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진보정당과 18대 총선 그리고 전망

노동사회

두 개의 진보정당과 18대 총선 그리고 전망

편집국 0 5,026 2013.05.29 09:41

지난 2004년 총선을 통해 한국정치사상 40여년 만에 국회로 진출한 민주노동당이 원내진출 4년 그리고 창당 8년 만에 두 개로 나뉘어 선거를 치르게 되었다. 그간 이런저런 문제에도 불구하고 물 밑에 가라 앉아 있던 민주노동당 내 정파 간 대립과 갈등이 대선을 계기로 공개적으로 터져 나와, 마침내 총선에 임박한 시점에서 당내 ‘소수파’가 탈당하여 ‘진보신당’을 결성하여 선거에 임한 것이다. 이로써 두 개의 진보진영이라는 조건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총선 후 민주노동당의 일부 인사들은 ‘개혁을 통한 통합’을 기대하지만, 선거결과로 자신감을 얻은 진보신당 측에서는 ‘경쟁을 통한 상호발전’을 선호하고 있다. 따라서 두 개의 진보정당이라는 현실은 앞으로도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이 글에서는 두 개로 나뉜 진보진영이 맞이한 선거결과를, 노선과 지지기반이라는 측면에서 분석하고 이에 근거하여 진보정당운동의 미래를 전망하고자 한다. 

두 개의 진보정당 총선에서 무엇을 얻었나

진보신당은 총선을 불과 20여일 남겨둔 3월16일 공식 창당대회를 개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지역구 34명, 비례대표 11명 등 총 45명의 총선후보를 인준함으로써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한편, 민주노동당은 대선 이후 수면 위로 떠오른 진보신당파와의 갈등으로 후보공천이 늦어져, 3월 초에야 비례대표 후보를 결정하고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할 수 있었다. 양 당 모두 예비후보를 적극 활용할 수 있었던 보수정당들에 비하면 대단히 늦게 본격적인 선거운동에 돌입한 셈이다. 진보정당에 대한 국민의 기대를 의식해서였는지 양 당은 가능한 지역구에서는 서로 부딪지 않도록 신경을 썼고, 때문에 10개 선거구에서만 양 당의 후보들이 경합하게 되었다.  

선거운동 방식을 살펴보자.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이 없는 것은 아니었으나 민주노동당은 8년 동안 기반을 닦아 온 조직에 크게 의존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 반면 새로이 창당한 진보신당은 조직보다는 인지도가 높은 정치인의 이미지에 크게 의존한 선거운동을 전개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보수야당 후보들보다 선거운동 기간도 짧고 재정 등의 자원도 월등히 부족했던 양 당은 시민사회집단으로부터 보다 많은 지지와 후보를 확보하기 위해 ‘비례대표 전략공천제도’를 도입했다. 지역구의 경우에도 전략지역(민주노동당: 창원과 사천, 진보신당: 경기 일산과 서울 노원)에 보다 많은 자원을 투입했다. 한편, 양 당은 공히 전통적인 진보이슈와 탈근대적인 진보이슈를 내세웠으나,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을 부각해야하는 부담을 가졌던 진보신당은 탈당명분과 합치하는 ‘북한인권 문제’를 더 강하게 제기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이미 알고 있듯이,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 양 당은 지난 제18대 총선에서 지역구 2명,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3명을 포함하여 모두 5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했다. 제17대 총선에서 얻은 10석의 절반에 지나지 않는다.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득표율에서도 민주노동당 5.7%, 진보신당 2.9% 등 양당 합쳐서 8.8%를 획득했다. 이는 제17대 총선에서 얻은 13.0%보다 4%p 적고, 제4대 지방선거의 광역의원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얻은 12.1%와 비교해도 3%p가 줄어든 것이다. 또한 총유권자 대비 정당득표수도 민주노동당과 진보정당을 합쳐 3.9%에 지나지 않는데, 이는 제16대 총선의 7.8%보다도 적음은 물론 2년 전 지방선거에서 얻은 6.2%의 절반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표1] 참조). 진보정당은 지지기반을 확대하는 데는 물론 유지하는 데도 실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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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평상시 주민과 밀착해 성실히 지역활동을 벌였거나 뛰어난 정치(의정)활동에 따른 평판을 얻은 덕택에, 당선되거나 타당 당선자와 치열한 경합을 벌인 지역구 후보자 수가 이전에 비해 늘어났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울산 남구(갑)의 민주노동당 후보는 36.8%, 동구의 진보신당 후보는 32.3%, 경남 사천의 민주노동당 후보는 47.7%, 서울 노원구(병)의 진보신당 후보는 40.1%, 경기 고양 덕양(갑)의 진보신당 후보는 37.7%를 각각 얻었다. 이러한 선거결과는 진보정당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가장 큰 성과라 할 수 있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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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정당의 ‘분열’이 정말 패배를 가져왔을까?

진보정당은 둘로 나누어졌기 때문에 2004년 총선에 비해 저조한 성과를 거두었는가?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여론지지도 추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민주노동당은 2007년 기간 동안 내내 5~8%의 여론지지도를 보였고, 2008년 2월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회 출범 이후에는 민주노동당 5~6%, 진보신당 0.7~2.1%였다. 즉, 양 당을 합치면 6~8% 정도로 이전과 큰 차이가 없었다([표3] 참조). 간단히 말하면, 양당의 지지도를 합치면 진보정당에 대한 여론지지도는 분열 이후 늘지도 않았지만 줄지도 않았다. 총선에서 양당이 얻은 정당득표율은 8.62%로 총선 전의 여론지지도와 거의 같다. 진보정당의 ‘분열’이 총선 득표율에 심각한 영향은 없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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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 선거에서 유권자의 지지후보 결정요인으로 정당보다는 인물이 더 크게 작용했고, 후보가 출중할 경우 오히려 정당득표율을 올리는 결과가 나왔다. 때문에 진보정당의 분열이 선거에서 불리하게 작용했다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지역구 후보의 득표율이 높은 지역은 그렇지 않은 지역보다 정당득표율이 훨씬 높다([표2] 참조). 

다만 지역구에서 양 당 후보가 동시에 출마한 경우, 양 당의 정당득표율을 합쳐도 2004년 총선 때 민주노동당이 받았던 것에 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떨어졌다. 예를 들면 거제의 경우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모두 지역구 후보를 출마시켰는데, 그 결과 양 당의 정당득표율을 합친 수치는 21.6%였다. 이는 2004년의 32.7%와 비교하면 10%p 이상 하락한 것이다. 반면 양 당 후보가 경합하지 않은 선거구의 경우 2008년 총선의 정당득표율은 2004년에 비해 3~5% 정도 하락했다([표2]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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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노동당은 이번 총선을 통해 5석의 의석을 확보하며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다. 민주노동당의 유세모습  ▶ 진보정치 ]

따라서 분당하지 않았더라면 정당지지율이 8.6%보다 높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객관적인 근거가 부족하다 할 수 있다. 물론 분열 전의 민주노동당 정파들이 상호신뢰에 입각해서 상대방 정파 후보를 적극 지원, 지지했을 경우에는 이보다 높은 정당득표율을 기록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간의 사정을 보았을 때 그 가능성에 대해 긍정적으로 답하기 어려울 듯하다. 설령 진보신당이 분당하지 않고 민주노동당 내에 그대로 있었다 하더라도 비례대표 1~2석 정도 더 얻었을지 모르나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할 정도의 득표는 어려웠을 것이다. 선거 전 1~2년 동안의 여론조사에서 내내 6~8% 정당지지도를 기록한 정당이 선거에서 두 배가량 득표하는 것은, 주체역량이 급격히 강화되거나 탄핵정국 등과 같은 객관적 조건의 급변이 생겼을 경우에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거 패배의 역사구조적 요인

이렇듯 진보정당이 두 개로 나뉜 것이 패배의 결정적인 요인이 아니라면 보다 중요한 요인은 무엇일까? 보다 정확하고 자세한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총선 관련 설문조사 등의 객관적인 자료가 필요할 것이지만, 여기서는 그간의 다른 조사나 연구를 근거로 추론한 결과를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최근 유권자들이 급격히 보수화되었다는 점이다. 사회수준에서는 경제성장, 개인수준에서는 물질적 부의 축적(“부자 되세요!”)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는 국민들이 다수를 점하고 있다. 부유층은 더 많이 벌기 위해, 빈곤층은 안정적이고 충분한 소득을 보장하는 직장도 드물고 사회복지제도도 부실하기 짝이 없기 때문에, 중산층은 부유층으로 상승하거나 빈곤층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 각 계층은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신의 목적 즉 물질적 부의 확보를 추구하는 것이다. 이런 여론의 추세 속에서 반미자주 - 반신자유주의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진보정당은 저항하고 비판하는 것 이외 당장 해줄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둘째, 많은 노력에도 진보정당이 ‘잃어버린 10년’의 주책임자인 열린우리당(통합민주당)과의 차별성을 대중들에게 보여주는 데 실패했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서는 그간 당 내외에서 충분히 얘기되었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을 생략하기로 한다. 어쨌든 이로 말미암아 진보정당은 집권당과 마찬가지로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책임을 뒤집어쓰게 된 것이다. 

셋째, 진보정당들은 ‘성실하고 능력 있는 정치인들의 정당’ 등과 같은 긍정적인 이미지도 있지만, ‘진정으로 노동자?농민?빈민을 위하는 정당’이라는 이미지를 확고히 심어주는 데 실패했다. 실제로 민주노동당은 그간 비정규직 등 빈곤층이나 사회적 소수자가 신뢰할 수 있는 사업과 활동(방식)을 보여주지 못했다. 특히 비정규직의 경우 정규직 조직노동자와 미묘한 관계에 놓여 있기 때문에 진보정당이 이들을 위한 실효성 있는 정책과 활동을 전개하지 못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치른 거의 모든 선거에서 도시빈민이나 비정규직 등 미조직노동자들로부터 한나라당이나 민주당 등 보수정당보다 낮은 지지율을 얻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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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보정당은 비록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수도권에서 당선권에 근접하면서 정당으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3월 16일 진보신당 창당대회 모습  ▶ 진보신당 ]

정파갈등 확산과 대중조직 분열이 우려돼

민주노동당은 이전 선거 때보다 의석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원내정당으로서의 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된 데에다가, 진보신당보다 의석이나 득표에서 크게 앞섰기 때문에 탈당파에게 ‘아쉬운 소리’까지 하면서 통합을 ‘구걸’하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진보신당은 불과 20여일의 선거운동으로 3% 가까운 정당득표율과 당선권에 근접한 2명의 후보자를 낼 수 있었기 때문에 ‘홀로 서기’의 가능성을 확신한 듯하다. 
실제로 양 당은 통합보다는 당내 조직정비와 확대에 더 중점을 두고 있는 듯하다. 이는 무엇보다도 그간 양 정당이 민주노동당의 한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때로는 노선과 정책의 차이, 때로는 사업방식 또는 의사결정방식의 미숙함, 때로는 오해 등으로 말미암아 상대방에 대한 불신이 많이 누적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두 개의 진보정당이라는 현실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예측된다. 이렇듯 진보정당이 두 개로 나뉜 상태가 지속된다면 진보운동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부정적인 영향과 한 가지의 긍정적인 영향이 예상된다(물론 예상일 뿐 양 당이 대처하기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부정적인 영향은 첫째, 하나의 진보정당 시절 대중조직 내 비공개적이고 비공식적 형태로 존재했던 정파 간 갈등이, 두 개의 진보정당으로 분명히 나뉜 상태에서는 보다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형태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양 당 모두 선거 이후 조직확대를 위한 노력을 본격화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특정 정파가 주도권을 잡지 않은 대중조직의 경우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그만큼 갈등이 격렬해질 수 있다. 또한 곧 기업단위 복수노조가 허용될 가능성이 높으므로 노동조합의 정치적 분열과 갈등은 노조 자체의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두 번째 부정적인 영향은 양 당 간 경쟁의 형태와 관련된 것이다. 양 당 간의 가장 큰 차이는 ‘북한’과 ‘민주노동조합운동’에 대한 태도와 대응방식에서 나타나고 있다. 즉 상대적으로 반미자주노선에 더 충실한 민주노동당은 북한이나 민주노총에 대해서 우호적인 편이나, 상대적으로 계급노선에 더 충실한 진보신당은 북한에 대해서는 인권문제나 핵무기 개발문제를 이유로, 민주노총에 대해서는 ‘대기업 노조의 조직이기주의’를 두둔하고 있다는 이유로 비판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다. 

그간 민주노동당 내 갈등도 대부분 이러한 문제를 둘러싸고 나타났고, 선거기간 중에도 양 당 간의 이러한 입장 차이가 분명히 드러났다. 특히 이탈파인 진보신당의 경우 민주노동당과의 차별성 확보는 존폐의 문제가 걸린 것이기 때문에 이러한 차이를 더욱 강조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앞으로도 북한과 노동조합운동을 둘러싼 양 당 간의 논쟁과 갈등은 불가피할 것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진보신당이 북한이나 대기업노조에 대해서 지나치게 경직되거나 비판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반공주의나 반노조주의를 지향하는 세력으로 몰릴 수 있다는 점이다. 반면 이러한 사태를 지나치게 우려하여 미온적인 태도를 취할 경우 양 당 간의 차별성은 그만큼 희석된다. 그런 상태에서 노선이나 정책이 아닌 다른 요인을 중심으로 양 당 간의 경쟁과 갈등이 전개될 경우 진보진영 전체의 이미지가 손상될 우려가 있다.

진보진영 전체 파이를 키우는 협력적 분업구조여야 

두 개의 진보정당이라는 조건이 반드시 부정적인 영향만 주지는 않을 것이다. 지난 제18대 총선 결과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긍정적인 부분도 발견할 수 있다. 총선에서 양 당이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보인 지역을 보자. 민주노동당은 울산과 창원 등 전통적으로 조직노동운동이 강한 지역과 호남?충청?영남권의 농어촌지역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득표율을 기록한 반면, 진보신당은 거제 등 노조운동의 역사가 비교적 짧은 신흥공업지역과 수도권과 영남권의 중?대도시지역에서 민주노동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표4]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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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정확한 것은 설문조사 등을 통해 각 당 지지층의 사회경제적 특성을 비교해 봐야 알겠지만 이러한 지역별 분포만을 놓고 추론한다면, 진보신당은 화이트칼라, 인텔리겐챠 등 도시 신중간계급과 비정규직 노동자를 주요 기반으로 하고 신사회운동적 이슈를 내세우는 ‘신좌파’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강하다고 할 수 있다. 반면 민주노동당은 블루칼라 특히 대기업 노조원이나 정규직 노동자, 농민 등 전통적인 노농계급을 주요 기반으로 하고 구사회운동적 이슈나 반미자주통일과 같은 전통적인 이슈를 내세우는 ‘구좌파’ 정당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이 아닌가 싶다. 적어도 유권자들에게 그렇게 비친 것 같다. 

만약 이러한 추론이 옳다면 두 개의 진보정당이라는 조건은 오히려 우리 사회에서 진보운동의 기반을 확대하는 계기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즉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은 자신의 고유한 지지기반을 공략할 경우, 각자에게는 물론 진보정당 전체에게도 유리한 결과가 나타날 수 있다. 양 당이 주요 기반으로 삼고 있는 사회집단 간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측면이 강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분업구조는 단일 정당으로 있을 때보다 더 큰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성과는 보수진영과의 대결 상황이 나타났을 때 진보진영의 효과적인 연대협력을 전제로 할 경우만 현실화될 것이다. 

  • 제작년도 :
  • 통권 : 제13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