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연브리프 제4호_2018-04_이슈줌인]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가 놓친 것: 공적연금의 미래

노사연브리프 제호:

글쓴이 : 이은주(연금행동 정책위원)

 

1. 국민연금 건강검진 : 체력 보강과 체질 개선 사이에서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5년마다 갱신되는 재정계산을 바탕으로 국민연금제도의 체력과 체질을 점검하고 얼마나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지를 논의하는 자리이다. 재정계산은 국민연금제도의 현 상황에 대한 검진도 포함되지만, 한 세대가 한 생애를 살아내는 시점까지를 예상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진단이기도 하다. 따라서 제도의 건강검진(재정계산) 결과는 단순하지 않다. 제도발전위원회는 진단서를 보고 앞으로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하는 제도의 건강문제는 무엇인지를 치열하게 논의하고 우선순위를 고민하였다. 물론 전문가의 판단은 진단서를 어떻게 읽고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아픈 부분과 향후 병이 발발할 곳을 구분하고 어디서부터 먼저 수술해야 하는지 판단하는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올해 4차 재정계산 결과를 바탕으로 한 제도발전위원회의 논의는 보험료 인상 쟁점으로 마무리되었다. 전문가들의 가장 큰 우려는 다시 반복된 기금고갈의 팩트를 극복하기 위해 보험수리적 대안을 설정하는 것이었다. 이로써 논쟁은 다시 보험료를 어느 수준까지 얼마나 빨리 올릴 것인가로 제한되었다. 제도발전위원회는 공적연금제도의 전반적인 기능과 역할을 논의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복잡한 건강검진 결과(재정계산)가 논의의 전제로 설정되면서 전문가들은 보험계리사가 되어버렸다. 물론 빨리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 이면에는 사회적 이전이 누구에게 얼마나 공평하게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세대 간 형평성의 고민과 소위 ‘내 돈 내고 내가 받아가는 시스템’에 대한 부동의 인식이 자리 잡고 있다. 사회보험제도가 ‘사회’ 속에서 부양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보험’이라는 기저를 바탕으로 제도설계의 초점이 맞춰지고 기여 대비 급여의 합리적 설정이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된 것이다.

그러나 제도발전위원회의 전문가들이 향후 70년을 예상한다는 이유로 당장의 형평성을 따지는 동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다. 그건 노동시장 기반이 얼마나 유지될 수 있는가에 대한 분석이다. 체력 관리도 중요하지만 체질부터 다시 점검해야 하는 상황이 온 것이다. 체질은 국민연금제도의 기반을 얘기한다. 공적연금은 월별 보험료 납부금으로 제도의 기반이 형성되고 장기간 관리를 통해 노후소득을 약속받는다. 그런데 (과장해서) 약 2,690만의 노동자(취업자)에게서 연금보험료가 빠져나가고, 국민연금이 노후소득보장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점차 확대되고 있는데 왜 노동상황을 우려해야 하는가?

 

2. 사각지대: 불안정한 공적연금의 기반

제도발전위원회에서는 보험료 납부와 관련된 노동의 상황을 사각지대로 간주한다. 즉 사각지대는 매달 보험료를 납부하기 어려운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말한다. 대표적으로 영세 자영업자와 저임금의 노동자들이다. 물론 이번 4차 제도발전위원회에서도 사각지대 논의는 있었다. 문제는 사각지대가 가입자의 확대와 가입 유지를 동시에 고려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제도에서 배제된 사람들은 특정한 노동계층이 아니다. 계약직 노동자는 주변에 산재해 있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고용 위기와 장기 실업은 더 이상 특정 인구의 독특한 현상이 아니다. 일하는 것을 전제로 소득이 발생하면 위험에 대비하도록 설계하는 보험방식은 장기의 노동이 단기의 노후를 보장했던 시기에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단기의 노동으로 장기의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역진적 상황이 이미 진행되고 있다. 4차 산업혁명은 일자리를 위협하는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면서 나이가 들고 긴 노후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그동안 사회보험제도에서 사각지대 논의는 가입자격을 갖춘 사람을 포섭함으로써 제도의 적용 범위를 확대하는데 주력해왔다. 공적연금제도 적용률만 봐도 대부분 80%를 상회하는 다른 나라보다 우리나라는 경제활동인구 대비 보험납부자 비율이 낮다. 이를 사각지대라고 정리했다. 그러나 사각지대는 이제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공적연금 가입자를 확보하는 건 어렵지 않지만, 이들이 장기간 사회적 부양이 작동하도록 자격을 유지할 수 있는지, 적정 수준의 자기 연금을 받고 국가의 부담을 낮출 정도의 연금보험료를 기여할 수 있는지의 논의가 필요하다.

그동안 노동은 연금제도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니었다. 경제성장의 전성기에 완전고용을 바탕으로 장기간의 보험료를 납부하면 은퇴 이후 남은 짧은 여생을 책임질 수 있는 구조는 제도의 안정성을 담보하였다. 여기에는 매달 일정 부분 보험료의 납부, 그리고 최소 20년 이상의 노동 기간(가입 기간)이라는 두 가지 조건이 충족되었다. 그런데 이제 당연한 것들이 사라지고 있다. 소득파악 인프라보다는 고용 자체의 위기가 닥친 것이다. 대한민국의 평균은 점점 찾기 힘들고, 불안정 고용형태에 따른 일자리의 지속가능성과 노후를 대비할 만큼의 충분한 보험료 납부의 부담은 줄어들지 않고 있다. 불안전 고용은 소득 활동 자체의 유지가 어려워 당장의 가처분소득 확보뿐만 아니라 은퇴 이후 미래를 고민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들은 공적연금 가입에서 배제된 특수한 집단으로 한정하여 가입자로 등록시키는 노력을 뛰어넘는다. 소득파악과 납부 회피의 수준에서 논의될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더욱이 노동시장 상황은 국민연금 가입률 데이터로는 명확히 파악할 수 없다. 매년 갱신되는 가입자 수는 각 연금가입자의 이력을 추적하지 않는 이상 평균 얼마나 가입해 왔는지 확인하기 어렵다. 물론 재정계산의 전망으로는 평균 23년(3차 재정계산)에서 더 줄어들 것이라는 비관적 진단만 나와 있다. 가입 기간이 짧아지면 그만큼 노후의 소득보장성도 낮아진다.

 

3. 노동 상황 진단 : 사회보험과의 연계성은 담보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러나 현 상황에 대한 전문가의 판단은 다르고, 노동시장 현황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제도발전위원회에서 다루지 않았다. 연금전문가들은 보험제도 자체에 근본적으로 내재한 불균형을 개선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이며, 사각지대 문제는 연금제도에서 수정 보완해 가면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적연금과 복지제도의 연계성을 고민하는 사람도 노동시장의 급격한 변화를 상상하기 어려웠다. 여전히 제도의 의무가입자는 늘어나고 향후 예측대로라면 기금고갈 시점에 연금 받을 나이가 되는 20대-30대의 노동시장 진입자들에 대한 데이터는 누적되지 않았다. 더욱이 제도발전위원회의 위원들은 불안정 노동시장을 수치상으로만 확인함으로써 중간단계가 없는 먼 미래의 대안들을 쏟아놓았다. 노동시장이 불안정하니 앞으로 기초연금만이라도 강화해서 최소한의 노후소득을 국가가 보장하는 체계로 가자는 주장이다.

복지전문가와 노동전문가의 괴리도 노동시장의 진단을 연결하지 못하는 한계 상황을 보여준다. 2003년 1차 재정계산 이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사각지대의 고착성에 조금이라도 주의를 기울였다면 두 영역의 연관성은 빨리 논의되어야 했다. 그러나 한쪽에서는 사회안전망의 구축이 불안정노동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당위성만 주장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노동 기반이 흔들리는 상태로 사회안전망을 어떻게 구축할 수 있는지의 고민으로 간극이 남아 있다. 또한 국민연금제도의 가입자 확대와 동시에 진행된 IMF는 비정규직의 노골적인 양산을 방조했고, 이들이 사회보험에 가입하지 못하더라도 노동자로서의 자격을 유지하여 근로기준법이 적용되고 최소한의 보호를 받는 것조차 축복인 대한민국을 방치했다. 거기에 강제동원 성격의 사회보험료를 내게 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가 않다. 세금처럼 내고 소득 이전으로 돌려받는 실감은 40년의 세월을 거슬러야 하고, 이전 세대(현 노인세대)의 경험이 나에게까지 체감으로 다가오는 건 거리가 있다. 당장 벌어 쓰는 돈의 규모를 가늠하고 내가 모았다가 받는 돈의 밀착성을 상상하는 납부자들은 제도에 대한 낮은 신뢰가 가중되어 일단 가입하면 노후소득을 보장하겠다는 정부의 주장이 거짓말로 들릴 수밖에 없다.

이제는 고용 없는 성장과 일자리의 변화가 보험체계의 유지를 가능하게 할 지 예측해야 할 것이다. 복지전문가들이 회피해 온 현 노동의 상황은 향후 10년 후를 예측하기도 어렵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보험체계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심각한 사안이다. 그렇다고 보험방식이 가지고 있는 위험분산의 기능과 사회구성원의 연대 취지를 포기하고 보험이 아닌 기본소득으로 갈아타자는 성급한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사회적 부양시스템으로 사회보험제도가 30년간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데 굳이 사회보험을 소득비례방식의 각자 책임 영역으로 전환하고 기초연금을 통해 국가의 재정부담을 키우자는 주장은 기금고갈의 공포만큼이나 황망하기까지 하다. 노동시장을 변화할 수 없는 상수로 설정하는 것도 이해하기 어렵다. 오랫동안 고정 관념으로 무시했던 불안정 근로자의 보호는 국가가 사후 이전체계를 형성함으로써(소위 국가 지원의 사회안전망 구축만으로) 충족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고용주와 노동자, 정부 부처의 현실 인식 속에 미리 대비할 수 있도록 시선을 앞당겨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연대가 빠진 보험료 부담은 고용주가 드러나지 않는 다양한 노동형태 속에서 점차 개인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는 현실이다. 노동자성을 인정받지 못하는 특수고용노동자들과 플랫폼 노동자들은 월 급여에서 나가는 보험료를 지불하지 못하거나 당장은 지불 할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쉽게 제도에서 배제된다. 이들은 특별히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국가 보조를 통해 다시 포섭할 수 있을 것이라는 안일한 대응만이 명맥을 유지하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사회보험제도가 위험에 대비할 수 있는 자조시스템으로서 그 의미가 더욱 가중함을 인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강제납부, 혹은 원천징수라는 수탈의 역사 속에서 보험료 납부의 의무는 부담으로 인식하고 보험료 납부를 위한 기반의 불안정은 쉽게 포기했다.

 

4. 국민연금제도의 미래, 노동에 달려 있다

복지국가의 기로에서 이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노동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줄 것인가? 혹은 노동자로서의 자격을 인정함으로써 사회보험 가입자격을 갖도록 허용하는 수준에서 멈출 것인가? 자조시스템을 포기하고 국가가 노후를 통째로 책임지도록 강제할 것인가? 선별주의가 형평하고 공정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 국가부담을 어느 수준까지 설정하면 국민들이 수용할 수 있을 것인가.

이쯤에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사회보험이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을 유지하기 위해 노동자성의 인정을 바탕으로 후분배의 차원에서 사회보험을 적용하지 말고 사회보험을 통해 일하는 사람은 누구나 위험분산의 체계 속에 먼저 포섭하는 것이다. 진입장벽을 낮춰 경제활동인구가 우선은 사회보험제도 속으로 들어오고 이를 유지할 수 있는 방안들을 제시할 수 있다. 매우 수세적인 방법이기는 하지만 사회보험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개인 책임으로 감당할 수 있는 부분은 제한적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일정 부분의 공동 기여를 통해 사회가 같이 부담하는 생각으로 전환해 가는 것이 필요하다. 가야 할 길은 무척이나 험난할 수 있다. 이제서야 공적연금이 노후에 생활을 유지하는데 꽤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흐름들이 포착되며(임의가입자의 증가), 여전히 충분하지는 않지만 적정수준의 연금을 받는 노인이 늘어나고 있다. 최소한 50년 이상의 공적연금 이력을 가지고 있는 국가에서는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은퇴와 노후 생활이 사회보험이라는 사회구성원들의 공동 대비를 통해 어느 정도 보완해 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노동과의 연계성을 진지하게 짚고 넘어가지 않으면 앞으로 제도의 유지가능성은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제도가 유지되길 원하는가? 아니면 노후는 각자 책임지길 원하는가? 일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혹은 일자리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욜로(YOLO)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소확행만 즐기고 사는 것을 일시적인 사회현상으로 치부할 것인가. 물론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노동할 수 있는 상황이 점점 열악해지는 것은 분명하고, 안정된 일자리를 찾는 것이 안정된 미래로 이어지지 않는 것도 먼 이야기가 아니다. 혹은 AI가 얼마나 인간의 노동력을 대신하게 될지, 그렇다면 노동 기반의 기여는 어떤 방식으로 수정되어야 할지를 논의해야 할 때가 빠르게 다가오고 있다. 이런 논의가 사회적 기구를 통해 제기되고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 공적연금의 미래를 검토하는 자리는 특별한 사람들이 허상의 미래를 논의하는 장이 아니다. 보험방식의 수정만으로 공적연금의 미래를 해결할 수도 없는 문제라는 것은 더욱 자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