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대 총파업 부른 성과연봉제 핵심 쟁점은: 한겨레(09.23)

 

①노조 동의 없는 도입 근로기준법 위반 아닌가
고용부 “사회 통념상 합리성 있으면 효력 인정”
법조계 “취업규칙 변경 절차상 위법”
 
②공공부문 성과, 측정 가능한가
미국도 공정성 논란 끝 결국 폐지
기재부 “다양한 의견 들어 기준 만들 것”
 
③공공서비스 질 나빠지지 않는가
병원 이중진료·과다처방 등 부작용
사고은폐·책임회피·통계조작도
고용부 “정당한 보상체계 만들면 해결”
 
양대 노총 공공·금융부문 노동조합들이 22일부터 연쇄 파업에 나서는 이유는 성과연봉제 도입을 철회시키기 위해서다. 정부가 지난 1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지침’을 발표한 지 5개월 만인 지난 6월까지 전체 120개 공공기관과 9개 금융 공기업에 성과연봉제가 도입됐다. 노동계는 상당수가 노동자 동의 없이 성과연봉제 안건을 이사회에서 일방적으로 의결하는 등 절차상 문제가 있는 데다 공공부문이 단기 성과에 매몰되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 노조 동의 없이도 도입할 수 있나 
최대 쟁점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할 때 노조 동의가 필요한지다. 근로기준법은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은 노조나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규정하고 있다. 성과연봉제 도입이 ‘노동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취업규칙 변경’이라면 노조 동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현재 공공기관에 도입된 성과연봉제는 실적이 높은 사람이 낮은 사람의 연봉을 가져가는 ‘제로섬 방식’이어서 일부 노동자는 기존 임금보다 적게 받게 된다. 최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시민)는 “일부는 유리하고 일부는 불리할 경우 대법원은 근로자에게 불리한 취업규칙 변경으로 본다”며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성과연봉제를 도입한 것은 절차상 위법하다”고 지적했다. 2000년 당시 노동부도 “성과연봉제 도입이 취업규칙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고 행정해석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최근 고용부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갖추면 노조의 동의 없이 임금체계 개편이 가능하다는 새로운 행정해석을 내놨다. 지난 8월 고용부가 펴낸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가이드북’을 보면, “임금체계 개편이 불이익 변경인 경우 근로자 과반수와 과반수 노조의 동의가 없더라도 법률과 판례에 따라 사회 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면 효력이 인정된다”고 돼 있다. 김진 변호사(법무법인 지향)는 “‘사회 통념상 합리성’은 일본 판례를 대법원이 수용한 것이라 노동법학자들이 매우 비판적인 의견을 내고 있다”며 “그 대법원 판례도 매우 엄격하고 제한적으로 ‘사회 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해, 성과연봉제 도입은 물론이고 임금체계 개편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 공정한 평가 기준이 있나 
노동계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는 또 다른 이유는 평가 기준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서 성과가 무엇이며, 어떻게 개인별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지 명확히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4월에야 ‘공공기관 임금체계 개편 지원사업’ 용역을 발주해 그 결과물인 ‘임금체계 표준모델’이 12월에야 나오기 때문이다.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공공부문의 업무 분장은 개인별로 표준화, 전문화가 부족하고 구성원의 공동 노력인 결과가 많아 개인별 평가 기준을 마련하는 게 쉽지 않다”며 “성과연봉제 제도 도입을 1년간 유예하고 공공기관의 성과주의 실태를 조사하는 게 우선”이라고 제언했다.
미국이 1978년 이후 세 차례나 공공부문에 성과제 도입에 실패한 원인도 평가 기준에 대한 끝없는 공정성 논란 때문이었다. 1978년 미국은 ‘공공서비스개혁법’을 제정해 공공부문에 성과급을 신설했다. 당시 민간전문가들은 최소한 3~5년의 준비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정부는 2년 만에 시행했고 1984년 형평성이 부족하다며 폐지됐다. 1989년과 2001년에 다시 도입됐지만 역시, 평가가 공정하지 못하다는 비판을 받으며 없어졌다. 제임스 페리 인디애나 대학교 교수는 <미국행정학회보>에 실은 논문에서 “전체적인 측면에서 (미국의) 공공부문의 성과급은 의도했던 역할을 수행하는 데 계속해서 실패했다”고 평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공정성 확보를 위해 평가기준을 만들 때 다양한 부서와 직원, 외부 전문가의 참여를 보장할 것”이라며 “평가 결과에 대한 이의 신청 및 조정 절차, 직무능력 향상을 위한 교육도 마련한다”고 말했다.
 
■ 공공서비스 질에 미치는 영향은 
우리나라에서도 2010년부터 공공부문의 간부급을 대상으로 성과연봉제를 시행하는데, 그 부작용이 크다는 게 노동계의 주장이다. 대표적인 부문은 의료분야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쪽의 설명에 따르면 국가유공자를 진료하는 보훈병원의 경우, 환자 수가 제한적인데도 성과연봉제가 도입되자 이중진료, 과다처방 등 과잉진료가 생겨났다. 서울시 동부병원은 2005년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가 폐해가 심해 2013년 호봉제로 되돌아왔다. 정재수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객관적인 수치로 업무능력을 평가할 수 없으니까 윗사람 눈치 보기, 줄서기, 부서 이기주의가 만연했다”며 “수익이 나지 않는 취약계층보다는 일반 보험환자 위주로 공공병원이 운영되고, 근무환경이 나빠진 탓에 간호사 이직률이 43%로 치솟았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철도·지하철의 안전에도 빨간불이 켜질 것이라고 우려한다. 허인 전국철도지하철노동조합협의회 집행위원장은 “2008~2012년 서울도시철도공사에 저성과 퇴출제가 도입됐을 때 시스템 장애 신고 건수가 급격히 줄었다”며 “사고 발생 여부가 중요한 평가지표가 되니까 작은 사고는 은폐하고 부서 간 책임을 회피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2010년 박연수 소방방재청장이 ‘화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성과주의를 몰아붙였을 때도, 화재 관련 통계가 조작돼 논란이 일었다. 한 소방관은 “동료애로 서로의 목숨을 지켜내던 소방이 꼴등을 면하기 위해 동료를 밟고 서야 하는 곳으로 바뀌었다”고 회상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성과주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공정한 평가기준과 정당한 보상체계가 마련되면 그 문제는 해결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폐해가 심각한 호봉제에서 직무·성과 중심으로 임금체계가 개편되도록 공공부문이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호봉제는 나이가 들수록 교육비, 의료비, 주거비 등 부담이 커져 가계지출이 늘어나는 한국의 현실을 반영한 체계”라며 “연공급 자체를 악으로 해석하지 말고 임금 격차 확대를 해소하기 위한 임금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고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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