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숙련을 매개로 한 점진적 임금체계 개편

-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최근 임금체계 개편 문제가 뜨거운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임금체계는 노동자 개인에게 자신이 성과에 기여한 몫을 결정하면서 임금에 대한 공정성 여부를 지각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며, 이를 통해 업무에 대한 몰입도와 조직에 대한 충성심, 직장생활에서의 보람과 가치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기업 입장에서는 인력의 선발, 교육, 보상, 경력개발, 이직 등 모든 인사 분야의 기준으로 작용한다.
 
  하지만 이렇게 중요한 위상에 비하면 임금체계는 불행하게도 그렇게 정교하지 못하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임금은 개인이 기업의 성과에 기여한 부분을 금전으로 보상받는 것인데, 노동자는 자신의 개인적 능력과 수행하는 직무의 중요도라는 두 가지 요소를 합해서 성과를 인정받는다. 결국 임금체계는 인적 속성과 직무적 속성의 두 가지가 얼마나 성과에 기여했는가를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우리나라와 같이 전통적으로 인적 속성에 치중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독일이나 미국처럼 직무적 속성에 치중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면 임금체계에 이런 요소들을 모두 반영하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임금체계를 그렇게 마음대로 바꾸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임금체계는 단순한 제도가 아니라 역사적인 발전 과정을 거치면서 그 사회의 문화와 보편적 정서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발전해 온 역사적 산물이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역사적 발전 과정에서 환경 변화에 적응하고 시대를 반영하면서 복합적인 성격을 갖게 되었다는 것이다. 
 
  독일과 미국의 직무급이 다르고, 한국과 일본의 연공급체계가 서로 다른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일 것이다. 더 중요한 사실은 대다수의 사회구성원은 그것을 가장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기준으로 받아들인다는 점이다. 그러므로 한 사회에 정착한 임금체계는 바꾸기가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착된 임금체계가 완전무결하다는 얘기는 아니다. 오히려 직면하는 환경에 따라 상당한 결함을 내포할 수도 있다. 요즘 연공급체계의 폐해를 비판하고 직무급체계로 전환하자는 견해가 커지는 이유 역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완전무결한 임금체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임금체계는 장단점이 공존하는데, 그것과 그 사회 구성원이 보편적으로 인정하는 기준이 어떻게 결합하는가가 현실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금체계의 역사적 속성을 고려할 때 중요한 점은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점진적인 도입과 지속적인 보완이 필수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이다. 
 
  연공급은 근속만 채우면 임금이 자동적으로 상승하고, 경력개발의 유인이 적으며, 유능한 인재의 활용이 어렵고, 사용자의 비용부담이 점점 커진다는 단점이 있다. 최근 부각되고 있는 직무급은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직무평가의 객관성을 신뢰하기 어렵고, 우리나라 현실에서 사용자 주도로 흐르기 쉬우며, 노동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이유로 노동조합의 반대가 특히 심하다. 
 
  두 가지 임금체계는 각각의 장점도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최근 기존의 연공급체계에 대한 변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확산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에서 가장 부작용이 적은 방법은 무엇일까? 필자는 조심스럽게 숙련 요인을 매개로 해서 두 임금체계의 차이를 절충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숙련은 연공급에서나 직무급에서나 논란은 있겠지만, 수용 가능한 요소이다. 두 임금체계의 차이를 점진적으로 완화하고 결합하기 위하여, 이를 단순화하면 ‘연공급’ - ‘연공급+숙련급’ - ‘직무급+숙련급’ - ‘직무급’ 정도의 스펙트럼을 생각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러한 스펙트럼은 전체 임금체계의 배열과는 다른 지극히 물리적인 스펙트럼이며, 필자가 제기한 앞의 논리(임금체계의 역사성 등)와는 다르게 인위적인 측면이 없지 않다. 하지만 임금체계의 여러 가지 속성을 볼 때, 일방적인 이식이 아닌 이러한 방식을 통해 부작용을 줄여 나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기업은 물론이고, 정부도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해 왔다. 하지만 임금체계의 역사적이고 복합적인 속성을 고려하지 않은 채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임금체계의 전환은 많은 부작용과 저항, 소모적인 논란에 직면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기업이나 정부는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도 임금체계의 속성과 주변 환경 등을 고려하고, 충분한 시간을 들여 임금체계를 개편해 나가야 한다. 그것이 결과적으로 가장 부작용 없이 시간도 단축할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연구소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