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소의 창] 노동시간 단축과 6시간 노동제 실험

 
- 이명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
 
미국 대공황시절 우리도 잘 아는 시리얼 회사 <켈로그>는 8시간 3교대제를 6시간 4교대제로 바꾸었다. 늘어날 고용으로 인해 미국 행정부, 언론, 학자, 노조 지도자 모두 경제위기를 벗어날 해법으로 극찬을 마지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켈로그의 6시간 노동은 1980년대까지 50년 동안 8시간 노동제와의 싸움 속에서 악전고투하다 장렬히 사망했다. 프랑스의 주 35시간 노동제는 2016년 노동법 개정으로 더 유연한 연장근무가 인정되면서 5년여의 실험에 흠집이 났다. 실업률과 국가 경쟁력 약화에 무릎을 꿇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는 공약으로 2020년까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을 OECD 평균으로 낮추겠다고 했다. 경제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도 노사정 합의로 2020년까지 노동시간을 연간 1,800시간으로 단축하기로 하였다. OECD 기준 2015년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113시간이므로 300여 시간을 단축해야 한다. 참고로 2015년 OECD 평균은 1,766시간인데, 2007년부터 줄곧 1,700여 시간이었고, 해를 넘길수록 줄어들고 있다.  
 
6시간 노동제 실험은 한국에도 있다. 아이들 책을 출판하는 보리출판사다. 보리출판사는 2012년부터 6시간 노동제를 시작해 2015년 <보고서>까지 냈다. 보리출판사 직원의 한 해 노동시간은 연장근로를 합쳐 1,417시간이다. 현재 연간 노동시간이 1,400대인 국가로는 독일,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프랑스가 있다. 마감 당일이나 편집 당일 날, 늦은 야근을 마치고 으레 국밥에 술 한 잔 하는 것을 ‘일이 가져다주는 자그만 행복’ 즈음으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6시간 노동은 미친 짓이라 여겨질 지도 모른다. 
보리출판사 6시간 노동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었다. 1. 하루 6시간(오전 9시~오후4시), 주30시간, 주5일 근무, 토요일은 휴무, 2.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는 없다. 3. 연장근로 발생 시 초과 노동시간만큼을 휴가로 쓰는 '시간적립제' 적용. 4. 적립한 시간은 대체휴가로만 쓸 수 있고, 수당으로 지급하지 않는다. 보리출판사 직원들은 6시간 노동제를 위해 커피 타임과 인터넷 서핑 시간을 줄이고, 간식 타임을 포기했다. 관행처럼 했던 내부 회의도 합리적으로 줄였다. 
6시간 노동제가 유지되기 위해선 사용자나 노동자 모두에게 노력이 필요하다. 두 사례 모두에서 ‘초과수당’의 문제가 등장했다. 켈로그는 피할 수 없는 연장근로에 대한 대가를 ‘시간’ 기준이 아닌 ‘생산량’으로 대체했다면, 보리출판사는 ‘대체휴가’로 대신하여 ‘수당에 대한 유혹’을 차단했다. 사용자와 노동자가 6시간 노동제를 ‘사수’하기 위한 타협의 결과라 할 수 있다. 
 
‘노동시간 단축’ 논쟁에서 제일 앞선 화두는 임금과 고용효과다. 필자는 경제학자가 아니므로 이 문젠 경제학자에게 맡기고 다른 관점에서 보려고 한다. 노동시간 단축의 사회적 효과는 일(work)의 도덕적 규범에 균열을 일으킨다. 이제 ‘일’은 나의 삶에서 제1순위가 아니라 2순위 혹은 3순위로 밀린다. 오후의 나는 뮤지컬 배우로, 화가로, 목수로, 마라톤 선수로, 다정한 엄마와 아빠로 변신한다. 아파트 경비의 최저임금 적용과 관련한 반상회에, 마을 축제에, 구청의 쓰레기 분리수거 관련한 지역 주민 공청회에도 참여할 수 있다. 
‘일과 생활의 균형’이라고 했던가. 이 아젠다는 참으로 슬픈 우리네 현실을 반영한다. 일의 가치가 삶의 여타 가치보다 얼마나 앞서 있으면 ‘균형’이라고 할까. 일보다 삶에 치중한 불균형이야말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일을 하는 목적’이 아닐까 싶다. 
노동조합의 목표는 무엇인가? 조합원의 임금 인상과 노동시간의 단축은 노동조합 목표의 양 날개와도 같다. 다만, 배타적인 ‘임금 극대화 전략’에 빠진다면 그 대가는 크다. 임금 극대화 전략은 무한경쟁 시대의 수사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각자도생의 길’에 불과하다. 노동조합이 경쟁을 묵인하고 협력과 연대를 저버리는 결과만 초래할 뿐이다. 단언컨대, 노동조합 정책 방향의 이런 불균형을 해소하지 않는 이상 노동조합에게 미래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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