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왜 우리에겐 ‘노동4.0’이 없는가? - 독일 ‘산업4.0’이 주는 시사점

 
- 이문호 워크인조직혁신연구소 소장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우리를 엄습하고 있다. 수없이 많은 관련 서적이 쏟아져 나오고, 언론매체 속에서 우리는 거의 매일 그 용어를 접하고 있다. 마침 대선 분위기를 타고 4차 산업혁명은 정치권의 중요한 정책적 이슈로도 등장하였다. 마치 온 세계가 뒤바뀌고, 이에 적응하지 못하면 곧 망할 것 같은 위협적인 분위기가 연출되고 있다. 
우리에게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이 가까이 다가온 데는 아마도 지난해 이세돌과 알파고와의 바둑 대결이 큰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대부분 이세돌의 승리를 예상 내지 고대했지만 결과는 가히 충격적으로, 알파고의 완승이었다. 인공지능에 대한 두려움과 경이감이 교차하면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관심이 사회적으로 급격히 고조되었다. 그런데 현재 진행되는 우리의 정책적 담론에는 중대한 문제가 발견된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해야 하나? 독일의 ‘산업4.0’(Industrie 4.0)에서 실마리를 찾아본다. 
 
 
4차 산업혁명과 ‘산업4.0’
잘 알려진 바와 같이 4차 산업혁명이란 말은 2016년 초 다보스 경제포럼의 주제로 다루어지면서 그 위력을 발휘하게 되는데, 그 진원지는 독일이다. 2011년 독일 하노버 박람회에서 ‘산업4.0’이라는 개념이 처음 공론화되었고, 2012년 독일정부가 산업정책적 차원에서 이를 수용, 주도해 나가면서 산업4.0은 커다란 사회적 화두로 등장한다. 이 독일의 산업4.0이 다보스포럼의 4차 산업혁명이라는 용어를 탄생시킨 전초역할을 한 것이다.
그런데 두 개념 사이에는 용어 및 내용 상 차이가 있다. 독일에서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 대신 산업4.0이라는 말을 사용해 왔다. 물론 독일에서도 산업4.0에 이르는 과정을 1차 산업혁명(증기기관과 기계화)-2차 산업혁명(전기화와 흐름‧대량생산)-3차 산업혁명(컴퓨터와 자동화)-4차 산업혁명(사물인터넷/CPS와 연결)으로 구분하긴 하지만, 이는 기술변화의 차이점을 편의상 시대적으로 구분한 것일 뿐, 실제로는 그 발전과정을 앞선 시대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 나타나는 단절적이고 파괴적인 현상(Revolution)으로 보지 않고, 점진적이고 연속적인 과정(Evolution)으로 본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4차 산업혁명의 기술적 토대는 3차 산업혁명과 마찬가지로 극소전자기술인 만큼 산업4.0을 ‘2차 디지털화’라고 부르며, 또 어떤 학자는 3차 산업혁명 시기에 많이 논의되었던 CIM(Computer Integrated Manufacturing)의 2세대라는 의미에서 ‘CIM 2.0’이라 부르기도 한다. 
그 두 용어가 갖는 또 다른 차이점은 독일의 산업4.0은 제조업 중심의 개념이며, 다보스포럼의 4차 산업혁명은 이 보다는 훨씬 더 포괄적인 개념이라는 것이다. 즉, 후자는 디지털기술과 함께 물리학 및 생물학 등에서 현재 발전되는 모든 신기술을 포함한다. 그리고 이 기술들이 적용되는 모든 산업, 사회, 문화, 정치적 영역은 물론 군사적 영역 등에서 까지 일어나는 총체적인 변화를 지칭하는 개념이다. 반면 독일의 산업4.0은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기술전략적’ 개념이다. 물론 타 산업도 연관되어 있기는 하지만 핵심은 제조업에서 출발했다. 그 배경은 다음과 같다.  
독일경제는 전통적으로 제조업을 기반으로 발전되어 왔는데, 2008년의 세계적 금융위기는 ‘실물경제’에 대한 중요성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었다. 여기서 독일은 자신들의 강점인 실물경제(제조업)를 다시 활성화시켜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현실의 세계를 컴퓨터와 네트워크를 통해 상호 연결하고 자율적으로 조정‧제어하는 기술체계인 CPS(Cyber physical systems)를 기반으로 지능형공장(스마트공장)을 구축하려는 시도가 일어나는데, 바로 이것이 산업4.0의 전략적 목표인 것이다. 
이 스마트공장은 그동안 고객의 다양한 요구와 시장의 수요에 맞춰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유연생산체제를 구축하는데 어려웠던 점을 기술적으로 극복해줘 비용을 줄이면서도 개인화된 대량생산(Individualized Mass-production) 내지 대량주문생산(Mass Customization)을 가능케 해준다는 것이 가장 큰 장점으로 꼽힌다. 그리고 제품개발에서부터 시장출시까지의 리드타임(Time-To-Market) 축소, 생산성향상 및 자원절약, 고령화와 함께 나타나는 청년 전문인력의 부족현상 극복, 자동화를 통해 높은 노동비용의 부담에서 벗어날 수 있는 등 기업에 많은 장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생산과 일자리의 해외이전이 줄어들고, 국내공장의 투자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러한 기대효과가 실제로 일어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독일의 산업4.0은 분명한 대상과 전략적 목표가 있다는 점이다. 실물경제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 속에서 제조업의 경쟁력을 키워 국내공장의 투자를 늘리겠다는 것이 그것이다. 선진 산업국가에서도 제조업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산업4.0 성공 위한 독일 노조의 노력
국내에도 산업통상자원부가 스마트공장을 추진하는 ‘제조업혁신 3.0’이라는 프로젝트가 있다. 독일의 산업4.0을 본 따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일단 그 내용이나 성과는 차치하고라도, 그 추진방식에서 독일 산업4.0과 근본적인 차이점이 보인다. 노동의 참여가 없다는 것이다. 얼마 전 정부의 스마트공장 시범사업장으로 선정된 국내의 한 자동차공장을 방문했을 때, 그 공장의 노동자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공장이 스마트공장 구축을 위한 시범사업장인지 모르고 있었다. 이래서는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라 하더라도 그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정부도 노조도 대화와 참여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스마트공장 추진과 같은 프로젝트는 기술혁신의 문제로 노조의 참여가 필요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노조도 그 같은 프로젝트는 자신의 일로 여기지 않는 것 같다. 과연 그런가? 독일의 경우는 어떤가?                       
독일노조총연맹(DGB)과 산하 노조들은 성공적인 산업4.0을 위해서는 노조의 참여와 지원이 필수적이라 생각하고 있다. 특히 산업4.0은 제조업 중심이기 때문에 금속노조(IG Metall)가 가장 활발하게 움직인다. 2012년 정부의 산업4.0 프로젝트를 위해 연구그룹이 형성되자마자 금속노조는 여기에 참여하고, 2014년 노조 내에 ‘노동의 미래’라는 부서와 2015년 정치, 기업, 학계의 전문가들로 자문위를 구성한다. 노조의 생각은 분명하다. 산업4.0은 독일경제와 노동자들의 미래를 위해 매우 중요한 프로젝트이기 때문에, 참여를 통해 노조의 영향력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일방적으로 기업의 이윤추구 방식으로만 기술이 발전‧도입돼 그야말로 노동자에게 재앙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생산성과 경쟁력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필히 노동의 인간화와 결부시켜야 한다는 생각인데, 이는 참여 없이는 실현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이 같은 생각으로 금속노조는 연구교육부와 경제에너지부에서 추진하는 ‘플랫폼 산업4.0’(지난 산업4.0의 추진체계를 개선한 프로젝트)에 계속해서 참여한다. 또한 금속노조는 경제에너지부 및 독일산업협회와 함께 2015년 3월 ‘산업의 미래를 위한 연합’(Das Bündnis für Industrie)을 만든다. 여기에는 현재 노사정으로부터 17개 단체가 참여, 협의와 조정을 통해 산업4.0 정책을 추진하면서 산업4.0이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이해관계자들의 공동체적 프로젝트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노동사회부와의 협력도 눈에 띈다. 2015년 6월 금속노조위원장과 노동사회부장관을 공동의장으로 하는 플랫폼 ‘디지털 노동세계’가 출범한다. 이 플랫폼은 노사정 및 학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하여 산업4.0 시대에 변화하는 노동세계를 같이 연구하고 대안을 만들어 가는 소통의 공간이다. 여기서 다루어진 주제와 연구결과는 단체협약과 사업장협약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사 간 사회협약도 이루어진다. 예컨대 2016년 4월 금속노조와 금속사용자협회/기계‧장비산업협회/전기‧전자산업협회 간에 ‘산업4.0에 대비하는 교육과 숙련화’라는 사회파트너 협약이 체결되었고, 2015년 6월에는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주 금속노조와 사용자협회가 ‘디지털화, 산업4.0 및 노동4.0’이라는 공동선언문을 채택한다. 여기에는 디지털 시대의 숙련, 노동시간, 임금, 건강, 고용 등에 대한 노사의 공동의견이 담겨있다. 이러한 지역별 노사의 사회협약 또는 공동선언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좋은 노동’을 위한 ‘노동4.0’
이러한 노동의 관점이 총체적으로 어우러진 개념이 ‘노동4.0’(Arbeiten 4.0)이다. 노동4.0은 산업4.0에 대한 노동정책적 개념으로, 산업4.0을 기술적 측면에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디지털 시대에 ‘좋은 노동’(Gute Arbeit)을 만들기 위해 노사정, 학계 및 시민이 참여하는 플랫폼이다. 이 노동4.0은 제조업을 넘어 전체 노동세계를 포괄한다. 
이를 위해 2015년 4월 노동사회부는 사회적 대화를 시작하면서 ‘노동4.0 그린북’을 출간한다. 이 책은 현재 일어나는 노동환경의 변화를 분석하고 이 변화 속에서 노동시장, 직업교육, 직장 내 재교육, 일과 생활, 노동의 시‧공간적 유연화, 새로운 디지털 노동(‘크라우드워커’ 등), 고령화, 건강, 직무변화와 임금체계 및 작업장혁신, 공동결정, 복지 등 노동의 주요 이슈에 대해 앞으로 풀어야 할 구체적인 질문을 던진다. 노동사회부는 이에 대한 노사의 입장을 받아, 주제별로 전문가 및 시민들이 참여하는 컨퍼런스와 워크숍을 수차례 개최한다. 그리고 그 결과, 즉 그린북에서 던진 질문에 대한 대답을 담은 ‘노동4.0 백서’를 2016년 11월 출간하였다. 이 책은 다시 다음 단계의 노동4.0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길잡이가 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고삐 풀린 산업4.0을 막고, 합의가 바탕이 된 ‘조절된 산업4.0’이 만들어진다. 
 
 
한국형 노동4.0은 가능한가
“산업4.0은 노동4.0을 필요로 한다.” 디지털 시대에 독일 노사민정이 공유하는 시대정신이다. 독일의 산업4.0이 왜 사회적 정당성을 획득하고, 왜 지속가능한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의 4차 산업혁명은 어떤가? 앞서 언급했듯이 가장 중요한 당사자이자 파트너인 노조가 보이지 않는다. 4차 산업혁명 관련 프로젝트에 노조가 참여하거나 사회적 대화가 진행된다는 말을 아직 듣지 못했다. 이는 매우 위험스런 상황이다. 4차 산업혁명이 일방적으로 이윤추구만을 위한 방식으로 추진될 수 있기 때문이며, 참여하지 않으면 미래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모르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불확실성과 사회적 불안은 점점 더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산업4.0은 노동4.0을 필요로 한다는 독일의 경험은 우리에게 커다란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제 우리도 4차 산업혁명과 관련된 사회적 대화와 당사자들의 공동프로젝트 등을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지난 2월 초 양대노총 제조부문공동투쟁본부가 낸 “국회의장의 4차 산업혁명시대 대비한 이해관계자 거버넌스 구축 제안에 대해서”란 성명서는 매우 고무적이다.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1월 말 ‘디지털 기본산업 경쟁력 제고 및 육성에 관한 기본법’을 발의할 예정이라면서, 전문가, 기업, 노조, 정부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여 산업혁신과 일자리 문제를 논의하는 민관 거버넌스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양대노총 제조부문 공투본이 “국회의장의 입법안이 제조발전특별법으로 대변되는 노동계의 요구가 전폭적으로 반영되어 산업발전과 고용안정이 보장되는 종합적인 방향으로 재구성되기를 희망한다”는 긍정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 대화와 참여의 여지가 보인다. 여기에 국회의장의 반응을 기대해 본다. 그래서 대화의 싹이 트고, 한국형 노동4.0이 발전되는 계기가 될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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