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 판매, 고객 상담…이 모든 걸 해야 하는 내 이름은 항공 승무원입니다: 경향신문(12.30)

 
 
서비스와 안전 사이 ‘스튜어디스의 눈물’
폭행·성희롱 등 급증 추세에도 ‘서비스 우선’
난동 등 비상 매뉴얼 모호, 과잉조치 질책 받을까 대응 위축
‘안전’ 위해 징계 아닌 적절한 권한 줘야
 
 
트위터리언 텐시(@ttenshit)는 “각국의 항공사들이 판매 전략으로 무엇을 부각시키고 있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 중 하나가 트위터 공식 계정의 헤더 이미지를 보는 것”이라며 몇몇 항공사의 이미지를 올렸다. 창공을 가르는 항공기가 등장한 유나이티드항공, 브리티시 에어웨이 등과 달리 국내 양대 항공사의 헤더는 환하게 미소 짓는 여성 승무원들이 장식하고 있다.
 
지난 20일 하노이발 인천행 여객기 안에서 벌어진 승객 임모씨의 난동 사건을 두고 업계에서는 터질 것이 터졌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폭언, 성희롱, 폭행 및 협박, 흡연 등 항공기 내 불법행위 적발건수는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올해는 상반기에만 297건으로 이미 2015년도의 절반을 넘어섰다. 
 
판매원, 음식서비스원, 고객 상담원, 여행안내원 역할을 해내는 국내 항공사의 승무원들은 서비스 지상주의의 기치 아래 ‘미소 짓는 총알받이’ 임무까지 수행하고 있다. 소동의 책임까지 그들의 어깨에 지워지는 동안 안전과 보안이라는 원칙은 다른 항로를 타고 있었다.
 
■ 연약한 여성 승무원? 문제는 매뉴얼 
 
대한항공은 임씨의 난동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자 지난 27일 객실사무장·부사무장의 항공보안 훈련횟수를 연 1회에서 3회로 늘리고 남자승무원 채용규모를 확대하겠다는 개선안을 발표했다. 실제 대한항공의 전체 승무원 7500명 중 남승무원은 10%에 불과하다. 항공기 한 대당 남승무원이 한 명도 탑승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1969년 북한에 항공기가 납치당한 사건 이후 사복경찰과 보안승무원을 반드시 탑승시키도록 하는 규정이 있었지만, 이 제도는 1994년 폐지됐다.
 
그러나 승무원 출신의 전문가들은 이번 난동 사건을 남성 인력 보강으로 무마하려는 것에 대한 우려를 표시한다. 보안을 위해 남승무원이 보강된다는 것은 결국 여승무원은 여전히 안전보다 서비스에만 집중하라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이향정 백석대 항공서비스학과 교수는 “이번 사건에서 승무원들의 대응이 신속하지 못했던 것은 사무장의 경험 부족 탓일 수도 있으나, 회사 측에서 테이저건 사용을 원하지 않는 이유가 클 것”이라고 보았다. 
 
기내 난동 등 비상상황이 발생했을 때 승무원이 취하도록 돼 있는 매뉴얼은 국내 항공사의 경우 매우 모호하다. ‘사무장의 적절한 판단에 따른 대응’ 정도의 수준이다. 승객에게 단호한 조치를 취했다가 사후 사측으로부터 과잉대응이라는 질책을 받으면 결국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반면 유럽의 ㄱ항공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김지안씨는 “우리 항공사의 경우 3단계에 이르는 구체적인 매뉴얼이 있어서 모두 그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했다. 이 항공사는 다른 승객에게 공포심을 주는 행위를 하거나, 승무원에게 욕설을 하는 승객이 발생하면 1차 경고를 한다. 담배를 피우거나 기내 시설을 파괴할 경우 2차 경고, 이어 3차 경고까지 가는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포박한 뒤 착륙 후 공항 경찰에 인계한다. 특히 승무원이 위협을 당하는 상황으로 판단되면 기장이 아무 공항에나 긴급 착륙해 공항 경찰에 즉시 넘길 수 있다는 규정까지 있다. 
 
중동의 ㄴ항공사 승무원인 이예원씨도 “우리는 미약한 조짐이라도 보이면 빠르게 상사에게 보고한 뒤 매뉴얼에 따라 전 승무원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면서 “특히 기내 난동이나 (이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고객 불만이 접수되더라도 담당 매니저가 상담을 통해 해당 승무원을 격려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에서라면 당연히 임씨 난동 같은 사건이 발생하더라도 승무원이 추후 질책에 대한 염려없이 빠르게 대처가 가능하다. 
 
■ 안전을 ‘양보’하는 국내 항공사들 
 
항공기 보안책임은 항공운송 사업자에게 있다. 운항 중 비상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전자충격총(테이저건), 가스분사총, 포승줄 등의 난동승객 제압장비와 방폭담요를 둔다. 항공법 제2조는 객실승무원을 ‘항공기에 탑승하여 비상 탈출 진행 등 안전 업무를 수행하는 승무원’으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나 국적기 승무원 10년 경력의 김모씨는 “안전교육이 1년에 한 번에 불과한 탓에 테이저건을 써볼 일이 없어서 승무원들도 사용이 두려운 것이 사실”이라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5년 우즈베키스탄 출신 승무원 8명에게 정기교육을 하지 않은 채 두 달간 근무하도록 해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승무원 김지안씨는 승객 대응에서 외항사와 국적기의 차이점을 묻자 “국적기의 경우 승객에게 안전 문제를 양보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대한항공이 착륙 시 창문 덮개를 올려야 하는 규정을 승객들의 항의로 없앴다가 다시 되살린 것은 업계에서 유명한 일화다. 승무원 출신인 김안숙 스위트코칭 대표는 “이착륙 시 좌석 테이블을 접고 등받이를 바로 세우는 것이 비상 상황을 위한 우선 수칙인데 이를 지키지 않는 승객들에게도 강력하게 대응하기 힘들다”며 “여행이 즐거워야 승객이 다시 찾을 거라는 서비스 마인드만 강조하기 때문에 안전은 뒷전이 된다”고 지적했다.
 
폭행과 성희롱은 업무방해죄 처벌을 받는 명백한 현행법상 범죄다. 그럼에도 그동안의 기내 난동 사건은 ‘악질 승객 대 연약한 여성 승무원’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진상 고객 운운하며 시민의식 성숙을 요구하는 것은 결국 소비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셈”이라면서 “진에어와 에어서울이라는 저비용항공사까지 소유하며 막강한 시장점유율을 가진 양대 항공사 대한항공과 아시아나가 국토부와 함께 기내 난동 및 대응에 대한 뚜렷한 실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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