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4일 유토피아 시대 성큼… 딴 나라만의 얘기일까: 한국일보(10.15)

“그들은 하루 6시간 일한다. 정찬 전 3시간, 정찬 후 3시간이다. ”(1516년 출간된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500년 전 한 영국 정치가가 상상력으로 창조했던 이상세계가 현실 가까이 바짝 다가왔다. 1935년 국제노동기구(ILO)의 주40시간 노동협약 체결 이후 80년간 현대인의 일상을 지배한 주5일제의 공고한 벽은, 적어도 한국 밖에선 서서히 금이 가고 있다.

일본 스웨덴 미국에서 속속 이어지는 주4일 또는 하루 6시간 근무 실험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오래 일하는 나라 한국에 많은 점을 시사한다.

휴식이 생산성에 순기능한다는 사실이 밝혀지며, 책상머리에, 기계 옆에, 매대 앞에 오래 버티는 게 능사가 아니란 인식이 확산됐다.

하지만 가족ㆍ친구보다 직장동료와 더 오랜 시간을 보내는 한국 직장인 앞에 버티고 선 장시간 근로의 벽은 여전히 거대하다. 근로시간 단축으로 가야 한다는 점에 대부분 동의하지만, 그 비용과 부작용을 둘러싸고 이해가 엇갈려 접점을 찾기 어렵다. 잔업천국, 야근공화국인 대한민국은 과연 초단시간 근로의 유토피아를 곧 맞이할 수 있을까?

왜 단시간노동이 주목받나

주4일제와 하루 6시간 근무로 대표되는 단시간 근무가 주목받는 이유는 휴식이 생산성에 기여하는 효과가 속속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주 근로시간이 50시간을 넘어서면 생산성이 급격하게 저하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직업능력개발원 2013년 연구를 보면, 주당 52시간 이상 일하는 근로자 중 24.1%가 “작업 중 낭비되는 시간이 10%가 넘는다”고 답했다.

짧은 노동시간이 신체와 정신적 건강을 개선해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킨다는 주장도 있다. 영국 런던대가 노동자 50만명을 대상으로 초과근로와 뇌졸중 관계를 연구한 결과, 주 55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은 35~40시간 일하는 이보다 뇌졸중 발병 가능성이 33% 높았다.

노동 투입을 늘리면 생산량이 는다는 명제도 4차 산업혁명의 도래로 힘을 잃었다. 이창현 국민대 교수는 “노동집약 산업에서는 노동을 늘리면 이익이 나왔지만 앞으론 창의성 없이 성장은 불가능한 사회가 온다”며 “피로사회ㆍ소진사회가 아니라 노동시간을 줄여 창의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이를 적용하기에는 여러 실질적 문제가 뒤따른다. 결국 핵심은 ▦급여를 그대로 두고 근로시간만 단축할 것인지 ▦일을 줄인 만큼 돈을 덜 줄 것인지 양자택일 문제다.

근로자야 급여를 유지한 채로 근로시간이 줄어들길 바라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그 비용이 엄청나다. 한국경제연구원은 휴일근로가 연장근로에 산입되어 주당 52시간(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이상을 일할 수 없는 경우, 기업이 추가 고용으로 연간 12조3,000억원을 더 부담해야 한다고 추산했다. 기업 입장에선 노무 관리 어려움 때문에 고용 인원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선호하지 않는 측면도 있다.

소수이긴 하지만 근로자 스스로 수당이 높은 초과근무를 선호하며 근로시간 단축을 꺼리는 경우도 있다. 한 증권사 직원은 “근로시간이 줄면 연봉도 줄어들 것”이라며 “주변을 봐도 젊을 때 바짝 일하고 많이 벌자는 사람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놀금ㆍ반금으로 시작한다면

이렇게 근로시간 단축은 기업에선 비용, 근로자에겐 소득 문제로 인식되지만, 업무 특성에 따라 근로시간 단축이 꼭 임금삭감을 동반할 필요는 없다는 실사례도 주목할 만하다. 스웨덴 예테보리의 살그렌스카 대학병원은 지난해 의료진 89명의 임금은 그대로 둔 채 하루 6시간 근무를 실시했는데, 15명 추가 고용에 비용이 더 투입되기는 했지만 수술 건수가 20% 더 늘어날 정도로 효율이 좋아져 환자 대기 시간이 대폭 단축되는 효과를 거뒀다.

노동 투입량과 최종생산물 양이 비례하지 않는 일부 업종에서는 전향적으로 근로시간 단축을 해 볼 만하다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회사에 오래 있다고 성과가 많지 않은 산업도 있기 때문에 업무 성격에 따라 주4일제도 검토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과거 학교 등에서 한시적으로 적용했던 ‘놀토’(노는 토요일) 사례를 차용한 ‘놀금’이나 ‘반금’(금요 오전 근무)으로 시작하는 방법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실제 일본은 경제단체 게이단렌(經團連)의 주도로 마지막 주 금요일 퇴근 시간을 오후 3시로 당기는 ‘프리미엄 프라이데이’를 추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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