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쌓이는 노동 현안과 노사정 대화의 실종

작성: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노사정 사회적 대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오리무중이다. 지난 1월 31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양대 노총과 경영계 그리고 노동부장관이 손을 맞잡고 노사정 대화를 복원하기로 약속한지 벌써 50여일이 넘어서고 있다. 당일 대표자들은 빠른 시일 내 2차 회의를 열어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 등을 논의하기로 약속했지만 이후 상황은 깜깜무소식이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 말도 있지만 새로운 사회적 대화 기구 구성 논의가 쉽지만은 않은 상황이다.
 
사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노동계는 국회가 통과시킨 노동시간 단축 법안에 불만을 표시하고 최저임금 산입범위 입법화 논의가 사회적 대화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내며 반대하고 있다. 경총도지난달 27일 신임 회장이 취임했기에 업무 파악을 위한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원인들은 표면상의 이유일 뿐 핵심은 아니다. 근본 문제는 새로운 사회적 대화의 위상, 기능 그리고 역할에 대한 노사정간 이견으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경영계는 노사정위원회의 현 상태 유지를 주장하고 있는 반면, 노동계는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기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의 명칭 변경 및 독립성 강화 방안, 비정규직 등 참여 주체의 확대를 요구하며 팽팽한 줄 달리기 중이다.
 
지난 8년간 단절되었던 노사정 사회적 대화의 복원과 새로운 구성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시간만 허비하고 있을 때도 아니다. 노사정 모두에게 몰아닥친 미증유의 고용·노동 상황의 해결을 위해 사회적 대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기 때문이다. 절망적인 청년실업, 구조화된 저임금과 비정규직 남용, 최저임금 일 만원 실현, 노동시간 단축, 국제노동기준의 비준, 조선 산업 구조조정, 한국GM 사태, 공공부문의 혁신 방안 등이 우리 앞에 놓인 오랜 된 풀지 못한 숙제들이다.
 
과거 노사정위원회가 사회적 대화기구로 인정받지 못한 원인은 정부의 과도한 개입과 중립적 역할의 방기(放棄)에서 찾을 수 있다. 사회적 대화기구를 협의 및 토론의 장이 아닌 정부 정책의 추진을 위한 들러리로 삼았기 때문이다. 정부가 밀어 붙인 주요 정책들은 정리해고, 비정규직 확대 등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대하는 기업 편향적인 내용들이었다. 노사정 합의안이 만들어질 때마다 노동계 내부 조직은 극심한 혼란에 빠졌고, 합의한 노총의 지도부는 사퇴하였던 과거를 반추할 필요가 있다. 노동계 특히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를 중립적인 사회적 대화 기구가 아닌 정부 산하 기구에 불과하다며 불참해 왔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촛불혁명이후 사회·정치 환경은 급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존중사회의 실현을 공약으로 제시하였으며,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노동시간 단축, 노동부의 2대 지침 폐기 등을 선도적으로 실행하였다. 또한 주요 노동개혁 과제들을 정부가 일방적으로 추진하지 않고 사회적 대화를 통해 실행해 나갈 것임을 약속하였다. 한 발 더 나아가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문성현위원장은 사회적 대화의 복원을 위해서는 노사정위원회를 발전적으로 해체하고 재구성할 용의까지 피력하였다.
 
이제 노사정간 사회적 대화의 실현 여부는 노사 양 주체에게 그 공이 넘어왔다. 사회적 대화에 있어 경영계의 역할은 절대적이나,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 구성에 소극적이다. 과거 정부에서 전경련은 적폐세력으로 전락하였고, 사용자단체인 경총보다는 재벌들이 의사결정을 좌우한다. 이렇다보니 기업을 뛰어넘는 새로운 노사관계를 구축할 수 있는 담대한 계획과 구상은 경영계에서 마련되지 않고 지체된다. 재벌들은 정부 뒤에 숨어서 시간 끌기 전략이고 사실상 사보타지이다. 이제 재계도 노동조합을 배제하는 구시대의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인건비 따먹기에 골몰하는 무능한 자본이 만든 한국은 하청·외주·용역 등 비정규직 남용과 저임금의 지속가능하지 않은 세상을 만들었다. 시장 만능주의의 교리에서 벗어나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하고 유연안정성(flexicurity)을 함께 도모할 수 있는 총자본의 미래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
 
노동계의 입장과 태도는 결정적이다. 노동계의 판단에 따라 새로운 사회적 대화기구가 탄생할 수도 아니면 유명무실한 계륵으로 전락할지가 판가름 난다. 양대 노총은 정치적 상황 변화를 기회로 호랑이 등에 올라타야 한다. 노동계가 사회적 대화를 거부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 87년 체제의 유산인 기업별노조와 교섭구조를 갖고서는 한 발도 나아갈 수 없다. 노동자의 삶은 직장에서 받는 월급에 따라 좌우되지만 사회적으로 보장되는 간접임금도 중요하다. 노동자의 삶의 기반인 의식주를 옭아매는 주택, 조세, 교육, 건강보험 등은 추상적 구호가 아닌 노동자의 삶을 개선하는 사회개혁 과제이다. 기업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노동의제의 확장과 사회적 대화는 노동계가 주도해야 한다. 시간이 언제나 노동계의 편은 아니다.
 
 
 
 
#. 이글은 뉴스토마토 2018-03-22 06:00:00 시론기사에 실었던 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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