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나도 이런 대통령을 갖고 싶다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연일 나오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관련 보도에 더해 요즘엔 저 멀리 미국 대통령의 독특한 입모양에서 쏟아지는 ‘혐오스런 정책’을 보고 있노라면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작년 한 해는 세계 지도자들이 경쟁이라도 하듯이 부패나 탈세 스캔들로 위기를 맞았다. 세계 경제도 위기지만 리더십도 위기처럼 보인다. 그럴수록 조그만 것에도 감동을 느끼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런 리더십을 가진 나라가 부러운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멕시코에서 미국으로 넘어오는 이민자들의 인권 문제가 부각되었을 때 미국 대통령 오바마는 행정조치를 통해서라도 이민제도를 개혁해 주기 바라는 지지자들 앞에서 “하지만 그건 우리의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이 아닙니다”라고 용감히 말할 줄 아는 리더십을 보였다. 법을 만드는 것은 의회이므로 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방식은 가급적 지양하는 것, 즉 힘의 균형과 ‘대화와 타협’이 민주주의의 초석임을 분명히 한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독일에서는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과 비슷한 사건이 벌어졌지만 처리 과정은 매우 달랐다. 2012년 독일 언론은 대통령인 크리스티안 불프가 지인들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했다. 시작은 주지사 시절 영화제작사 대표가 대신 내준 호텔비 719유로(한화 약 90만원)였지만 의혹은 늘어나기 시작했다. 그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은 것은 자신의 의혹을 보도하려는 언론을 협박한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가 사임을 결정한 데는 의혹의 진위 여부도 중요했지만 ‘(국민으로부터) 잃어버린 신뢰’가 가장 컸다는 점이 우리에게 주는 시사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나중에 독일 법원은 그가 무죄라고 선고하였다). 
 
난 개인적으로 스웨덴의 올로프 팔메 총리의 삶에 매력을 느낀다. 그는 한손과 에를란데르 총리의 뒤를 이어 젊은 나이에 스웨덴 총리가 되었지만 스웨덴 복지국가의 성장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지도자이다. 그는 1984년 하버드 대학의 연설에서 시장의 마술을 추종하는 시장주의자에게 사회란 무엇인가에 대해 일갈했다. “사회의 목적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어떤 이념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다....특정 그룹이나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는 것도 아니다. 사회와 제도는 지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사회와 연대의 목적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의 자원을 활용하여 삶의 크고 작은 과제를 이루어 가도록 하는 것이다.” 
 
어느 정치평론가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중도 포기를 두고 “대통령이 되겠다는 권력의지가 너무 약했다”는 평가를 하던데, 의문이 든다. 막스 베버는 권력의 속성을 “상대방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나의 의지를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정의했다. 그래서 정치 영역에서 권력은 항상 ‘지배’와 쌍둥이처럼 거닌다. 이런 권력은 자칫 내가 추구하는 가치와 내 행위의 진정성만이 옳다고 생각하고, 몰라주는 상대방만을 탓하는 일방통행식 리더십으로 추락할 수 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은 오로지 그 권력을 추구한 잘못 밖에 없다. 
 
현대의 리더십은 상대방의 의사와 관계없이 휘두르는 권력이 아니라 대화와 타협을 통해 다양성을 존중하는 연대의 리더십이어야 한다. 더해서 정당성 없는 특권을 행사하는 모든 권력에 대해서 ‘아니오’라고 외칠 줄 아는 정의로운 리더십이어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찌됐거나 물러날 것이다. 다만 언제 물러나느냐만 남았다. 그렇다면 어떤 리더십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될까? 나도 저런 대통령을 갖고 싶다. 
 

연구소의 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