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4차 산업혁명과 노동의 대응

 
 
- 임운택 계명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소위 ‘4차 산업혁명’에 대한 논의가 기세등등하게 확산되고 있으나 정작 그것이 노동과 노동운동에 미칠 영향에 대한 분석과 전망은 막연한 불안감 혹은 신자유주의 n.0 버전 정도로 이해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의 핵심인 ‘생산과 서비스 노동의 디지털화’전략이 노동의 새로운 단계를 개척하는 것인지, 혹은 이미 다양하게 시도된 자본의 합리화전략의 연속인지는 아직 분명하지는 않다. 어찌됐건 조직화된 노동으로서 노동조합에게는 심각한 도전임에 틀림없다. 
 
자본과 정부의 4차 산업혁명 옹호론자들은 노동의 디지털화가 생산성 향상은 물론 성장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디지털 세계에서 더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냄으로써 성장과 번영을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 반면, 4차 산업의 회의론자들, 심지어는 옹호론자들의 일부조차 노동의 디지털화가 노동의 탈경계화를 초래하고, 디지털 통제는 성과압력으로 이어져 노동자들의 내부 경쟁을 심화시키고, 궁극적으로 ‘디지털 프롤레타리아트’를 탄생시킬 것이라고 우려한다. 이미 비정규 노동자들이 차고 넘치는 상황에서 이러한 변화가 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대단히 위협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노동의 디지털화를 노동의 관점에서 어떻게 이해해야할 것인가?
 
지금까지 노동의 디지털화 전략이 상당부분 비용절감과 수익성 창출을 위한 기술적 사고유형에 기초하고 있다고 평가되는 반면, 이러한 전략이 담지하는 실질적 위험은 그것이 자본주의 발전의 새로운 측면을 포함하고 있다는 데 있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생산공간의 정보화는 단순히 정보의 집적과 처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에 있어서 새로운 사회적 행위를 요구하며, 그러한 점에서 정보공간(혹은 정보네트워크)은 다양한 고용형태와 새로운 협력형태를 요구한다. 일례로 주문형 생산(On-Demand Production)은 과거 다품종 소량생산보다 더 다양한 소비·정보창출·고객과의 소통 방식, 사회적 노동의 형태를 요구한다. 기술의 발전에 의해 생산노동과 서비스 노동의 경계가 점차 불분명해지고 있으며, 이미 광범위한 외주화가 진행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멀지 않은 시기에 정보네트워크 속에는 존재하지만 법적 지위가 불분명한 사업장 외부에 있는 노동자들을 동원하여 가치창출을 할 수 있는 생산이 보다 더 구체화될 수 있다. 이는 단지 서비스 산업에 광범위하게 존재하는 클라우드 워커(Cloud Worker)뿐만 아니라 테슬라처럼 자동차 생산에 디지털문화를 결합시키는 시도 속에서 미래의 발전 전망을 가늠해 볼 수 있다. 자율 자동차는 이제 이동수단이 아니라 업무와 여가의 공간을 꿈꾸고 있다. 물론 사회기술체계론에서 주장하듯 기술도입은 사회적 수용에 따라 결정되기 때문에 과도한 기술화, 자동화에 대한 전망은 현실적이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동의 디지털화가 불러온 새로운 변화는 과거 노조 혹은 국가의 규제 속에 놓여 있었으며 부분적으로는 자본주의의 발전 속에서 안정을 희구하였던 임노동이 점차 위협을 받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노동의 디지털화와 함께 노동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특수고용형태의 노동이 점차 증가하고 있는 것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불안정 고용이 증가하면서 전통적이고 법에 의해 보호되는 표준생계노동 또한 위협받고 있다. 
 
한편, 지식경제에서 고숙련(서비스/지식) 노동이 노동자의 높은 자기규정성과 자율성, 창의성, 권한을 담지하는 것으로 찬사를 받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아 노동의 디지털화는 노동자들 내부의 극심한 경쟁을 부추기면서 노동을 실시간으로 감시하고 있다. 일례로 IBM은 1990년대 소프트개발자들의 오픈소스 운동에서 창안하여 소위 ‘블루 공동체(Blue Community)’라는 공동체 개념을 도입하였다. 지식노동의 투명성과 통제를 겨냥한 이 개념은 클라우드 워킹에 결합된 프로그램 개발자 모두(정직원뿐만 아니라 프리랜서도 포함)에게 ‘블루 카드’를 도입하여 ‘디지털 평판’을 측정하는데, 과거 대략 18개월을 필요로 했던 소프트웨어 프로그램 개발을 최대 60시간으로까지 쪼개서 상호능력에 대한 디지털 평판을 측정하게 하였다. 동일한 정보공간 속에 있는 정직원과 프리랜서 간의 상호평가는 전형적인 디지털 규제체제를 고착화시키는 시도로 현재 ‘블루카드제’는 타 기업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실정이다.
 
한편, 노동의 디지털화는 임노동자들의 연대와 통일성을 위협한다는 점이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화학, 철강, 조선, 자동차와 같이 포디즘 시대의 주요 산업노동자들이나 공공부문의 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화되었다면, 오늘날 이들 노동자집단의 상당수가 점차 불안정 고용관계에 놓여있는 이주노동자(생산직과 디지털 노동자 모두 포함), 여성, 청년 등 불안정 노동자(프레카리아트)에 의해 대체되고 있다. 비정규 노동에서 분명하게 드러나듯 이러한 위험은 언제나 개인에게만 전가된다. 뿐만 아니다. 나아가서 생산노동과 서비스 노동의 탈경계화는 노조 조직의 권한을 놓고 노조 간의 분열을 촉발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게 볼 때 노동의 디지털화는 노동시장에서 노동의 분열과 파편화를 보다 더 촉진시킬 잠재력을 지니는 것으로 판단된다. 점점 더 분명해지고 있는 것은 오늘날 노동의 연대와 통일이 과거처럼 정파적 분열보다는 노동자 계급의 구조와 구성의 변화, 그리고 상이한 위치에 놓인 노동자들의 이해관계와 문화의 분열에 의해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정규직 노동자와 프레카리아트의 병존이 노동자의 분열과 노동조합의 사회적·정치적 목소리를 약화시켜왔듯 노동의 디지털화는 노동의 공간적, 사회적 분열을 더욱 심각하게 조장할 위험이 있다. 이러한 상황과 마주하여 노동조합은 4차 산업혁명의 위험을 단순한 신자유주의적 노동통제의 심화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보다 근본적이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노동정책을 고민할 시대적 요구와 마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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