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 당사자주의'를 위해

 
- 전종휘 한겨레 기자(symbio@hani.co.kr)
 
 2015년 여름 즈음이다. 고용노동부 장관과 기자들이 밥을 먹는 자리에서 기자가 물었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통해 당사자들이 스스로의 이익을 구하도록 하고 노동을 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은 복지가 품어야 하는데, 한국이 10% 조직률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국가재정의 측면에서 보더라도, 결국 장기적으로 복지비용의 증대로 귀결될 테니까요. 노동부 장관이라도 노조 조직률을 적극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나서야 하지 않을까요?”
 돌아온 답변은 이랬다. “노조 조직에 정부가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조직은 당사자가 해야 할 일이다.” 원론적으로는 맞는 얘기다. 하지만 사실상 허가제처럼 운용된다는 의심을 사는 노조설립 신고제도의 행정절차를 간소화하고 노조 조직과 동시에 해고되거나 하청업체를 폐업시켜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잃게 만드는 대기업의 횡포를 근절하는 노동행정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기대하던 기자의 바람과는 한참 동떨어진 얘기였다.
 그 일이 있은 지 두어 달 뒤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은 보스턴에서 열린 노동협의회에 참석해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고 말했다. 안타까웠다. 흔히 신자유주의의 첨병국가로 불리는 나라의 대통령도 노조 가입을 통한 당사자주의를 강조하는 통에 한국의 노동부 장관, 대통령은 왜 못하는 것일까.
 
 그 사이 대통령이 바뀌었다. 노동 분야에도 많은 변화가 일고 있다. 공공부문 간접고용 노동자를 정규직화하겠다 하고, 이와 동시에 공공부문 일자리 창출로 청년실업 해소와 고용률 상승을 꾀하는 분위기다. 문재인 대통령이 광주에서 진정어린 표정으로 5·18둥이 김소형 씨를 끌어안아 국가폭력에 의한 희생자들을 정치적으로 복권시킨 것처럼, 여전히 경제발전의 도구로 인식되는 노동자들의 온전한 시민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조처가 있길 바란다.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의 법외노조화를 철회하고 전국공무원노동조합에 설립신고필증을 내어주는 한편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을 석방하는 건 그 시작이 될 터이다.
 그러나 변화의 바람이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새로운 행정처분이 내려지거나 이전 정권의 나쁜 처분을 철회하는 데서 그친다면 불행한 일이다. 여전히 땀 흘려 일하는 이들의 온전한 권리 회복과 산업현장의 평화를 발목 잡고 있는 ‘1997년 체제’를 뛰어넘기 위해 한국 사회가 제도 개선에 머리를 맞댈 정치적 접점의 확대가 필요하다. 국제금융기구(IMF) 구제금융 시기를 앞뒤로 형성한 옛 노동질서를 재구축하기에 좋은 시점이 왔다.
 
 우선 교원과 공무원 해직자의 가입자격을 중앙노동위원회 재심 판정이 나올 때까지로 한정하는 교원노조법 2조와 공무원노조법 6조2항은 언제까지 내버려둘 것인가? 언젠가 노동부 담당 과장에게 전교조를 법외노조화 한 까닭을 묻자 “해직자가 많으면 노조의 자주성을 잃어버리기 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과도한 오지랖이다. 노조의 자주성은 당사자인 조합원들이 고민할 문제이지 국가가 법외노조화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다. 
 국회가 당사자주의 관점에서 해당 법률 개정에 나서길 바란다. 동시에 노조 파업을 옭죄는 수단으로 수사기관이 악용하는 형법 314조 업무방해 관련 조항도 함께 손보면 좋겠다.
 그렇잖아도 “무늬만”이라는 관형어구가 따라다니는 산별노조의 효능감을 더 떨어뜨리고 소수노조의 단결권을 약화하는 창구단일화 제도도 이참에 손보는 건 어떤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당사자로 나서 목소리를 내고 제 권리를 스스로 지킬 수 있도록 현재 2%대에 그치는 비정규직 노조 조직률을 10% 이상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문재인 정부의 국정과제로 삼으면 노동계가 “부당노동행위”라며 반대할까? 
 
 노조 결성을 악마로 여기고 여전히 중공업과 제철 쪽에 블랙리스트가 공공연히 돌아다니는 상황은 시급히 개선돼야 한다. 노조법상 부당노동행위의 처벌 수위를 끌어올리는 법 개정과 함께 행정부와 사법부가 적극적인 처벌에 나설 때다. 이런 식으로 노동 현장의 당사자주의를 착실히 뿌리내리기만 해도, 한국이 여전히 비준하지 않아 세계적으로 미개한 나라 취급받는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 자유 협약(C87, C98) 비준이 성큼 눈앞으로 다가올 것이다.
 당사자주의를 집단화해 국제사회와 대한민국 헌법이 부르는 이름은 ‘결사의 권리(자유)’이다. 한국에서 온갖 사회 갈등이 개별화, 파편화하고 그 결과 장기화한 끝에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보단 잠복에 들어갔다 특정 시기가 되면 다시 튀어 나오는 일이 반복되는 배경엔 정치의 무능함도 한몫을 하지만 사회 각 부문이 ‘결사’하지 못한 탓도 크지 않나 싶다. 사회적 대화를 하려 해도 각 집단을 그럭저럭 대표하는 결사체를 찾기조차 쉽지 않다. 겨우 찾아내 대화를 하고 합의에 이르러도 온전한 집행을 장담할 수 없다. 지난 정부 때 이뤄진 노사정위원회 대화에서도 “비정규직 대표자를 찾아 대화 테이블에 앉히겠다”는 말은 들었으나 그게 이뤄졌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다시 2018년치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가 다가왔다. 올해도 노동계는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경영계는 “그랬다간 중소 영세 자영업자 다 망한다”는 얘기를 들고 나올 것이다. 해마다 빠짐없이 되풀이되는 패턴이다. 나의 의문도 계속 반복된다. 노동자의 최저생계 보장을 위해 최저임금이 대폭 오른 탓에 어려움에 부닥친 중소업체와  영세 자영업자들이 이번엔 그들의 결사체를 통해 대기업에 공정한 납품단가와 횡포 방지를 위한 협약을 요구하고 국가에는 그 충격을 완화할 지원책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문제가 풀려야 하는 것 아닌가? 대기업은 중소기업을 뜯어먹고, 영세 자영업자는 저임금 노동자의 피를 빨고 살아가는 이 구조를 바꾸려면 경제의 먹이사슬 각 단계마다 당사자주의를 구현할 결사체가 꾸려지고 각 단계마다 아래가 아니라 위를 향해 맞서 자신의 이익을 스스로 구하는 게 그 반대의 상황보단 민주적이지 않은가 말이다.
 국제노동기구의 87조 단결권 협약이 제 2조에서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단체를 설립하고 가입할 수 있는 권리”를 노동자뿐 아니라 사용자에게도 차별없이 주는 까닭은 이런 상황을 염두에 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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