치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서울시가 지난 수년 간 독자적으로 추진해 왔던 ‘서울시 노사정협의회’는 지방정부의 노사정 협치 역량을 강화하고, 독자적인 일자리 노동시장 정책을 개발하는 데 성공적인 모델이라 할 수 있다. 이제는 그 경험을 다른 지자체들과 공유하고 확산해야 한다. 서울시에서 구체적인 성과를 보였던 지방정부 산하 조직들의 일자리 전환 모델이나 근무제도 개혁은 전국적 모델로 발전시킬 정도로 높은 완성도와 현실 적합성을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른 한편 성남시에서 야심적으로 추진했던 청년 배당과 기본임금 정책에 대한 논의는 많은 논란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기본 권리와 노동존중 사회의 최저 기준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데 크게 기여한 바 있다. 
 일자리 창출과 산업구조의 조정 과정에서 다양한 지역적 현안이 등장하는 상황에서 지방정부 주도의 산업구조 조정과 전환 노력은 지역의 노사자치 역량을 강화하고 노동체제를 전환하는 토대가 될 수 있다. 기초 자치단체가 지역의 크고 작은 산업체나 향토기업, 지역의 자생적 경제 주체들과 함께 수행해 온 지역맞춤형 일자리 창출 정책도 분권적 일자리 정책의 기초 역량을 강화하는 데 기여한 것으로 평가된다. 
 상향식, 분권적 협약 체제의 제도화는 향후 본격적으로 논의될 것으로 예상되는 분권적 개헌이라는 국가 체제의 개혁 의제와 더불어 논의될 때, 보다 효과적으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헌법 질서와 연계하여 노사자치와 산업평화, 사회통합에 대한 지자체의 책무와 역량이 획기적으로 강화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 중앙정부는 지방정부가 지역 분권적 노동체제의 역량을 구축할 수 있도록 행정적 능력, 조직적 자원, 의제 개발, 운영 능력 확충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민주적 사회통합과 협약 체제 구축을 위해 지방정부와 지역의 능동적인 역할과 그 의무를 강화하고 핵심 권한을 대폭 이양한다면 중앙정부로 과도하게 집중된 이해 충돌과 사회 갈등을 완화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노사자치에 대한 지역의 책무와 역량을 강화하는 중요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지역 수준의 자율적 노동체제와 유연한 협치 시스템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현장 노동정책의 방향과 주도권을 지역 수준으로 이양하고, 중앙과 지역의 역할을 조정하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정부의 과도한 중앙집권과 고용노동부의 행정 주도적 관행은 노동체제의 분권화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노동체제 전환을 위한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권한과 책임의 과감한 이양과 분권화, 지역의 분권적 노동정책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과 병행될 때 성공적인 체제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편, 산업·업종별 협약 체제의 발전은 노동시장의 효율화를 촉진하는 계기도 될 수 있다. 특정 산업과 업종의 노사는 해당 부문에서 숙련과 직무에 따른 보상 체계, 자격 기준 등을 표준화하여 기업 간 임금과 고용지위 격차 확대를 방지할 뿐 아니라 산업 전반에 걸친 노동체제의 안정화와 유연한 발전을 촉진할 수도 있다. 이를 통해 직업 집단의 자율적 거버넌스가 형성되어 산업이나 업종별 노동시장의 선진화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산업과 업종별 사회적 협약 체제는 산업화 시대에 독점 대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수직적 작업장 체제와 이로 인한 노동시장의 신분화, 구조적 비효율과 사회적 갈등 요인을 극복하고 사회통합적 노동시장 체제의 선진화를 주도하는 중요한 제도적 기제가 될 수 있다.
 
사회적 대화 체제를 통한 국민적 공감대의 필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 중심’과 ‘노동존중’의 노동정책은 과거 정부의 노동정책과는 기본 패러다임을 달리하는 정책 프레임의 대전환이다. 새로운 전략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일자리 확충과 근로 계층 전반의 소득 기회 확대, 그리로 사회통합적 노동시장 구축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새 정부의 노동정책은 과거 정부의 ‘신자유주의’, 혹은 ‘비즈니스 친화’ 노동정책과 대비되는 ‘사람 중심 성장’ 전략으로 규정할 수 있다. 이는 구조조정과 신자유주의 기조의 기존 노동정책과 완전한 결별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전환으로 그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새 정부는 정책 패러다임의 대전환이라는 ‘거대한 산’과 더불어 ‘이행의 계곡’을 넘어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과제는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특히 대결적 작업장 체제의 모순을 비롯하여 87년 체제의 한계를 규정하는 핵심 과제들을 제대로 다루지 못할 경우 개혁이라는 배가 언제라도 뒤집혀 수장될 수 있다. 다른 한편 한국사회에서 오랫동안 체질화되어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어버린 낡은 노동관행과 노동정책의 누적된 모순들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산업화 패러다임과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새로운 경제사회 체제로의 진화는 불가능할 것이다.
 노동체제의 개혁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최대한의 국민적 공감대가 필요하다. 이를 끌어내기 위해서는 사회적 대화 체제의 효과적인 가동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노동존중의 민주적 정부가 권위주의 정부와 차별화될 수 있는 유일한 방안 역시 고도의 관용과 깊은 인내심을 요구하는 포용적이고 통합적인 전략이어야만 한다. 과거, 사회적 대화가 성공적으로 작동하지 못했던 것은 정부 스스로 사회적 대화와 민주적 이행에 의지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공감대와 타협만이 민주적 정부가 추진해야 할 유일한 방법인 만큼 이를 위한 노력을 멈추는 것은 사회의 발전과 진보를 포기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경우에도 사회통합과 대화를 위한 노력이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사회적 대화의 실질적 복원도 새 정부가 수행해야 할 주요한 과제 중 하나이다. 특히 보수정권 시절에도 단절되지 않고 이어져 왔던 지방정부 단위의 사회적 대화와 진보적 개혁의 성과 중 성공적인 이행의 계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야 한다. 새 정부도 이러한 노력의 성과들을 계승하기 위해 노력할 의지를 보이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의 사회적 대화는 다양하고 다층적인 대화 채널을 활성화하고 산업과 지역 수준에서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협치의 성과를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도록 지원되어야 한다.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한국의 노동정책은 패러다임 전환의 변곡점에 서 있다. 새 정부는 경제 성장과 기업 중심의 성장 전략에 종속되어 온 한국의 노동정책을 일하는 사람들의 성장과 그들의 일자리를 중시하는 방향으로 근본적인 전환을 시도하고 있다. 이를 위한 유일한 방안은 폭넓은 보편주의적 가치를 바탕으로 노동사회 전체를 통합하기 위한 전략을 마련하고 그 정책을 추진하며, 관행을 바꾸는 것이다. 노동정책의 대전환 노력이 노동존중의 민주적 가치를 실현함으로써 한국사회의 성취를 더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힘을 모아야 한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9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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