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만 안정, 임금·복지는 찬밥…애타는 '中규직': 국민일보(06.13)

 
학교비정규직, 文정부 비정규직 대책 사각지대 우려
 
초등학교 급식 조리원 최유화(가명·51·여)씨는 17년째 아이들의 점심밥을 책임지고 있다. 맛있게 먹는 학생들을 보면 뿌듯한 마음이 들지만 급식실 노동 강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한여름 찜통 같은 급식실에서 몇 시간씩 불 앞에 서 있다가 어지러워서 쓰러지기도 한다. 최씨 또한 후드 청소를 하다가 떨어져 허리를 다친 적이 있다. 하지만 대신 일해 줄 사람을 구하지 못해 다음 날도 복대를 찬 채로 출근해야 했다. 이렇게 일하고 최씨는 월급으로 160만원 정도를 받는다. 
 
최씨는 “아이들 먹을거리를 책임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버텨 왔지만 힘이 드는 게 사실”이라며 “요즘 인터넷에는 ‘비정규직으로 들어와 공무원 해 달라고 하냐’는 댓글이 많은데 공무원을 시켜 달라는 게 아니라 17년 근무한 데 대한 합당한 대우를 받고 싶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무기계약직이 대부분인 학교비정규직은 정책에서 소외될까 걱정하고 있다. ‘중규직’이라고도 불리는 애매한 처지 때문에 관심 밖으로 밀려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는 모양새다. 이들은 무기 계약직이 기한이 정해지지 않은 비정규직일 뿐 임금과 복지에서는 정규직과 차이가 크다고 주장한다. 학교비정규직노조(학비노조)는 이달 말 총파업을 예고했다. 
 
학교비정규직의 우려는 그간의 선례 탓이 크다. 앞서 박근혜정부가 시행한 비정규직 대책은 비정규직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는 방향이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공공부문 기간제 노동자 7만4000명이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 교육부와 학비노조 등에 따르면 2016년 기준 학교회계직원 중 82%는 무기계약직이다.  
 
고용은 안정됐지만 임금과 수당 등 피부로 느껴지는 차별은 여전하다. 대표적인 사례가 급식비다. 같은 밥을 먹는데도 정규직(공무원)은 급식비로 13만원, 비정규직은 8만원을 받는다. 설·추석에 나오는 명절휴가비도 다르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정규직은 기본급의 60%씩(84만∼158만원) 연2회 지급받지만 학교비정규직은 50만원씩 2회로 액수가 작다. 근무 연한이 늘어날수록 임금격차가 커지는 구조도 문제다. 학비노조에 따르면 일정 비율의 인상률을 적용받는 정규직 공무원과 달리 대부분 학교비정규직은 근속 3년을 채우면 월급 5만원이 인상되고 이후부터는 매년 2만원씩 일률적인 금액만 인상된다. 
 
새 정부가 비정규직 대책을 내놨지만 걱정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국가일자리위원회 이용섭 부위원장이 지난달 언론 인터뷰에서 “정년까지 보장되는 것만 해도 엄청난 혜택”이라고 발언한 점도 무기계약직의 불안감에 부채질을 했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이 인천공항공사 비정규직 1만명 정규직 전환 발표를 이끌어냈지만 노동계는 이 역시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무기계약이라는 형태가 본질적인 비정규직 대책이 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지난 4월 대선을 앞두고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발간한 ‘공공부문 노동개혁 10대 과제’에서 노광표 소장은 “일부 공공기관에서 정규직 전환이라는 미명 아래 무기계약직으로 포장하고, 무기계약자 처우 및 복지는 기존의 비정규직과 동일한 수준으로 시행 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비정규직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 차별시정제도가 작동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 같은 문제점들을 접한 유은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11월 교육공무직법을 발의했다가 임용고시생 등의 반발에 철회했다. 당시 유 의원은 근속연수에 따른 임금 격차를 지적했지만 임용고시생과 공무원시험 준비생 등은 역차별 문제를 제기했다. 학비노조 관계자는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게 아니라 근속 연수에 따른 정당한 임금 상승과 처우 개선을 바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해법은 없을까. 전문가들은 균형적인 학교 비정규직 임금체계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조언한다. 고용 형태가 안정된 이후에는 임금, 근로조건 개선이 수반될 수밖에 없는데 여기에 대한 예산 마련 조치가 없다면 협상은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다. 이승협 대구대 사회학과 교수는 “박근혜정부 당시 공공부문 무기계약직화를 진행하면서 고용형태만 안정시키고 예산 정책은 병행하지 못하다보니 현재와 같은 문제가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정흥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정상적인 조직원으로서 책임과 권한이 늘어나는 게 승급인데 무기계약직의 경우 이런 체계가 거의 없는 데다 임금도 차이가 나면서 상대적 박탈감이 커지고 있다”며 “별도의 직급·임금체계를 만드는 차원의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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