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조합은 전태일과 어떻게 만나야 할까

작성자: 임영국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사무처장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왜 전태일 열사는 노동조합을 만들 생각을 안 했을까? 노조를 만들어 평화시장 노동조건을 개선해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왜 하지 않았을까? 전태일의 눈에 당시의 노동조합이 힘이 되거나 도움이 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었기 때문은 아닐까…….

 
‘조합원 전태일’ 운동을 선언한 이유
 
전태일 50주기를 맞이한 올해, 섬유봉제 노동자를 조직대상으로 하는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이하, ‘화섬식품노조’)는 불현듯 ‘1970년 전태일은 왜 노조로 찾아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아니, ‘노동조합은 왜 전태일을 만나지 못했을까’라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이런 배경에서 화섬식품노조는 올해 2월 개최된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조합원 전태일> 운동을 선언하게 되었다. 
조합원 전태일 운동의 취지는 노동조합이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는 주체 단위로 나서자는 것이다. 열사의 분신 직후 전태일 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만들어졌던 청계피복노조의 전통을 이어받은 ‘서울봉제인지회’가 소속된 조직인 만큼, 화섬식품노조가 사명감을 가지고 나서야 할 운동이기도 하다. 
화섬식품노조는 대의원대회에서 이 운동을 결의한 후 ‘조합원 전태일 배지(badge)’를 제작하여 보급하는 한편, 중앙위원 전원과 사무처 구성원들에게 『전태일 평전』을 제공하여 읽기 운동을 시작했다. 또한, 지난 5월 1일 노동절에는 청계천 ‘전태일다리’에서 화섬식품노조 조합원 전체를 ‘조합원 전태일’로 임명하는 상징의식을 진행하고, ‘노조가 전태일 정신을 실천해 나가자’는 결의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풀빵연대와 산별노조
 
노동조합이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는 주체로 나서자는 선언의 의미는 다음과 같다. 먼저, 나눔과 연대의 전태일 정신을 노조가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를 고민하겠다는 것이다. 배고픔을 참으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던 어린 여공들을 위해 자신의 버스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며 연대했던 전태일 정신을 50년이 지난 오늘날 화섬식품노조가 어떻게 구현할지를 묻는 것이다. 
코로나19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재난기본소득’이니 ‘재난지원금’이니 뭐니 하며 취약계층 지원 정책들이 이야기되고 있다. 하지만 50년 전 전태일이 몸담았던 봉제현장의 ‘객공(실적급)’ 노동자들은 여전히 4대 보험은 꿈도 꾸지 못하는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이들에게 노동조합은 어떤 의미가 되고 있을까? 아니 그보다 노동조합은 과연 이러한 노동자들이 사각지대에 숨어 있다는 사실부터 인지하고는 있었는지를 되돌아봐야 할 것 같다.  
전태일의 ’풀빵연대‘ 정신은 전태일의 ’밑바닥 인간 사상‘에 맞닿아 있다. 조합원 전태일 운동은 노동조합이 전태일 정신을 실천하기 위한 출발선부터 다시 확인하고 고쳐 세우자는 의미다. 아래로부터 ’연대‘의 확산과 심화를 지향한다.
한편, 화섬식품노조는 조직 내부적으로는 조합원 전태일 운동의 의미를 산별노조체제를 완성하자는 의미로도 해석하고 있다. 전태일 정신을 실현하기 위한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는 결국 노동자의 조직이 기업단위를 넘어 산업과 지역으로 확장되고 강화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산별노조운동은 노동시장의 양극화를 넘어 노동자 단결과 연대를 강화해 나가기 위한 조직적 태세를 갖추는 일이다. 
 
노동자의 일상에 뿌리내린 노조를 향하여
 
마지막으로, 조합원 전태일 운동은 노동조합의 ’일상화‘를 추구한다. 50년 전 전태일에게 어떤 의미도 되지 못했던 노동조합은 지금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차별받고 불평등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언제든 찾아갈 수 있는 희망의 등대가 되어 있을까? 긍정적으로 답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맥락에서 조합원 전태일 운동은, 열악한 노동조건의 봉제 객공노동자들과 작은 사업장 노동자들부터 크런치모드 아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IT산업 노동자들까지, 우리 주변의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이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구체적인 일상에 뿌리내리도록 하는 운동이다. 조합원 전태일은 ‘우리의 일상이 되는 노동조합’을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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