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회의에 출근 당기고…유연근무 체크 단말기 끄고 몰래 일: 경향신문(06.07)

 
 
ㆍ은행들 ‘유연근무제’ 확대 시행하지만 부정 사용 등 부작용 속출
ㆍ“선택 시간 맞춰 나오는 사람이 어딨나” 압박에 취지 무색
ㆍ일찍 출근하고도 퇴근은 늦어…“의무사용 횟수 조정해야”
 
은행들이 지난봄부터 유연근무제를 확대 시행하는 가운데 일부 영업점에서는 근무시간이 체크되는 단말기를 꺼놓고 몰래 일하는 등 취지를 무색게 하는 사례들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무 특성과 부서별 업무량에 맞게끔 의무사용 횟수를 달리하는 등 제도를 유연성 있게 설계하고, 부정 사용 사례를 지속적으로 점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은행은 일부 지점에서 시범실시하던 유연근무제를 지난 5월부터 전사적으로 확대했다. 오전 8시30분, 9시30분, 10시30분 중에 출근시간을 선택한 후 점심시간 포함, 9시간을 근무하면 되는 식이다. 우리은행은 확대 시행하면서 월 10회 유연근무제를 의무적으로 사용하고 한 달치 사용계획을 미리 등록하게 했다. 
 
시행 후 한 달가량이 지난 이달 초 우리은행 지방 영업점에서 근무하는 한 직원은 “유연근무제가 실제 취지대로 시행되지 않고 있어서 껍데기만 남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출근시간을 미리 등록해도 상급자들은 이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일찍 출근하라고 무언의 압박을 준다는 것이다. “(유연근무제 출근)시간 맞춰 출근하는 사람이 어디 있냐” “특정 시간대는 가급적 신청하지 말라”는 구두 압박을 주거나, 이른 아침에 회의를 잡아 출근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일이 다반사라는 것이다. 
 
이 직원은 “유연근무제를 신청해서 일찍 퇴근할 수 있는 날이지만 해야 할 일이 남았을 때는 근무시간이 체크되는 단말기를 끄고 몰래 일해야 한다”며 “예전과 달리 시간외 수당도 받지 못하고 일은 일대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한은행도 비슷한 상황이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7월 은행권 최초로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정하는 ‘자율출퇴근제’를 시행하고, 올해부터는 이를 월 2회에서 주 3회 의무사용으로 확대했다.
 
신한은행 노조 관계자는 “근무 인원이 적은 지점이나 연수·휴가자 발생으로 인력이 부족한 지점에서는 자율출퇴근제 확대 시행 후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해도 도저히 시간 내에 일을 마칠 수 없어 힘든 상황이 됐다”며 “일이 몰릴 때 단말기를 끄고 몰래 일하는 경우도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시행 취지는 매우 좋지만 관리에만 초점을 둬서 획일적으로 의무사용 횟수를 두고 직무 특성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사업부서나 영업점마다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유연근무제가 부담으로 다가오면 어딘가에선 제도를 좇아가지 못하고 꼼수 사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유연근무제를 직원들이 어떻게 하면 잘 사용할 수 있을지 실태를 계속해서 점검하고 분석하면서, 관리자들이 앞장서서 업무 효율을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이다. 
 
김 연구위원은 “이 모든 것이 잘 갖춰져 있어도 적정 인력이 투여되지 않으면 유연근무제는 허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은행들도 이 같은 부작용 사례들을 인지하고 개선노력을 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노조의 요구를 수용해 주 3회에서 주 2회로 의무사용 횟수를 조절했다. 우리은행은 노조와 인사부가 함께 현장에 불시점검을 나가 유연근무제가 제대로 지켜지고 있는지 체크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직원수 부족이나 업무 특성 때문에 유연근무제 월 10회 사용이 어려운 곳은 의무사용 횟수를 조정해주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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