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중독 사회’에 부는 워라밸의 바람

부경대신문 2018년 3월19일자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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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중독 사회’에 부는 워라밸의 바람

이주환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워라밸’이라는 용어가 요즘 유행이다. 워크-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의 단어 첫 글자들을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예컨대 이런 식으로 쓰인다. “이직 제의를 받았는데, ‘워라밸’이 헬이라 고민이네요. 연봉이 4백만 원쯤 오를 텐데 매일 9시까지 야근을 한대요. 어쩌면 좋을까요?”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온 고민을 호소하는 글이다. 말 그대로 “일과 삶의 균형”을 이룰 수 있는지, 직장을 다니면서 삶의 여유를 누릴 수 있는지 등이 일자리 선택에 있어 연봉만큼이나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기준으로 부상한 것이다. 좋은 현상일까? 나는 긍정적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배경에는 촛불집회를 통해 가시화된 우리 시민들의 저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촛불집회로 바꿔낸 것은 최순실과 박근혜의 아름답지 못한 정치권력만이 아니었다. 전국의 촛불이 모여 만들어낸 커다란 빛은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들과 함께 회귀했던 “산업화 역군”이라는 옛 유령의 불길한 그림자도 지워가고 있다.
노동은 이롭지만 남용하면 영혼을 잠식당하는 중독성 물질이다. 현대사회에서 노동은 일반적으로 칭송된다. 최소한 노동을 비하하는 건 금기시된다. 노동은 국가와 공동체의 유지 및 발전에 필요한 자원을 생산하는 이타적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는 아예 헌법 제1조에서 자국을 “노동에 기초한 공화국”이라 못 박았다. 그런 한편으로, 노동은 개인의 욕구 및 창의와 충돌한다. 타인의 지휘와 명령을 받으며 정해진 대로 반복하는 행위기 때문이다. 열심히 일하면 인정받고 보람도 있지만, 한바탕 놀고 난 후처럼 희로애락의 본능적 욕구가 충족되는 짜릿함은 없다. 요컨대 노동은 나의 욕구가 아닌 국가와 사회의 유지 발전을 위해, 재미없고 힘들지만 대가를 받고 어쩔 수 없이 하는 행위다. 나아가 너무 열심히 하면 중독된다. “일 중독증(workaholic)”은 할 일이 없으면 불안해하며 자신과 주위 사람들을 괴롭히는 자발적 장시간 노동자들을 지칭하기 위해 널리 쓰이는 용어다. 알코올과 같은 중독 물질을 남용하면 섭취하지 않았을 때의 삶도, 그리고 가족관계도 망가진다. 일도 마찬가지다. 너무 열심히 일하면 자신을 해치고 타인과의 유대가 무너진다.
한국은 노동자들에게 일 중독증을 강압적으로 권하는 사회였고, 지금도 어느 정도는 그렇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에서 최고 수준에 달하는 장시간 노동을 얘기하는 것은 이제 식상하다. 자연스런 욕구에 반하는 행위인 노동을 아주 오랫동안 하도록 만드는 세부적인 방법들이 무엇이었는지를 봐야 한다. 욕구에 반하는 행위를 습관화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당근과 채찍. 30년 가까이 군사독재가 군림해왔던 우리 사회에서는 후자가 훨씬 익숙했다. 위계질서에 기초한 의한 폭력은 장시간 노동의 친구다. 우리사회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병원이나 검찰청처럼 주로 샌님들이 모여 있을 것 같은 일터에서도 폭력 사건들이 종종 발생하는 건, 인간의 욕구와 도덕을 마비시키는 장시간 노동의 영향 아니면 설명이 안 된다. 최근 ‘워라밸’의 유행과 궤를 같이 하여 일터 폭력과 성희롱이 우리 사회가 해결해야 할 문제로서 공론장에 부각되고 있다. 연대의식에 기초해 권력관계에 가려 있던 성폭력을 드러내는 “미 투(me, too) 운동”도 그 일환이다. 이러한 현상은 일자리를 인질로 인간의 영혼을 파괴하는 폭력이 우리 사회구조에 얼마나 뿌리 깊게 자리해 있었는지를 반증하는 것일 터다. 동시에 그런 구조의 변화 조짐을 드러내는 신호이기도 하다.
몇 차례 되풀이 된 촛불집회에서 시민들은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오며, 모든 국민에게는 기본권이 동등하게 적용돼야 하고, 그것이 지켜져야 나라다운 나라라는 외침을 키워왔다. 그리고 지난해 드디어 정치권력의 교체를 이루어냈다. 촛불집회로 모인 시민의 힘에 의해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노동 존중 사회”를 내걸고, 노동시간 단축과 일터 민주주의 강화 등을 목표로 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사람이, 즉 삶이 노동보다 먼저라는 선언을 이행하고 있다. 워라밸의 유행은 이러한 구조적인 전환이 개인들의 일상에서 발현되는 현상이다. 사람이 먼저라는 선언에 동참한 시민들이 죽은 노동에 억눌려 있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살아 있는 욕구를 말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한 조짐이 어느 정도의 변화로 이어질까? 삶을 돌아보는 눈길이 개인의 테두리에 갇힌 다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눈길이 개인을 넘어 서로를 보듬는 연대를 만들어낸다면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더 큰 파장으로 돌아올 것이다. 바야흐로 흥미진진한 전환의 시대가 열렸다. 기대감을 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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